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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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남호는 대한민국의 야구 지도자이다. 1982년 해태 타이거즈의 창단 투수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여, 1983년 팀의 첫 KBO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해태 타이거즈,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등에서 코치직을 수행했으며, KIA 타이거즈 감독 대행과 정식 감독을 역임했으나 1년 만에 사임했다. 1996년 해태 타이거즈 항명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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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은 전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선수 시절 유격수로 활약하며 도루왕을 차지했고, 은퇴 후 코치와 감독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KBO 경기 감독관으로 활동한다. - 한국야구위원회 - 김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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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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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선수명 | 유남호 |
원어명 | Yoo Nam-Ho |
출생지 | 충청남도 당진군 |
생년월일 | 1951년 9월 3일 |
신장 | 183 |
체중 | 85 |
수비 위치 | 투수 |
투구 | 우 |
타석 | 우 |
프로 입단 연도 | 1983년 |
선수 경력 | |
선수 경력 | 롯데 자이언트 |
코치 경력 | |
코치 경력 | 해태 타이거즈 투수코치 (1982년 ~ 1984년) 청보 핀토스 투수 겸 코치 (1986년) 청보 핀토스 투수코치 (1987년) 태평양 돌핀스 투수코치 (1988년) 해태 타이거즈 수석코치 (1990년 ~ 2000년) 삼성 라이온즈 투수코치 (2001년 ~ 2003년) KIA 타이거즈 수석코치 (2004년) |
감독 경력 | |
감독 경력 | 해태 타이거즈 감독 대행 (2000년) KIA 타이거즈 감독 대행 (2004년) KIA 타이거즈 감독 (2005년) |
2. 선수 경력
유남호는 선린상업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실업 롯데에서 선수 겸 코치 생활을 했다.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해태 타이거즈의 창단 투수 코치로 부임하였다.
시즌 초 김동엽 감독이 해임되었지만, 조창수 감독 대행 체제와 김응용 감독 체제에서도 투수코치직을 계속 유지하였으며, 1983 시즌 김응용 감독의 해태 타이거즈가 우승하는 데 일조했다. 1985년 3월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1] 같은 해 11월 22일부터 3년 계약 형식으로[2] 청보 핀토스(88년 태평양 돌핀스로 변경) 투수 겸 코치를 맡아 현장에 돌아왔는데, 1986년 말부터 코치에만 전념했다. 1988년 시즌 후 태평양 돌핀스(청보 핀토스 포함)와의 계약이 종료되자 한동안 현장을 떠났다가 1989 시즌이 끝난 뒤 해태 타이거즈로 돌아와 2000 시즌까지 투수코치로 지냈다. 김응용 감독이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팀 준비로 잠시 자리를 떴을 때에는 감독 대행을 맡았다.
2000 시즌이 끝난 후 김응용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로 감독직을 옮길 때 함께 자리를 옮겼지만, 구단 운영에 대해 김응용 감독과 의견 대립이 많아지면서 2003년 6월 삼성 라이온즈에서 나왔다. 다음 해 친정 구단 KIA 타이거즈로 돌아왔는데[3], 1996년 하와이 항명 사건 당시 코치진-선수들 사이의 갈등에서[4] 중심이었던 것이 컸다. 이 사건의 주동자였던 송유석, 이순철, 조계현, 정회열, 이건열이 1996년부터 1997년까지 다른 팀으로 이적하거나 은퇴했지만, 김정수는 어느 정도 사건 수습을 한 터라 오랫동안 살아남았으며, 이 탓인지 2000년 김응용 감독의 추천으로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었다.
KIA 타이거즈에서 김성한 감독의 지휘 아래 2군 감독과 1군 수석 코치를 수행하다가, 2004년 7월에 성적 부진으로 김성한 감독이 경질되자 감독 대행직을 수행하였다. 그해 10월에는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5] 2005년 감독으로서 첫 시즌을 맞이했으나 최하위로 떨어졌고, 1년 만에 KIA 타이거즈의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김인식 전 두산 감독이 김성한 감독 후임 물망에 올랐지만 KIA 타이거즈가 포기하는 바람에[6] 한화 이글스 감독을 맡았다.
이후 KBO의 전력 분석관을 맡아 해외 국가 대표팀을 분석하는 업무를 맡았으며, 경기 감독관으로 재직해 오고 있다. LG 트윈스가 이광환 전 감독을 2군 감독으로 보내서 계약 기간을 채워주려 한 선례를 본따[7] KIA 타이거즈가 유남호를 2군 감독으로 임명시키려 했으나[8] 스스로 고사하며 팀을 떠났다.
한편, 해태 코치(82년, 90~95년), 청보 코치(87년) 시절 등번호 34번을 착용했는데, 이 등번호는 외야수가 34번을 선택하면[9] 좌익수, 거포들의 번호로 인식된 터라 내야수가 34번을 사용하면[10] 1루수에서 많이 쓴다.
2. 1. 아마추어 시절
당진군에서 태어나 서울특별시에서 자랐다. 투수로 활약하여 선린상업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2. 2. 실업 야구 시절
유남호는 당진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선린상업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주로 투수로 활약하였다. 이후 실업 롯데에서 선수 겸 코치로 활동했다.[1]3. 지도자 경력
1982년 KBO 리그 출범과 함께 해태 타이거즈의 창단 투수 코치로 부임하였다. 시즌 초 김동엽 감독이 해임되었지만, 조창수 감독 대행 체제와 김응용 감독 체제에서도 투수 코치직을 유지하였으며, 1983 시즌 김응용 감독의 해태 타이거즈가 우승하는 데 일조했다.
1985년 3월 미국 유학을 떠나[1] 11월 22일부터 3년 계약으로[2] 청보 핀토스(1988년 태평양 돌핀스로 변경) 투수 겸 코치를 맡아 현장에 돌아왔으나, 1986년 말부터 코치에만 전념했다. 1988년 시즌 후 태평양(청보 포함)과 계약이 종료되자 1989 시즌 후 해태 타이거즈로 돌아와 2000 시즌까지 투수 코치를 역임했다. 김응용 감독이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팀 준비로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에는 감독 대행을 맡기도 했다.
2000 시즌 후 김응용 감독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지만,[3] 구단 운영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로 2003년 6월 팀을 떠나 다음 해 친정 팀 KIA 타이거즈로 복귀했다. KIA 타이거즈에서 김성한 감독 지휘 아래 2군 감독과 1군 수석 코치를 수행하다가, 2004년 7월 김성한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자 감독 대행직을 수행하였다. 그해 10월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으나,[5] 2005년 최하위를 기록하며 1년 만에 KIA 타이거즈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KBO 전력 분석관과 경기 감독관으로 재직했다.
3. 1. 해태 타이거즈 코치 (1기)
1982년 KBO 리그 출범과 함께 해태 타이거즈의 창단 투수 코치로 부임하였다. 시즌 초 김동엽 감독이 해임되었지만, 조창수 감독 대행 체제와 김응용 감독 체제에서도 투수 코치직을 계속 유지하였다. 1983년 김응용 감독 체제에서 해태 타이거즈가 첫 우승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1]3. 2.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 코치
1985년 3월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1] 같은 해 11월 22일부터 3년 계약 형식으로[2] 청보 핀토스의 투수 겸 코치를 맡아 현장에 돌아왔다. 1986년 말부터 코치에만 전념했고 1988년 시즌 후 태평양(청보 포함)과의 계약이 종료되었다.3. 3. 해태 타이거즈 코치 (2기)
1989 시즌 후 해태 타이거즈로 돌아와 2000 시즌까지 투수 코치를 역임했다.[3] 김응용 감독이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팀 준비로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는 감독 대행을 맡기도 했다.1996년 하와이 항명 사건 당시 코치진과 선수들 사이의 갈등[4] 중심에 있었으며, 이 사건의 주동자였던 송유석, 이순철, 조계현, 정회열, 이건열은 1996년부터 1997년까지 다른 팀으로 이적하거나 은퇴했다. 반면 김정수는 사건 수습에 기여하여 오랫동안 팀에 남았고, 2000년 김응용 감독의 추천으로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었다.
3. 4. 삼성 라이온즈 코치
2000 시즌 후 김응용 감독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3] 그러나 구단 운영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로 김응용 감독과 갈등이 심해져 2003년 팀을 떠났다.[3]3. 5. KIA 타이거즈 코치 / 감독
2003년 6월 삼성 라이온즈에서 나와 이듬해 친정 팀 KIA 타이거즈로 복귀했다.[3] 1996년 하와이 항명 사건 당시 코치진과 선수들 사이의 갈등에 중심에 있었던 것이 컸다.[4]KIA 타이거즈에서 김성한 감독의 지휘 아래 2군 감독과 1군 수석 코치를 수행하다가, 2004년 7월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김성한 감독이 경질되자 감독 대행직을 수행하였다. 그해 10월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5] 2005년 감독으로서 첫 시즌을 맞이했으나 최하위로 떨어졌고, 사령탑에 부임한 지 1년 만에 KIA 타이거즈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김인식 전 두산 감독이 김성한 감독 후임으로 거론되었지만, KIA 타이거즈가 영입을 포기하면서[6] 한화 이글스 감독을 맡게 되었다.
이후 KIA 타이거즈가 유남호를 2군 감독으로 임명하려 했으나,[8] 스스로 고사하며 팀을 떠났다.
4. 행정가 경력
KBO 전력 분석관을 맡아 해외 국가 대표팀을 분석하는 업무를 맡았으며, 이후 경기 감독관으로 재직했다. LG 트윈스가 이광환 전 감독을 2군 감독으로 보내서 계약 기간을 채워주려 한 선례를 본따[7] KIA 타이거즈가 유남호를 2군 감독으로 임명시키려 했으나[8] 스스로 고사하며 팀을 떠났다.
5. 논란 및 사건사고
유남호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김응용 감독과의 구단 운영 관련 의견 차이로 2003년 6월 팀을 떠났다.[3] 이후 친정 팀 KIA 타이거즈로 돌아왔으나, 1996년 하와이 항명 사건 당시 코치진과 선수들 사이의 갈등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4]
5. 1. 1996년 해태 타이거즈 항명 사건
1996년 하와이 항명 사건 당시 코치진과 선수들 사이의 갈등 중심에 있었다.[4] 이 사건의 주동자였던 송유석, 이순철, 조계현, 정회열, 이건열은 1996년부터 1997년까지 다른 팀으로 이적하거나 은퇴했다. 반면, 김정수는 사건 수습에 기여하여 오랫동안 팀에 남았고, 2000년 김응용 감독의 추천으로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유남호 코치는 선수단과의 갈등으로 팀 분위기를 와해시키고 주축 선수들의 이탈을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참조
[1]
뉴스
감독 코치도「영욕」뒤바뀌고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1985-07-09
[2]
뉴스
柳南鎬(유남호)씨 靑寶(청보) 코치로 계약금·年俸(연봉)4,0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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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85-11-23
[3]
뉴스
"[프로야구]기아 김성한감독 전격 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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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4-07-2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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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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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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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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