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 (성양경왕)
1. 개요
유연(성양경왕)은 전한 시대의 제후로, 성양공왕 유희의 아들이다. 기원전 144년에 성양공왕의 뒤를 이어 성양왕이 되었으며, 기원전 134년, 130년, 123년, 118년에 입조했다. 118년에 사망하여 아들 유의가 뒤를 이었다. 유연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으며, 원수 원년(기원전 122년)에 이들은 후작에 봉해졌다.
유연 (성양경왕)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기원전 118년 사망 -
이채 (전한)
이채는 전한 시대 흉노 토벌에 공을 세워 낙안후에 봉해졌지만, 승상 재직 중 능묘 건설 부정부패로 자결한 비운의 인물이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
전한 사람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 사람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2. 생애
아버지 성양공왕이 기원전 144년에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성양왕의 자리에 올랐다. 재위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전한의 수도 장안에 입조하였다. 재위 26년째인 기원전 118년에 사망하였으며, 아들인 성양경왕 유의가 왕위를 계승했다.
2.1. 중앙 정부와의 관계
아버지 성양공왕이 기원전 144년에 사망하자, 유연은 그 뒤를 이어 성양왕에 즉위했다. 그는 재위 기간 동안 총 네 차례에 걸쳐 전한의 수도인 장안으로 가 황제를 만나는 입조를 행했는데, 이는 당시 제후왕과 중앙 정부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의례였다. 구체적인 입조 기록은 다음과 같다.
마지막으로 입조한 해인 기원전 118년에 사망하였으며, 아들인 성양경왕 유의가 왕위를 계승했다.
3. 가계
* 성양공왕 유희
성양경왕 유연
* 성양경왕 유의
유연에게는 성양경왕위를 계승한 유의 외에도 여러 아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원수 원년(기원전 122년) 4월 무인일에 후작에 봉해졌다. 이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문단에서 다룬다.
3.1. 후작에 봉해진 아들들
성양경왕 유연의 아들 중 후작에 봉해진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이상의 후작들은 모두 원수 원년(기원전 122년) 4월 무인일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