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감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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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감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이광의 아들이다. 기원전 121년 흉노 정벌에 참전하여 적진을 돌파하는 활약을 보였으며, 이광 사후 낭중령이 되었다. 곽거병에게 종군하여 공을 세웠으나, 아버지의 죽음에 위청이 관련되었다고 생각하여 그를 폭행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곽거병에 의해 살해되었고, 한무제는 이를 은폐했다.

이감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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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이감은 이광의 아들로, 원수 2년(기원전 121년) 아버지 이광을 따라 흉노 정벌에 종군하여 공을 세웠다. 이후 곽거병에게 종군하였으나, 아버지 이광이 죽은 것이 위청 때문이라고 여겨 위청을 폭행하였다. 곽거병은 이감을 쏘아 죽였고, 무제는 이 사건을 은폐하였다.

2.1. 흉노 정벌 참전

원수 2년(기원전 121년), 이광은 흉노 정벌에 나섰다. 이때 흉노의 좌현왕 군세가 이광을 포위하였는데, 이감은 이광의 명령으로 기병 수십 명을 이끌고 적진을 돌파하고 돌아와서는 적들은 별것 아니라고 말하며 병사들을 안심시켰다.

이후 이광이 죽자, 이감은 낭중령이 되었다. 이광이 죽었을 때 이감은 곽거병에게 종군하여 공을 세웠는데, 이광이 죽은 것이 대장군 위청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때렸다. 위청은 이 사실을 숨겼으나, 곽거병이 알아차리고는 이감을 쏘아 죽였다. 곽거병을 총애한 무제는 이감이 사슴뿔에 받혀 죽었다고 공표하고 사건을 덮었다.

2.2. 낭중령 임명과 죽음

원수 2년(기원전 121년), 이감은 아버지 이광을 따라 흉노 정벌에 나섰다. 흉노의 좌현왕 군대가 이광을 포위하자, 이감은 아버지의 명령으로 기병 수십 명을 이끌고 적진을 돌파한 후 돌아와 "적들은 별 것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병사들을 안심시켰다.

이광이 죽은 후, 이감은 낭중령이 되었다. 이감은 곽거병에게 종군하여 공을 세웠으나, 아버지 이광이 죽은 것이 대장군 위청 때문이라고 여겨 위청을 때렸다. 위청은 이 사실을 숨겼지만, 곽거병이 이를 알고 이감을 쏘아 죽였다. 무제는 곽거병을 총애하여 이감이 사슴뿔에 받혀 죽었다고 발표하고 사건을 은폐하였다.

3. 평가

이감에 대한 평가는 전해지지 않는다.

4. 출전

* 사마천의 《사기》 권109 이장군열전
* 반고의 《한서》 권19하 백관공경표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