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불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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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을불혼은 북위 시대의 인물로, 생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며 출신 배경 또한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문제 때 차기대장군에 봉해지고 태원왕에 책봉되었으며, 헌문제 즉위 후 권력을 장악하여 조서를 위조하고 여러 관료들을 살해했다. 승상 자리에 올라 국정을 장악했으나, 반란을 꾀한다는 의심을 받아 처형되었다.

을불혼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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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불황후
을불 (乙弗)
아후라 (阿侯羅)
시호문명황후 (文明皇后)
생몰년495년 ~ 556년
출생지삭주 (朔州)
민족선비족 (鮮卑族)
가족 관계
부친을불흘두 (乙弗 흘豆)
배우자원굉 (元宏, 효문제)
자녀원후 (元詡, 효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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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을불혼의 출신과 생애 전반에 대해서는 《위서》나 《북사》에도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기 어렵다. 학자 요미원은 그를 토욕혼 북부 지파인 을불씨의 후예로 추정했다. 북위 문제 때 차기대장군의 칭호를 받고 동군공에 봉해졌고, 462년에는 태원왕이 되었으며 이후 시중 직을 겸했다.

465년 헌문제가 즉위하자, 을불혼은 조서를 위조하여 상서 양보년, 평양공 가애인, 남양공 장천도, 사도 육려 등 주요 인물들을 살해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는 태위 겸 녹상서사를 거쳐 같은 해 7월에는 승상에 올라 국정을 총괄했다.

466년에는 하간공 탁발릉을 살해하는 등 권력을 남용하였으나, 시중 탁발비가 을불혼의 반란 모의를 고발했다. 당시 어린 헌문제를 대신해 문명태후가 실권을 쥐고 있었는데, 태후의 주도 하에 탁발비 등이 을불혼을 체포하여 466년 2월 반란 모의죄로 처형했다.

2.1. 출신 배경

을불혼은 한때 권력의 정점에 올랐던 인물이지만, 그의 개인적인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북위정사로 평가받는 《위서》와 《북사》에서조차 그의 전기가 누락되어 있는데, 이는 악명 높은 인물들까지 상세히 기록하는 두 역사서의 성격을 고려할 때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의 출신과 생애 전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학자 요미원은 을불혼이 을불씨 출신이며, 이 을불씨는 토욕혼 북부의 한 지파로서 칭하이호 연안에 거주했던 '을불적' 또는 '을불선비'의 후예일 것으로 추정했다.

문제 재위 시기, 을불혼은 차기대장군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동군공에 봉해졌다. 462년 (화평 3년) 1월에는 태원왕으로 봉해졌으며, 이후 차기대장군 직을 유지하면서 시중의 직책을 겸임하게 되었다.

2.2. 권력 장악

465년 5월 11일, 문성제가 사망하고 그의 어린 아들인 태자 탁발홍이 헌문제로 즉위하였다. 당시 시중 겸 거기대장군이었던 을불혼은 헌문제가 즉위하자마자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는 조서를 위조하여 상서 양보평, 평양공 가애인, 남양공 장천도 등 많은 경쟁 세력을 제거하였다. 또한, 문성제의 깊은 신임을 받았던 고위 관료이자 당시 시중사도였던 평원왕 육려를 수도 평성(현 산시성 다퉁시)으로 불러들였다. 평소 육려와 갈등 관계에 있던 을불혼은 결국 5월 16일에 육려와 그의 사위인 사위감 구목릉다후를 살해하였다.

권력 장악에 박차를 가한 을불혼은 5월 17일태위 겸 녹상서사에 임명되었다. 이 과정에서 을불혼 제거를 도모하던 전중상서 순양공 탁발욱마저 살해되었다. 군대 지휘권까지 장악한 을불혼은 공식적인 섭정은 아니었으나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였다. 7월 2일에는 승상의 자리에 오르고 태원왕에 봉해지면서 그의 지위는 다른 왕들보다 높아졌으며, 국가의 모든 대소사는 그의 손을 거쳐 결정되었다.

466년, 조정의 모든 권력을 독점한 을불혼의 전횡은 더욱 심해졌다. 그는 하간공 탁발제의 아들인 하간공 탁발릉을 살해하였고, 이조(인사 담당)의 업무를 맡고 있던 안원장군 가수에게 자신의 처를 공주로 책봉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을불혼의 이러한 행태는 오래가지 못했다. 시중 탁발비(탁발예괴의 현손)가 을불혼이 반란을 도모하고 있다고 당시 황후였던 풍태후(문명태후)에게 알렸다. 당시 헌문제는 12세에 불과했으므로, 실제 을불혼 제거는 문명태후가 주도하였다. 마침내 풍태후는 쿠데타를 일으켰고, 2월 2일 경신일에 탁발비는 헌문제의 명령을 받아 탁발하, 우익득과 함께 을불혼을 체포하여 반란을 계획한 죄로 처형하였다.

2.3. 권력 남용과 몰락

465년 5월 11일, 문성제가 사망하고 어린 아들 탁발홍이 헌문제로 즉위했다. 당시 시중(侍中) 겸 거기대장군(車騎大將軍)이었던 을불혼은 헌문제가 즉위하자마자 권력을 장악했다. 그는 조서를 위조하여 상서(尙書) 양보평(楊保平), 평양공(平陽公) 가애인(賈愛仁), 남양공(南陽公) 장천도(張天度) 등 많은 경쟁 세력을 제거했다. 또한 문성제의 신임이 두터웠던 시중 겸 사도(司徒) 평원왕(平原王) 육려를 수도 평성(산시성 다퉁시)으로 불러들여, 5월 16일에 육려와 그의 귀경을 만류했던 사위감(司衛監) 구목릉다후(丘穆陵多侯)를 살해했다.

5월 17일, 을불혼은 태위(太尉) 겸 녹상서사(錄尙書事)에 임명되었다. 이때 전중상서(殿中尙書) 탁발욱(拓跋郁)이 을불혼 제거를 도모했으나 발각되어 오히려 살해당했다. 군 지휘권까지 장악한 을불혼은 공식적인 섭정은 아니었지만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7월 2일에는 승상(丞相)의 자리에 올라 태원왕(太原王)에 봉해졌으며, 그의 지위는 여러 왕들보다 높아져 국가의 모든 대소사를 직접 결정했다.

466년, 조정의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을불혼의 전횡과 살육은 더욱 심해졌다. 그는 하간공(河間公) 탁발제의 아들인 하간공 탁발릉(拓跋陵)을 살해했으며, 또 다른 정적 제거를 계획했다. 당시 인사 담당(吏曹)이던 안원장군(安遠將軍) 가수(賈秀)에게 자신의 처를 공주로 책봉하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가수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시중(侍中) 탁발비(탁발예괴의 현손)가 을불혼이 반란을 도모하고 있다고 문성제의 황후였던 풍태후(문명태후)에게 알렸다. 당시 헌문제는 12세에 불과하여 실제로는 풍태후가 을불혼 제거를 주도했다. 마침내 풍태후는 쿠데타를 일으켰고, 2월 2일 (경신일) 탁발비가 헌문제의 명을 받아 탁발하(拓跋賀)와 우익득(牛益得)을 이끌고 을불혼을 체포했다. 을불혼은 반란 모의 혐의로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