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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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위불해는 전한 무제 때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당도후에 봉해진 인물이다. 후원 2년 태상에 임명되었으나, 6년 후 면직되었다. 시호는 강이며, 작위는 아들 위성이 이었다. 안사고는 《한서》에서 중위 불해가 위불해라고 언급했지만, 근거는 불분명하다.

위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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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내용 없음)

2.1. 초기 생애와 반란 진압

무제 때, 공손용(公孫勇)과 호천(胡倩)이 무제의 사자를 사칭하며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 이들은 기병 수십 기를 이끌고 도적을 잡는다는 핑계로 진류의 전사(傳舍, 여행객 숙소)에 머물렀다. 회양태수 전광명이 이들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체포에 나섰다. 당시 어현(圉縣)의 수위(守尉)였던 위불해는 강덕, 소창과 함께 공손용과 호천 일당을 모두 체포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위불해는 당도후(當塗侯)에 봉해졌다.

후원 2년(기원전 87년)에는 태상에 임명되었으나, 6년 뒤 문제의 종묘 기왓장이 바람에 날아간 사건의 책임을 지고 면직되었다.

시호는 강(康)이며, 작위는 아들 위성이 이어받았다.

한편, 안사고는 《한서》 권27에 등장하는 중위 불해가 위불해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했으나, 그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2.2. 당도후 책봉과 태상 임명

무제 재위 시기, 공손용(公孫勇)과 호천(胡倩)이라는 인물이 무제의 사자를 사칭하여 반란을 모의하였다. 이들은 기병 수십 기를 동원하여 도적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진류 지역의 전사(傳舍, 여행객이 머무는 숙소)에 머물렀다. 이러한 움직임을 수상히 여긴 회양태수 전광명은 이들의 반란 계획을 간파하고 즉시 체포 작전에 돌입했다. 당시 어현(圉縣)의 수위(守尉) 직책에 있던 위불해는 강덕, 소창 등과 협력하여 공손용과 호천 일당을 성공적으로 검거하였다. 이 공적을 높이 평가받아 위불해는 당도후(當塗侯)의 작위를 받게 되었다.

이후 후원 2년(기원전 87년)에는 국가의 제사를 주관하는 태상의 자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6년 후, 문제의 종묘 지붕에 있던 기왓장이 바람에 날아가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위불해는 이 사건에 대한 관리 책임을 물어 결국 면직되었다.

사후 강(康)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그의 작위는 아들인 위성이 이어받았다.

한편, 당나라 시대의 학자 안사고는 《한서》 권27에 등장하는 중위 직책의 불해라는 인물이 바로 위불해와 동일 인물이라고 주석을 달았으나, 그 근거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2.3. 면직과 사망

후원 2년(기원전 87년), 태상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6년 후 문제의 종묘에 있던 기왓장이 바람에 날아간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면직되었다.

사망 후 시호는 강(康)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위성이 이었다.

안사고는 《한서》 권27에 등장하는 중위 불해가 위불해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였으나, 명확한 근거는 알려져 있지 않다.

3. 출전

* 반고, 《한서》 권17 경무소선원성공신표·권19하 백관공경표 下·권90 혹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