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고 리세란수
1. 개요
이니고 리세란수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아틀레틱 빌바오 유소년팀 출신으로, 1981년 1군에 합류하여 1980년대 초반 아틀레틱 빌바오의 전성기를 이끌며 라리가 2회 우승, 코파 델 레이 1회 우승,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회 우승을 경험했다. 1985년 스페인 국가대표팀 경기에 한 차례 출전했으며, 엘체 CF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30세에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감독으로 활동하며 여러 팀을 지도했다.
| 전체 이름 | 헤수스 이니고 리세란수 오초아 |
|---|---|
| 출생일 | 1959년 3월 13일 |
| 출생지 | 빌바오, 스페인 |
| 키 | 1.83m |
| 포지션 | 센터백 |
| 유소년 클럽 | 아틀레틱 빌바오 |
|---|---|
| 클럽 경력 | 1977–1981: 빌바오 아틀레틱 (109경기, 11골) 1980–1981: → 바라칼도 (임대) (37경기, 1골) 1981–1988: 아틀레틱 빌바오 (169경기, 17골) 1988–1989: 엘체 (19경기, 0골) |
| 총 출장 및 득점 | 334경기, 29골 |
| 청소년 국가대표 | 1976–1977: 스페인 U18 (6경기, 0골) |
|---|---|
| 국가대표 | 1985: 스페인 (1경기, 0골) |
| 감독 경력 | ?–?: 우베다 1998–1999: 잘라 2000–2003: 레모나 2003–2005: 아무리오 2006–2008: 바라칼도 2010–2011: 사모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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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칼도 CF의 축구 감독 -
카르멜로 세드룬
카르멜로 세드룬은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라리가 우승을 경험하고 스페인 국가대표로도 활약한 스페인의 전직 축구 골키퍼이자, 은퇴 후 SCD 두랑고, 바라칼도 CF, 셀타 비고 등의 클럽에서 감독을 맡았으며, 그의 아들과 손자 또한 골키퍼로 활동한 축구 가족이다. -
바라칼도 CF의 축구 감독 -
에드문도 수아레스
스페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에드문도 수아레스는 발렌시아 CF의 전설적인 공격수로 '델란테라 엘렉트리카' 라인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끌었고, 은퇴 후에는 발렌시아 CF의 감독으로 코파 델 레이 우승을 달성했다. -
1959년 출생 -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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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출생 -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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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수비수 -
마루야마 요시아키
마루야마 요시아키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J리그와 태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J리그 아시아 앰배서더로 활동했다. -
남자 축구 수비수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2. 클럽 경력
비스카이아도 빌바오 출신인 리세란수는 지역 명문 아틀레틱 빌바오의 유소년부를 거쳐 성장했다. 2군에서 경험을 쌓은 뒤 바스크 이웃 바라칼도 CF에서 세군다 디비시온 무대에 프로 선수로 데뷔했다.
1981년 친정팀 아틀레틱 빌바오로 복귀한 리세란수는 곧 주전 수비수로 자리매김하며 선수 경력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는 안도니 고이코에체아와 함께 견고한 중앙 수비진을 구축했으며, 강인한 플레이 스타일로 '[[록키]]'라는 별명을 얻었다. 리세란수는 아틀레틱 빌바오가 1982-83 시즌과 1983-84 시즌 연속으로 라리가 우승을 차지하는 등 황금기를 누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프리메라 디비시온 통산 188경기에 출전하여 17골을 기록한 그는 엘체 CF에서 1988-89 시즌 한 해를 보낸 뒤 1989년, 30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선수 생활을 마감한 후 리세란수는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1990년대 말부터 감독으로 활동하며 주로 고향인 바스크 지방의 여러 축구 클럽들을 이끌었다.
2.1. 초기 경력
비스카이아도 빌바오 출신인 리세란수는 지역의 명문 클럽인 아틀레틱 빌바오의 유소년부를 졸업했다. 2군에서 3년을 보낸 후, 그는 바스크 이웃 바라칼도 CF 소속으로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프로 무대 신고식을 치렀다.
1981년 여름, 친정팀 아틀레틱 빌바오로 복귀한 리세란수는 주전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안도니 고이코에체아와 함께 중앙 수비를 담당했으며, 그의 강인하고 거친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록키라는 별명을 얻었다. 1983-84 시즌, 아틀레틱 빌바오는 전 시즌에 이어 다시 한번 국내 리그 우승을 차지했는데, 리세란수는 이 시즌 32경기에 출전하여 개인 한 시즌 최다인 7골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1984년 4월 29일,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바스크 더비 홈 경기에서는 혼자 두 골을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를 견인했다. 그의 두 번째 골은 결승골이자 아틀레틱 빌바오 구단의 라리가 통산 3000번째 골이기도 했다.
리세란수는 엘체 CF에서 1988-89 시즌 한 시즌을 보낸 후, 1989년 30세의 나이로 축구화를 벗었다.
2.2. 아틀레틱 빌바오
비스카이아 도 빌바오 출신인 리세란수는 지역 명문 아틀레틱 빌바오의 칸테라를 거쳤다. 2군에서 3년을 보낸 후, 바스크 이웃 바라칼도 CF로 임대되어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1981년 여름, 아틀레틱 빌바오로 복귀한 리세란수는 같은 해 10월 25일, 라리가 7라운드 CA 오사수나와의 경기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팀의 주전 수비수로 빠르게 자리 잡았고, 안도니 고이코에체아와 함께 견고한 중앙 수비 라인을 구축했다. 그의 강인하고 때로는 거친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록키]]'라는 별명을 얻었다.
리세란수는 아틀레틱 빌바오의 황금기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82-83 시즌과 1983-84 시즌 연속 라리가 우승을 포함하여, 1982년부터 1985년까지 총 4개의 주요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데 기여했다. 특히 1983-84 시즌에는 리그 32경기에 출전하여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개인 한 시즌 최다인 7골을 기록하는 뛰어난 득점력을 선보였다. 1984년 4월 29일,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바스크 더비 홈 경기에서는 혼자 2골을 넣어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는데, 그의 두 번째 골은 아틀레틱 빌바오 구단 역사상 라리가 통산 3000번째 골이라는 기념비적인 기록이 되었다.
그는 아틀레틱 빌바오 소속으로 라리가 통산 188경기에 출전하여 17골을 기록했다. 또한, 1985년 4월 30일에는 웨일스를 상대로 스페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나, 이 경기가 그의 유일한 A매치 출전 기록으로 남았다. 리세란수는 1988-89 시즌을 앞두고 엘체 CF로 이적하며 아틀레틱 빌바오에서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3. 엘체 CF와 은퇴
리세란수는 1988-89 라 리가 시즌에 엘체 CF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1989년 30세의 나이로 축구 선수에서 은퇴했다.
1990년대 말에 그는 감독일을 시작해 주로 고향 지역의 클럽들을 지도했다. 그가 거쳐간 팀으로는 우베다 CF, 잘라 UC, SD 레모나, 아무리오 클럽, 바라칼도, 그리고 사모라 CF가 있다.
2.4. 감독 경력
현역 은퇴 후 감독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1990년대 말부터 주로 고향인 바스크 지방의 클럽들을 지도했다. 그가 감독을 맡았던 팀으로는 우베다 CF, 잘라 UC, SD 레모나, 아무리오 클루브, 바라칼도 CF 및 사모라 CF 등이 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1985년 4월 30일, 리세란수는 렉섬에서 열린 웨일스와의 1986년 FIFA 월드컵 예선전에 스페인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출전했으나, 팀은 0-3으로 패배했다. 이 경기는 그의 유일한 국가대표팀 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