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왕후
1. 개요
원목왕후는 고려 현종의 후궁으로, 본관은 이천 서씨이며, 거란과의 외교 담판으로 유명한 서희의 손녀이다. 1022년 숙비에 책봉되었으며, 흥성궁주로 불렸다. 1057년에 사망했으며, 아들을 두지 않아 능호가 내려지지 않았으나, 문종에 의해 원목왕후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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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7년 사망 -
교황 빅토르 2세
교황 빅토르 2세는 1055년부터 1057년까지 재위했으며,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추천으로 교황이 되어 성직 매매 금지, 황제의 대리인 역할, 하인리히 4세의 후견인 역할을 수행하다가 말라리아로 사망했다. -
1057년 사망 -
적청
북송 시대의 장군 적청은 서하와의 전쟁과 농지고의 반란 평정에서 뛰어난 군사적 능력을 발휘하여 추밀정사에 올랐으나, 문치주의 사회의 견제 속에서 불우한 말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에서는 무곡성의 화신으로 숭배받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
고려 현종의 왕비 -
원용왕후
원용왕후는 고려 현종의 비로, 대종과 선의왕후의 손녀이자 경장태자의 딸이며, 현종과는 근친혼 관계이고, 1013년 비로 책봉되었으나 자녀는 없었다. -
고려 현종의 왕비 -
원평왕후
원평왕후는 안산 김씨로 현종의 왕비이며, 김은부의 딸이자 원성왕후, 원혜왕후의 동생으로, 원혜왕후 사후 입궁하여 왕비가 되었고 효경공주를 낳았으며, 1028년 원평왕후 시호를 받았고 능은 의릉이다. -
이천 서씨 -
서정협
서정협은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시청에서 다양한 보직을 거쳐 서울특별시장 권한대행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다. -
이천 서씨 -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인 서경배는 서성환 창업주의 차남으로, 아모레퍼시픽을 세계적인 뷰티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경영 능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며, 서경배과학재단을 설립하여 사회 공헌 활동도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2. 생애
삼중대광 내사령 서눌의 딸이자 거란과의 외교 담판으로 유명한 서희의 손녀이다. 1022년(현종 13년) 숙비(淑妃)로 책봉되었으며 흥성궁주(興盛宮主)라는 호를 받았다. 그녀가 왕비가 되면서 아버지 서눌은 높은 관직에 올랐고, 어머니와 계모 역시 작위를 추증받았다. 1057년(문종 11년) 음력 5월에 아들 없이 사망하여 능호(陵號) 없이 화장되었으며, 시호는 원목왕후(元穆王后)이다.
2.1. 가계와 출신
998년 이천 서씨 가문에서 서눌과 부인 최씨의 딸로 태어났다. 본관은 이천이며, 할아버지는 거란과의 외교 담판으로 유명한 서희이다. 남동생으로 서수가 있었는데, 그의 후손들은 고려 왕실에서 높은 지위를 누렸다.
1022년(현종 13년) 숙비(淑妃)에 책봉되었으며, 그 호를 흥성궁주(興盛宮主)라고 하였다. 같은 해 아버지 서눌은 딸이 왕비가 되자 중추사우산기상시, 서경유수판사 등을 역임하였고, 이후 덕종 때에는 문하시중의 자리에 올랐다. 1026년(현종 17년)에는 현종이 원목왕후의 생모 최씨에게 이천군대부인(利川郡大夫人)의 호를, 계모 정씨에게 이천군대군(利川郡大君)의 호를 추증했다.
1057년(문종 11년) 음력 5월에 사망하였다. 당시 조정에서는 그녀가 왕(문종)의 서모(庶母)이기는 하나 아들을 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종에게 상복을 입지 말 것을 건의하였고 문종은 이를 따랐다. 또한 같은 이유로 능호(陵號)가 내려지지 않았고 설날에 제사를 지내지 않게 하였다. 그녀의 시신은 화장되었으며, 시호는 원목왕후(元穆王后)이다.
2.2. 입궁과 후궁 생활
삼중대광 내사령을 지낸 서눌과 그의 부인 최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이천이다. 그녀는 거란과의 외교 담판으로 유명한 서희의 손녀이다.
1022년(현종 13년)에 입궁하여 숙비(淑妃)로 책봉되었고, 흥성궁(興盛宮)에 거처하며 흥성궁주(興盛宮主)라는 호를 받았다. 같은 해, 그녀의 아버지 서눌은 딸이 숙비가 되자 중추사우산기상시, 서경유수판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덕종 재위 시기에는 문하시중의 자리에 올랐다.
1026년(현종 17년), 현종은 그녀의 생모인 최씨에게 '이천군대부인'(利川郡大夫人)의 작위를, 계모인 정씨에게는 '이천군대군'(利川郡大君)의 작위를 추증하였다.
2.3. 현종 사후와 죽음
현종이 1031년에 사망한 후에도 26년을 더 살다가, 1057년(문종 11년) 음력 5월에 사망하였다. 당시 조정에서는 원목왕후가 문종의 서모(庶母)이고 아들을 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종에게 상복(喪服)을 입지 말라고 간하여 문종이 이를 따랐다. 같은 이유로 능호(陵號)가 내려지지 않았으며, 설날에 지내는 제사 대상에서도 제외되었다. 시신은 화장되었으나 묘의 위치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사후 문종의 명에 따라 원목왕후(元穆王后)라는 시호를 받았다.
3.1. 친가
wikitext
| 관계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 증조부 | 서필(徐弼) | 901년 ~ 965년 | 종1품 삼중대광 태사 내사령(三重大匡太師內史令) |
| 증조모 | 평양 황씨(平壤黃氏) | ? ~ ? | |
| 조부 | 서희(徐熙) | 942년 ~ 998년 | 종1품 내의령(內議令) |
| 조모 | 청주 한씨(淸州韓氏) | 947년 ~ ? | 한식(韓湜)의 딸 |
| 아버지 | 서눌(徐訥) | 972년 ~ 1043년 | 종1품 문하시중(門下侍中) |
| 어머니 | 인천 궁주 최씨(仁川宮主崔氏) | 974년 ~ ? | 최유일(崔有一)의 딸 |
| 동생 | 서수(徐琇) | 996년 ~ ? | 종1품 문하시중, 희양대군(希陽大君) 봉작 |
| 조카 | 서장기(徐長己) | 1024년 ~ ? | 정4품 병부시랑(兵部侍郞) |
| 조카 | 서준방(徐俊邦) | ? ~ ? | 정3품 형부상서(刑部尙書), 평당 서씨(平當徐氏) 시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