워커 쿠퍼
1. 개요
워커 쿠퍼는 1940년부터 1957년까지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한 포수였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42년과 1944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으며, 1943년에는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뉴욕 자이언츠, 신시내티 레즈, 보스턴/밀워키 브레이브스, 피츠버그 파이리츠, 시카고 컵스 등 여러 팀을 거치며 통산 타율 .285, 173홈런, 812타점을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마이너 리그 감독과 코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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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William Walker Cooper |
|---|---|
| 출생일 | 1915년 1월 8일 |
| 출생지 | 미국 미주리주 애서턴 |
| 사망일 | 1991년 4월 11일 |
| 사망지 |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
| 포지션 | 포수 |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 데뷔 | MLB / 1940년 9월 25일 |
| 마지막 경기 | MLB / 1957년 9월 20일 |
| 팀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40–1945) 뉴욕 자이언츠 (1946–1949) 신시내티 레즈 (1949–1950) 보스턴/밀워키 브레이브스 (1950–1953) 피츠버그 파이리츠 (1954) 시카고 컵스 (1954–1955)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56–1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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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 내역 | 8× 올스타 (1942~1944, 1946~1950) 2× 월드 시리즈 우승 (1942, 19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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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율 | .285 |
|---|---|
| 홈런 | 173 |
| 타점 | 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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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워키 브레이브스 선수 -
레드 쇼인딘스트
레드 쇼인딘스트는 "레드"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미국의 프로 야구 선수이자 감독, 코치로, 뛰어난 수비력과 양손 타격 능력으로 10번의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며, 선수와 감독으로서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하고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이다. -
밀워키 브레이브스 선수 -
빌리 마틴
빌리 마틴은 뉴욕 양키스에서 이름을 알린 미국의 프로 야구 선수이자, 공격적인 "빌리 볼" 야구 스타일로 여러 팀을 이끌었지만 불화와 갈등, 사생활 문제로 해고와 복귀를 반복한 파란만장한 감독이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포수 -
게리 카터
게리 카터는 1974년부터 1992년까지 메이저 리그에서 활동한 캐나다 출신 포수로,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올스타, 골드 글러브, 실버 슬러거 등을 수상했고 뉴욕 메츠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으며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나 2012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포수 -
데빈 메소라코
데빈 메소라코는 1988년생의 전 야구 선수로, 신시내티 레즈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여 메이저 리그에서 포수로 활동했으며, 2014년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나 부상으로 은퇴 후 피츠버그 대학교 코치로 활동했다. -
내셔널 리그 올스타 -
톰 글래빈
톰 글래빈은 메이저리그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활동하며 뛰어난 투구와 타격 능력으로 다승왕, 실버 슬러거 상 등을 수상하고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 300승을 달성한 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좌완 투수이다. -
내셔널 리그 올스타 -
데이비드 저스티스
데이비드 저스티스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뛰어난 타격 능력으로 활약하며 신인왕, 실버 슬러거 상, 챔피언십 시리즈 MVP 등을 수상하고 두 차례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야구 선수이자, 은퇴 후 야구 해설가로도 활동했으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나 미첼 보고서에 언급되어 명예의 전당 입성에는 실패했다.
2. 프로 선수 경력
미주리주 애서턴 출신의 워커 쿠퍼는 뛰어난 타격과 수비력을 겸비한 포수로 평가받았으며, 1942년부터 1950년까지 9년 연속 내셔널 리그 올스타로 선정되었다.
1940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메이저 리그 경력을 시작했으며, 특히 형인 투수 모트 쿠퍼와 함께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1942년 월드 시리즈와 1944년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미국 해군에 복무하여 1945년 시즌 대부분을 결장했다.
전후 1946년 뉴욕 자이언츠로 이적한 쿠퍼는 1947년 타율 .305, 35홈런, 122타점을 기록하며 개인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이 해 6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1949년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되어 한 경기 10타점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메이저 리그 역사상 포수로서는 유일한 기록이다. 또한 선수 생활 동안 론 워네케(1941년)와 번 빅포드(1950년)의 노히트 노런 경기를 포수로서 함께 했다.
쿠퍼는 보스턴 브레이브스(이후 밀워키로 연고 이전), 피츠버그 파이리츠, 시카고 컵스 등 여러 팀을 거친 뒤, 1956년 친정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돌아와 두 시즌을 더 보내고 1957년 10월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 (1940-1945)
미주리주 애서턴 출신인 쿠퍼는 뛰어난 타자이자 수비력을 갖춘 포수로, 1942년부터 1950년까지 매년 내셔널 리그 올스타 팀에 선발되었다. 1930년대 후반,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았던 카디널스 팜 시스템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마침내 1940년 시즌 후반, 25세의 나이로 팀에 합류했다. 데뷔 당시 심판 빈스 리어든에게 첫 공에 대해 불평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나 1941년에는 쇄골 골절 부상으로 68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 해 8월 30일에는 론 워네케의 노히트 노런 경기를 포수로서 함께했다.
1942년에는 주전 포수로 자리 잡으며 타율 .281를 기록했고, 장타율, 2루타, 3루타 부문에서 내셔널 리그 상위 10위 안에 드는 활약을 펼쳤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그 해 내셔널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그의 형인 모트 쿠퍼는 MLB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쿠퍼는 5번 타자로 1942년 월드 시리즈에 출전하여 디펜딩 챔피언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타율 .286를 기록했다. 특히 4차전에서는 결승 득점을 올렸고, 마지막 5차전에서는 9회말 화이티 쿠로스키의 홈런 때 결승 득점을 기록했다. 또한 9회말 무사 2루 상황에서 조 고든을 견제사로 잡아내며 팀이 8년 만에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43년 쿠퍼는 타율을 개인 최고 기록인 .318로 끌어올렸고, 내셔널 리그에서 타율 3위, 장타율 3위, 타점 5위를 기록하며 카디널스가 리그 챔피언 자리를 지키는 데 기여했다. 그는 최우수 선수상 투표에서 팀 동료 스탠 뮤지얼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1943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4번 타자로 출전하여 타율 .294를 기록했지만, 팀은 뉴욕 양키스와의 재대결에서 패배했다.
1944년 쿠퍼의 타율은 .317로 약간 하락했지만, 카디널스는 3년 연속 페넌트를 획득했고, 같은 연고지의 라이벌 팀인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와 1944년 월드 시리즈에서 맞붙었다. 다시 4번 타자로 출전한 그는 시리즈에서 타율 .318을 기록했고, 마지막 6차전에서 팀의 첫 득점을 올리며 카디널스가 또 한 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미국 해군에 입대하여 복무했으며, 이로 인해 1945년 시즌에는 단 4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2.2. 뉴욕 자이언츠 시절 (1946-1949)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후 미국 해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하기 전인 1946년 1월, 쿠퍼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연봉 분쟁 끝에 뉴욕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다. 당시 카디널스가 쿠퍼의 계약을 판매하며 받은 175는 선수 한 명에 대한 현금 거래로는 최고액 기록이었다. 이전의 조 크로닌(1934년)이나 디지 딘(1938년)의 거래는 더 큰 규모였지만, 다른 선수들이 포함된 거래였다.
쿠퍼는 1947년 자이언츠에서 타격 면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그는 개인 최고 기록인 홈런 35개, 타점 122개, 득점 79개, 안타 157개, 3루타 8개, 출장 경기 140경기를 기록했고, 타율은 .305를 기록했다. 이 해 자이언츠 팀은 총 221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메이저 리그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특히 쿠퍼는 이 시즌 동안 6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며, 조지 켈리가 1924년에 세운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1948년 레오 듀로처가 자이언츠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팀은 속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개편되기 시작했다. 쿠퍼는 1949년 시즌 초반 타율 .211로 부진했고, 결국 그해 6월 13일 동료 포수 레이 뮬러와의 맞트레이드를 통해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하게 되었다.
2.3. 신시내티 레즈 시절 (1949)
뉴욕 자이언츠의 레오 듀로처 감독이 1948년 부임 후 팀 개편을 단행하면서, 쿠퍼는 1949년 시즌 초반 타율 2할 1푼 1리로 부진했다. 결국 1949년 6월 13일, 쿠퍼는 동료 포수 레이 뮬러와 맞트레이드되어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했다.
레즈로 이적한 지 약 3주 후인 7월 6일, 쿠퍼는 한 경기에서 7타수 6안타(3홈런 포함) 5득점 10타점을 기록하는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이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역사상 포수가 한 경기에서 10타점 이상을 기록한 유일한 사례이며, 전체 선수 중에서는 11번째 기록이다. 또한 쿠퍼는 1949년에 선수 경력 중 유일하게 내셔널 리그 포수 보살(assist (baseball))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2.4. 보스턴/밀워키 브레이브스 시절 (1950-1953)
1950년 5월 보스턴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되었다. 그 해 8월 11일에는 번 빅포드의 노히트 노런 경기를 포수로서 지켜봤다.
그는 브레이브스에서의 첫 두 시즌 동안 3할 이상을 기록했으며, 팀이 1953년 밀워키로 연고지를 이전했을 때도 팀에 남았다. 쿠퍼는 보스턴의 브레이브스 필드에서 마지막 타석에 들어선 선수였으며, 앤디 파프코에게 플라이 아웃되었다.
2.5. 후기 경력 (1954-1957)
쿠퍼는 1954년 시즌 전에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계약했지만, 2할의 타율을 기록한 후 5월에 방출되었다. 그는 시카고 컵스에 영입되었고, 1955년까지 백업 포수 및 대타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 후 그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돌아와 마지막 두 시즌을 보냈고, 1957년 10월에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그의 딸 사라(미스 미주리 1957)가 카디널스 2루수 돈 블레이징게임과 결혼한 후, 그는 "딸이 당신의 팀 동료와 결혼하면 당신이 너무 늙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라고 언급했다.
3. 선수 경력 통계
18년간의 메이저 리그 경력 동안, 쿠퍼는 1,473 경기에 출전하여 4,702 타수에서 통산 .285의 타율을 기록했으며, 173개의 홈런, 812타점, .464의 장타율을 기록했다. 그는 내셔널 리그 포수 중 수비율에서 3번, 도루 저지율에서 2번, 그리고 보살에서 1번 1위를 차지했으며, 통산 .977의 수비율을 기록했다. 그의 전성기 시절 스포츠계에서 가장 강력한 선수 중 한 명이었으며, 그의 선수 경력 말년에는 통산 타율(.285), 장타율(.464), 홈런 (173개), 그리고 타점 (812타점)에서 내셔널 리그 포수 상위 5위 안에 들었다. 그는 또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으로 1942년부터 1944년까지 3번의 월드 시리즈 동안 .300의 타율을 기록했고, 팀은 두 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은퇴 당시 내셔널 리그 역사상 포수로서 출전한 경기 수(1,223경기)와 아웃 처리(5,166개)에서 각각 10위에 랭크되었다. 그는 선수 생활 동안 5개의 서로 다른 팀에서 만루 홈런을 기록하여 기록을 세웠다(이 기록은 이후 데이브 킹먼과 데이브 윈필드가 따라잡았다). 그의 .464의 장타율은 당시 로이 캄파넬라(.500)와 개비 하트넷(.489)에 이어 내셔널 리그에서 1,000경기 이상을 포수로 출전한 선수 중 세 번째였으며, 그의 173개의 홈런과 812타점은 캄파넬라(242, 856), 하트넷(236, 1,179), 그리고 어니 롬바디(190, 990)에 이어 네 번째였다. 그의 형인 모트 쿠퍼는 내셔널 리그 투수였으며 선수 경력 초기에 그의 팀 동료였고, 그의 사위인 돈 블레이싱게임 역시 메이저 리그 선수였다.
4. 감독 및 코치 경력
선수 생활을 마친 후, 트리플 A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소속의 인디애나폴리스 인디언스(1958–59)와 댈러스-포트워스 레인저스(1961)에서 감독을 맡았다. 1960년에는 캔자스시티 애슬래틱스의 코치를 역임했으며, 이후 야구계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