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우에노 지진
1. 개요
이가우에노 지진은 1854년 7월 9일 일본 미에현 이가시 북부(이가국)에서 발생한 지진이다. 지진 규모는 리히터 규모 7.4로 추정되며, 최대 진도는 메르칼리 진도 계급 VI-VII를 기록했다. 이 지진으로 우에노성 성벽이 붕괴되고 995명이 사망했으며, 이가우에노 지역에서 625명이 사망하고 2,270채의 가옥이 붕괴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또한, 야쿠시지 동탑이 손상되었고, 가가와현의 마노이케 호수 제방이 붕괴되는 피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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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국 -
우에노성
우에노성은 미에현 이가시에 위치하며, 다키가와 카츠토시의 명령으로 축성되어 츠츠이 사다츠구에 의해 재건, 도도 다카토라에 의해 개수되었으나 천수각 붕괴 후 재건되지 않았고, 현재는 복원된 목조 천수가 있는 역사 박물관이자 국가 사적이다. -
이가국 -
이가류
이가류는 고용주와의 관계에 구애받지 않고 의뢰를 수행하며, 엄격한 훈련과 가혹한 처벌을 특징으로 하는 닌자 집단으로, 센고쿠 시대에 자치 공동체를 형성했으나 오다 노부나가에게 멸망하고 에도 시대에는 막부에 흡수되었다. -
1854년 지진 -
호요 해협 지진
호요 해협 지진은 1854년 12월 7일에 발생했으며, 이요국, 분고국, 부젠국 등에서 강한 진동이 감지되었고 중국 상하이에서도 감지되었으며, 쓰나미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주택 붕괴 등의 피해가 있었다. -
1854년 지진 -
안세이 도카이 지진
안세이 도카이 지진은 1854년 도카이도 지역에서 발생한 난카이 해곡 해구형 지진으로, 간토에서 긴키 지방에 걸쳐 피해를 초래했으며, 특히 시즈오카현 해안 지역과 시모다, 하마나호, 나고야 등이 쓰나미로 큰 타격을 입어 이후 도카이 지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
1854년 일본 -
미류수호조약
미류수호조약은 미국이 류큐를 일본 본토 진출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1854년 류큐 왕국과 체결한 조약으로, 양국 간 평화와 우호 관계, 주권 존중, 외교 및 통상 관계 수립 등을 내용으로 하지만, 복잡한 배경으로 인해 실효 여부에 논란이 있다. -
1854년 일본 -
미일 화친 조약
2. 지진 발생
1854년 7월 7일 (가에이 7년 6월 13일) 정오에 전진이 발생했다. 전진으로 건물이 붕괴되지는 않았으나, 이후에도 지진이 계속되어 밤새 잠을 자지 못하거나 밖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틀 뒤인 1854년 7월 9일 (가에이 7년 6월 15일) 오전 2시경 본진이 발생했으며, 같은 날 오후 6-8시경 최대여진이 발생했다.
2.1. 지진 규모 및 진앙
7월 7일(가에이 7년 6월 13일) 정오에 전진이 일어났다. 전진으로 인한 건물 붕괴 피해는 없었지만, 전진 이후 계속 지진이 찾아와 흔들리고, 대포 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리는 등의 이상 현상으로 밤새 잠을 자지 못하거나 집 밖의 뜰에서 자는 주민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틀 후인 7월 9일 오후 2시경 본진이 일어났으며 오후 6-8시경엔 최대여진이 일어났다.
본진은 같은 해 6월 15일(양력 7월 9일) 새벽 축시(오전 2시경)에 발생하여, 6-8시경에 최대 여진이 발생했다. 진앙은 , 규모는 7¼일본어이다.
우에노시 북쪽에서 서남서-동북동 방향으로 단층이 일어나 단층 남쪽에서 길이 약 1km, 폭 약 200m, 최대 변위폭 1.5m가 끊어지는 단층이 생겼다.
2.2. 지진 발생 메커니즘
7월 7일(가에이 7년 6월 13일) 정오에 전진이 일어났다. 전진으로 건물이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이후에도 계속 지진이 느껴지고 대포 소리가 들리는 등 이상 현상이 나타나 밤새 잠을 자지 못하거나 집 밖에서 자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틀 후인 7월 9일 오후 2시경 본진이 발생했고, 오후 6-8시경에는 최대여진이 일어났다. 진앙은 현대 일본의 미에현 이가시 북부이며, 지진 규모는 효고현 남부 지진과 거의 비슷한 7.25(7 1/4)이다. 최대 진도는 메르칼리 진도 계급 기준으로 미에현 욧카이치시, 이가우에노에서 VI-VII로 추정된다. 쓰시, 가메야마시, 구와나시에서는 진도 V를 느낀 것으로 추정된다. 에치고국, 히타치국, 나가토국 등 일본 여러 광범위한 지역에서 이가우에노 지진을 느꼈다는 기록이 있다.
우에노시 북쪽에서 서남서-동북동 방향으로 단층이 발생하여, 단층 남쪽에서 길이 약 1km, 폭 약 200m 범위에서 최대 1.5m 침강했다.
3. 피해 상황
우에노성의 동문과 서문 돌담이 붕괴되어 성지기 4명이 사망하고, 여러 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총 사망자는 995명이다. 이가우에노 지역에서는 사망자 625명, 부상자 994명이 발생했고, 가옥 2,270채와 창고 306채가 붕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후 양력 8월 3일(가에이 7년 7월 10일) 2시경까지 큰 규모의 여진이 잇따라 발생했다. 야쿠시지 동탑도 지진으로 손상되었다.
욧카이치시 겐푸구지(建福寺)에는 '안세이 원년 지진기념비'가 세워졌는데, 이 비석에는 이가우에노 지진으로 인한 화재로 300명이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가와현 마노이케(満濃池) 호수의 제방에 금이 가 물이 새다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붕괴되는 피해가 발생했으나, 붕괴 전조 현상이 뚜렷하여 인명 피해는 없었다.
나라에도 큰 피해가 있었다. 후루이치오모테에서는 큰 연못의 둑이 무너져 140~150호 가옥 중 45호를 제외한 나머지가 유실되었고, 110명이 사망했다. 난토(나라 시가지)에서는 2,400~2,500호가 붕괴되고 약 200명이 사망했으며, 코리야마(야마토코리야마)에서는 300호가 붕괴되고 80~90명이 사망했다.
5. 지진 기록 및 기념물
우에노성의 동문, 서문 돌담이 붕괴되어 성지기 4명이 사망하였으며 여러 산사태 피해를 입었다. 총 사망자는 955명으로 집계되었다. 이 중 이가우에노 지역의 사망자는 625명, 부상자는 994명이고 가옥 붕괴 2,270채, 창고 붕괴 306채의 피해를 입었다. 이후 일어난 여진에서도 양력 8월 3일(가에이 7년 7월 10일) 2시경까지 큰 규모로 잇달아 일어났다. 또한 지진으로 야쿠시지 동탑이 손상을 입었다.
'이가우에노 성 아래의 피해 지도'가 만들어져 가옥이 붕괴된 곳을 색칠한 지도도 나왔다. 또한 지진 이후 욧카이치시의 겐푸쿠지(建福寺)엔 '안세이 원년 지진기념비'가 지어졌다. 이 기념비에 따르면 이가우에노 지진에서 화재로 300명이 사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