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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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채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문제 때 낭으로 시작하여 경제 때 공을 세워 이천석이 되었다. 무제 때 경거장군으로 흉노를 정벌하여 악안후에 봉해졌으며, 어사대부와 승상을 역임했다. 그러나 경제 능묘의 토지를 훔쳐 팔아 자결했다. 이광의 종형으로, 이광보다 명성은 낮았으나 출세는 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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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문제 때 낭(郞)이 되었고, 경제 때에는 공적을 쌓아 이천석이 되었다. 무제 때인 원삭 5년(기원전 124년), 대의 이었던 이채는 경거장군(經車將軍)에 임명되어 위청 휘하에서 흉노를 쳤고, 흉노의 왕을 사로잡은 공로로 악안(樂安侯)에 봉해졌다. 원수 원년(기원전 122년)에 어사대부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공손홍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되었다.

원수 5년(기원전 118년), 무제에게서 경제의 능묘에 딸린 토지 20무(畝)를 무덤자리로 하사받았다. 그러나 능묘에서 3경(頃)을 몰래 더 떼어서 400000 전에 팔아치웠고, 또 경제의 제사에 쓰이던 공터 1무를 침범하여 거기에 장례를 치렀다. 이 사실이 발각되어 형리에게 넘겨지게 되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채는 특출난 데가 없는 자로, 명성은 이광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으나 입은 은덕이나 출세는 이광을 능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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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내용
시대전한
생몰년생년 미상 - 기원전 118년 (원수 5년)
본관 및 출신지량주농서군 성기현
직관낭(전한)→대상(전한)→ 경차장군(전한)→어사대부(전한)→승상(전한)
작위낙안후(열후) (전한)
소속문제→경제→무제
가족일족: 이광(종형), 조카: 이당호, 이초, 이건

2.1. 초기 생애 및 관직 생활

문제 때 낭(郞)이 되었고, 경제 때에는 공적을 쌓아 이천석이 되었다.

무제 때인 원삭 5년(기원전 124년), 대이었던 이채는 경거장군(經車將軍)에 임명되어 위청 휘하에서 흉노를 쳤고, 흉노의 왕을 사로잡은 공로로 악안(樂安侯)에 봉해졌다. 원수 원년(기원전 122년)에 어사대부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공손홍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되었다.

2.2. 흉노 정벌과 악안후 책봉

문제 때 낭(郞)이 되었고, 경제 때에는 공적을 쌓아 이천석이 되었다.

무제 때인 원삭 5년(기원전 124년), 대이었던 이채는 경거장군(經車將軍)에 임명되어 위청 휘하에서 흉노를 쳤고, 흉노의 왕을 사로잡은 공로로 악안(樂安侯)에 봉해졌다. 원수 원년(기원전 122년)에 어사대부가 되었고, 이듬해(기원전 121년)에는 공손홍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되었다.

2.3. 승상 임명과 죽음

원수 원년(기원전 122년)에 어사대부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공손홍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되었다.

원수 5년(기원전 118년), 무제에게서 경제의 능묘에 딸린 토지 20무(畝)를 무덤자리로 하사받았다. 그러나 능묘에서 3경(頃)을 몰래 더 떼어서 400000 전에 팔아치웠고, 또 경제의 제사에 쓰이던 공터 1무를 침범하여 거기에 장례를 치렀다. 이 사실이 발각되어 형리에게 넘겨지게 되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4. 이광과의 비교

이채는 특출난 데가 없는 자로, 명성은 이광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으나 입은 은덕이나 출세는 이광을 능가하였다.

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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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이름비고
아버지이광
이당호
이숙
아들이우악안후 세습 중 요절
아들이유악안후 세습 중 봉국 폐지

4.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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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책임기전임자후임자
전한주작도위기원전 124년 ~ 기원전 123년급암조이기
전한어사대부기원전 122년 ~ 기원전 121년반계장탕
전한승상기원전 121년 ~ 기원전 118년공손홍장청적
전한의 악안후기원전 124년 5월 정미일 ~ 기원전 118년(첫 봉건)(봉국 폐지)


이채는 문제 시대에 낭이 되어 이광과 함께 섬겼으며, 경제 시대에는 공적을 쌓아 이천석의 관리가 되었다. 무제 원삭 5년 (기원전 124년)에 대의 상에서 경차장군이 되어 위청의 지휘하에 흉노를 토벌했고, 흉노의 왕을 사로잡은 공적으로 열후 (낙안후)에 봉해졌다.

원수 원년 (기원전 122년)에 어사대부가 되었고, 원수 2년 (기원전 121년)에 승상 공손홍이 사망하자 후임 승상이 되었다.

5. 작위

문제 때 낭이 되어 이광과 함께 섬겼으며, 경제 때 공적을 쌓아 이천석의 관리가 되었다. 무제 원삭 5년(기원전 124년) 대의 상에서 경차장군이 되어 위청의 지휘 아래 흉노를 토벌하여 흉노의 왕을 사로잡은 공적으로 낙안후(열후)에 봉해졌다.

원수 원년(기원전 122년)에 어사대부가 되었고, 원수 2년(기원전 121년) 승상 공손홍이 사망하자 후임 승상이 되었다. 원수 5년(기원전 118년), 제사에 사용하는 토지를 함부로 매각한 것이 발각되어 옥에 갇히자 자결하였다.

이채는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고, 종형인 이광과 비교하면 명성은 훨씬 뒤떨어졌지만, 은상과 출세는 이광을 앞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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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의 작위와 봉읍 변동
작위봉읍연도비고
낙안후(樂安侯)2,200호 → 3,600호기원전 124년 ~ 기원전 118년흉노 왕을 사로잡은 공적으로 봉해짐. 제사 토지 매각 문제로 자결 후 봉국 폐지.

6. 평가

이채는 평범한 인물로, 종형인 이광에 비해 명성은 훨씬 떨어졌지만, 은상과 출세는 이광을 앞섰다.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에는 다음과 같이 이채와 이광을 비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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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내용
사기 권109 이장군열전이채는 재능이 중하(中下) 정도였으나, 이광은 그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러나 이채는 열후에 봉해지고 구경의 반열에 올랐지만, 이광은 끝내 열후에 봉해지지 못하고, 관직도 구경에 이르지 못했다.
한서 권54 이광소건전이광과 이채는 모두 무관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이광은 흉노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반면, 이채는 평범한 재능으로 제후의 반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