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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일본인 외교관 사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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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라크 일본인 외교관 사살 사건은 2003년 11월 29일 이라크 티크리트 근교에서 일본인 외교관 3명과 이라크인 운전기사가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이다. 이라크 전쟁 발발 후 일본인 첫 희생 사건으로, 후쿠다 야스오 당시 관방장관은 테러 가능성을 언급했다. 사건 당시 미군 오발설, 모살 의혹 등 다양한 논란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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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일본인 외교관 사살 사건
사건 개요
사건명이라크 일본인 외교관 사살 사건
발생일2003년 11월 29일
위치이라크 티크리트
목표일본 외교관
공격 유형매복 사살
사망자2명
가해자불명
관련 인물
희생자오쿠 가쓰히코 (奥克彦, Oku Katsuhiko)
이노우에 마사노리 (井上正盛, Inoue Masanori)
오쿠 가쓰히코 (奥克彦)
로마자 표기Oku Katsuhiko
직업외교관
주요 보직주 영국 일본 대사관 공사
사망 당시 직책이라크 부흥 지원 팀장
학력와세다 대학 법학부 졸업
출생1958년 11월 13일
사망2003년 11월 29일 (향년 45세)
훈장瑞宝小綬章 (사후 추증)
이노우에 마사노리 (井上正盛)
로마자 표기Inoue Masanori
직업외교관
사망 당시 직책서기관
학력도쿄 외국어 대학 졸업
출생1973년
사망2003년 11월 29일 (향년 30세)
훈장瑞宝小綬章 (사후 추증)
배경
당시 상황이라크 전쟁 종결 후 혼란스러운 치안 상황
자위대 이라크 파견에 대한 반발 심리 고조
일본 정부 입장이라크 재건 지원 및 인도적 지원 강조
사건 전개
사건 발생티크리트에서 차량으로 이동 중 매복 공격
AK-47 소총 등으로 무장한 괴한들의 공격
오쿠 가쓰히코와 이노우에 마사노리 현장 사망
사건 직후일본 정부, 테러 규정 및 강력 대응 천명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 자위대 파견 계획 유지 발표
반응 및 영향
일본 내 반응자위대 파견에 대한 찬반 논쟁 격화
평화헌법 개정 논의 재점화
외교관 안전 대책 강화 요구 증대
국제 사회 반응테러 규탄 및 일본 정부에 대한 위로와 지지 표명
영향일본 외교 정책 및 안보 정책에 대한 재검토
국제 협력 및 테러 대응에 대한 일본의 역할 증대
기타
관련 사건알카에다 등 국제 테러 조직의 연관성 의혹 제기
이라크 내 외국인 납치 및 살해 사건 증가
추모두 외교관의 공적을 기리는 추모 행사 개최
야스쿠니 신사 합사 문제 논란

2. 사건 발생

2003년 11월 29일 오전 11시경(이라크 현지시각),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 근교에서 일본인 외교관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이라크 전쟁 발발 후 처음으로 일본인이 희생된 사례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사건 직후, 후쿠다 야스오 당시 관방장관은 테러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밝혔다. 호쉬야르 제바리 이라크 잠정 내각 외무상은 후세인 정권 시대 정보총국 잔당의 소행으로 단정했다. 한편, 미군 오발설이나 모살 의혹 등 다양한 논의가 제기되기도 했다.

2. 1. 공격 발생

2003년 11월 29일 오전 11시경(이라크 현지시각),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 근교에서 일본인 외교관 3명과 이라크인 운전기사가 타고 있는 차량을 뒤에서 따라오던 차가 갑자기 총을 난사하였다.[2] 총격으로 차량은 30미터 정도 앞의 농지로 돌진했다. 근처 가게 주인이 차가 돌진한 것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하였으나, 3명은 이미 사망해 있었다.

경찰이 약 1시간 후에 현장에 도착했을 때, 좌측 핸들 차량의 운전석에 있던 이라크인 운전자와 앞쪽 우측 좌석에 있던 이노우에 마사모리 3등 서기관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뒷좌석에 있던 오쿠 가쓰히코 참사관은 의식은 없었지만 아직 숨을 쉬고 있어 티크리트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받았지만, 오후 2시 전에 사망했다.[2]

총알 감정 결과, 사용된 총은 구경 7.62mm에 우회전 4조의 강선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후쿠다 야스오 당시 관방장관은 탄환의 흔적이 차량 좌측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3], 금전 등이 빼앗기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테러의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테러리스트에 의한 범행이라는 견해를 보였다.[2] 호쉬야르 제바리 이라크 잠정 내각 외무상은 사건의 범인이 옛 후세인 정권 시대의 첩보기관, 정보총국의 잔당에 의한 범행이라고 단정했다.[4] 경시청은 오쿠 참사관은 좌측 측두부에 맞은 총탄에 의한 두개내 손상, 이노우에 서기관은 좌측 가슴에 총을 맞아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경시청 공안부 외사과가 살인 혐의로 수사하고, 이라크 주둔 미군 등과 정보 교환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규명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5]

2. 2. 피해 상황

2003년 11월 29일 오전 11시경(현지 시각),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 남쪽 외곽에서 오쿠 가쓰히코 주영 참사관과 이노우에 마사모리 주이라크 3등 서기관, 그리고 이라크인 운전자가 토요타 랜드크루저 차량에 탑승하고 있었다. 이때 뒤따라오던 차량이 이들에게 총격을 가했고, 총격을 받은 차량은 30m 정도 떨어진 농지로 돌진했다.[2]

약 1시간 후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운전석에 있던 이라크인 운전자와 앞좌석에 있던 이노우에 서기관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뒷좌석에 있던 오쿠 참사관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으나 숨을 쉬고 있어 티크리트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 처치를 받았지만, 오후 2시 전에 사망했다. 이 사건은 이라크 전쟁 종전 후 처음 발생한 일본인 희생 사례였다.[2]

3. 사건 이후

이라크 전쟁 발발 후 처음으로 일본인이 희생된 사건으로 일본인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사건 직후 후쿠다 야스오 당시 관방장관은 테러 가능성을 언급하며 테러리스트에 의한 범행이라는 견해를 표명했다. 한편, 국회 질의 과정에서 미군의 오발설이나 모살 의혹 등 다양한 논의가 제기되기도 했다.

3. 1. 일본 정부의 반응

후쿠다 야스오 당시 관방장관은 탄환 흔적이 차량 좌측에 집중되어 있고[3], 금전 등이 탈취되지 않은 점을 들어 "테러의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테러리스트에 의한 범행이라는 견해를 보였다.[2] 이라크 잠정 내각의 호쉬야르 제바리 외상은 사건의 범인이 옛 후세인 정권 시대의 첩보기관, 정보총국의 잔당에 의한 범행이라고 단정했다.[4] 경시청은 오쿠 참사관은 좌측 측두부에 맞은 총탄에 의한 두개내 손상, 이노우에 서기관은 좌측 가슴에 총을 맞아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경시청 공안부 외사과가 살인 혐의로 수사하고, 이라크 주둔 미군 등과 정보 교환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규명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5]

3. 2. 이라크 임시 정부의 반응

이라크 임시 내각의 호쉬야르 제바리 외상은 사건의 범인이 옛 후세인 정권 시대의 첩보기관, 정보총국의 잔당에 의한 범행이라고 단정했다[4]

4. 의혹 및 논란

이라크 전쟁 발발 후 처음으로 일본인이 희생된 이 사건으로 일본인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후쿠다 야스오 당시 관방장관은 '테러의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며 테러리스트에 의한 범행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한편, 사건의 증거 개시나 감정을 둘러싼 국회 질의로 미군의 오발설, 모살을 의심하는 여러 가지 논의가 제기되기도 했다.[6][7][1]

이 사건에 대해서는 사건 발생 당시의 상황, 그리고 사건 발생 후의 일본·미국 정부의 불가해한 대응과 관련하여, 모살을 의심하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6][7][1]

참조

[1] 뉴스 戦場ジャーナリスト「政府の情報に頼るのは民主主義の放棄だ」 報道の意義考える討論会 https://www.huffingt[...] ハフィントン・ポスト 2015-02-19
[2] 웹사이트 イラク北部で日本人外交官2人殺害 並走車から銃乱射 http://www.asahi.com[...] 株式会社朝日新聞社 2022-03-05
[3] 웹사이트 http://www.securico.[...]
[4] 웹사이트 http://www.47news.jp[...]
[5] 웹사이트 奥さんは頭蓋内損傷、井ノ上さんは失血死 外務省発表 http://www.asahi.com[...] 株式会社朝日新聞社 2022-08-02
[6] 간행물 平成16年02月05日開催の第159回通常国会:参議院・イラク人道復興支援活動等及び武力攻撃事態等への対処に関する特別委員会での若林秀樹参院議員(民主)による質疑
[7] 웹사이트 メディア・外交官射殺事件をめぐる、米軍報道の違和感 http://www.news.jan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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