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릉 (조선 경종)
1. 개요
의릉은 조선 제20대 왕 경종과 그의 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이다. 의릉은 역사, 구조, 부속 건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람 시간은 계절별로 다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관람 요금은 유료이며,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국가 | 대한민국 |
|---|---|
| 유형 | 사적 |
| 지정 번호 | 204 |
| 지정일 | 1970년 5월 26일 |
| 주소 |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 산 1-5 |
| 소유자 | 국유 |
| 시대 | 조선(1724년, 1730년) |
-
서울 성북구 -
대한화학회
대한화학회는 1946년 창립되어 화학 및 응용 기술 발전을 목표로 학술대회 개최, 학술지 발간, 한국화학올림피아드 주관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대한민국의 화학 분야 학술 단체이다. -
서울 성북구 -
아리랑정보도서관
아리랑정보도서관은 2004년 5월 4일에 개관했으며, 현재 시설 현황과 이용 안내에 대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다. -
서울특별시의 사적 -
효창공원
효창공원은 조선 시대 문효세자의 묘에서 시작하여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시설이 있었고, 현재는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을 중심으로 공원, 운동 시설, 기념관 등이 공존하며 사적 제330호로 지정되었다. -
서울특별시의 사적 -
서대문형무소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으로 설립되어 1987년까지 사용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감옥으로,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어 고초를 겪었으며, 광복 후에는 서울구치소로 이름이 바뀌어 사용되다가 서대문독립공원으로 조성되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개관하여 현재는 역사 교육의 장이자 과거사 반성의 공간이다. -
조선 경종 -
이인좌의 난
이인좌의 난은 1728년 이인좌를 중심으로 소론 강경파가 영조 즉위에 반발하여 일으킨 반란으로, 과도한 세금과 지주 착취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이 사회적 배경이 되었으며, 3개월 만에 진압된 후 소론의 세력이 약화되고 탕평책이 추진되었다. -
조선 경종 -
신임사화
2. 역사
경종은 후사 없이 경종 4년(1724) 8월 25일 창경궁 환취정(環翠亭)에서 37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영조 즉위년(1724) 9월 묘호(廟號)를 경종, 능의 이름을 의릉이라 하고, 이 해 12월 양주 남쪽의 중량포(中梁浦)의 천장산 언덕에 장례 지냈다.
선의왕후 어씨는 본관이 함종(咸從)으로 영조 6년(1730) 6월 29일 경희궁 어조당(魚藻堂)에서 소생없이 승하하니 춘추 26세였다. 시호를 선의(宣懿), 능의 이름을 의릉이라 하여 10월에 천장산 경종릉 아래에 장례를 지냈다.
의릉이 효종의 영릉(寧陵)과 같이 쌍릉이면서도 좌우가 아닌 위 아래로 자리잡은 것은 좌우로 무덤을 만들 경우 능침(陵寢)이 정혈(正穴)을 벗어난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랐기 때문이다.
왕릉에는 병풍석(屛風石)을 세우지 아니하고 능침 주위로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였으며, 그 밖으로 양석(羊石)과 호석(虎石) 각 2쌍, 상석(床石) 1좌, 망주석(望柱石) 1쌍, 3면의 곡장(曲墻)으로서 위 층계를 이루었다. 그 한 단 아래에는 문인석(文人石)과 마석(馬石) 각 1쌍, 사각형 명등석(明燈石) 1좌가 있고, 그 아래 층계에는 무인석·마석 각 1쌍이 배치되어 있다. 왕릉 아래 왕비릉은 곡장이 없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난간석·양석·호석·상석·망주석·명등석·문인석·무인석·마석의 설치는 왕릉과 같다.
왕비릉 언덕 아래에 정자각(丁字閣)·비각(碑閣), 그리고 입구에 홍살문이 있다. 재실(齋室)은 홍살문 동북방 도로변에 있었으나, 영친왕 이은이 1970년 5월 서거한 후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홍릉·유릉 경역내에 영원을 조성한 후, 1973년도에 영원의 재실로서 옮겨 세워졌으며, 그 터는 일반 주택지가 되었다.
의릉은 아담한 천장산 산자락 밑에 위치 되어 단풍이 아름다우며 넓은 잔디밭이 있는 주민휴식공간이다. 1시간정도 걸리는 의릉산책로는 늘 한적해서 명상을 하면서 둘러보기에 더 없이 좋고, 아이들에게도 훌륭한 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다.
3. 구조
의릉은 효종의 영릉과 같이 쌍릉이지만, 좌우가 아닌 위아래로 조성되었다. 이는 좌우로 무덤을 만들 경우 능침(陵寢)이 정혈(正穴)을 벗어난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른 것이다.
왕릉에는 병풍석(屛風石)을 설치하지 않고, 능침 주위로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였다. 그 밖으로 양석(羊石)과 호석(虎石) 각 2쌍, 상석(床石) 1좌, 망주석(望柱石) 1쌍, 3면의 곡장(曲墻)으로 위층계를 이루었다. 그 한 단 아래에는 문인석(文人石)과 마석(馬石) 각 1쌍, 사각형 명등석(明燈石) 1좌가 있고, 그 아래 층계에는 무인석·마석 각 1쌍이 배치되어 있다. 왕비릉은 곡장이 없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설치는 왕릉과 같다.
의릉은 아담한 천장산 자락 밑에 위치하여 단풍이 아름답고, 넓은 잔디밭이 있어 주민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시간 정도 걸리는 의릉 산책로는 한적하여 명상하기 좋고, 아이들에게 훌륭한 교육 현장이 되고 있다.
3.1. 의릉의 특징
의릉은 효종의 영릉과 같이 쌍릉이지만, 좌우가 아닌 위아래로 조성되었다. 이는 좌우로 무덤을 만들 경우 능침(陵寢)이 정혈(正穴)을 벗어난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른 것이다.
왕릉에는 병풍석(屛風石)을 설치하지 않고, 능침 주위로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였다. 그 밖으로 양석(羊石)과 호석(虎石) 각 2쌍, 상석(床石) 1좌, 망주석(望柱石) 1쌍, 3면의 곡장(曲墻)으로 위층계를 이루었다. 그 한 단 아래에는 문인석(文人石)과 마석(馬石) 각 1쌍, 사각형 명등석(明燈石) 1좌가 있고, 그 아래 층계에는 무인석·마석 각 1쌍이 배치되어 있다. 왕비릉은 곡장이 없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난간석·양석·호석·상석·망주석·명등석·문인석·무인석·마석의 설치는 왕릉과 같다.
왕비릉 언덕 아래에는 정자각(丁字閣)·비각(碑閣)이 있고,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다. 재실(齋室)은 홍살문 동북방 도로변에 있었으나, 1973년도에 영친왕의 영원 재실로 옮겨졌고, 그 터는 일반 주택지가 되었다.
의릉은 아담한 천장산 자락 밑에 위치하여 단풍이 아름답고, 넓은 잔디밭이 있어 주민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시간 정도 걸리는 의릉 산책로는 한적하여 명상하기 좋고, 아이들에게 훌륭한 교육 현장이 되고 있다.
3.2. 부속 건물
왕비릉 언덕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그리고 입구에 홍살문이 있다. 재실은 홍살문 동북방 도로변에 있었으나, 영친왕 이은이 1970년 5월 서거한 후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홍릉·유릉 경역 내에 영원을 조성한 후, 1973년도에 영원의 재실로서 옮겨 세워졌으며, 그 터는 일반 주택지가 되었다.
4. 관람 안내
| 구분 | 관람 시간 | 비고 |
|---|---|---|
| 2월~5월, 9월~10월 | 09:00-18:00 |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 마감은 폐장 1시간 전 |
| 6월~8월 | 09:00~18:30 | |
| 11월~1월 | 09:00~17:30 |
관람 요금은 만 25~64세 개인 기준 1000KRW이며,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5. 사진
--
--
--
--
--
--
--
6. 기타
의릉은 아담한 천장산 산자락 밑에 위치하여 단풍이 아름다우며 넓은 잔디밭이 있어 주민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시간 정도 걸리는 의릉 산책로는 늘 한적해서 명상을 하면서 둘러보기에 더없이 좋고, 아이들에게도 훌륭한 교육 현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