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시리아 내전 개입
1. 개요
이란은 시리아 정부의 생존을 자국의 이익에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다. 2011년 시리아 내전 초기부터 바샤르 알 아사드 정부에 대한 지원을 제공했으며, 군사 고문 파견, 무기 지원, 자금 지원 등을 통해 개입을 확대했다. 2015년에는 러시아와 협력하여 군사 개입을 강화했고, 이란 혁명수비대와 지원 병력을 시리아에 파병하여 주요 전투에 참여했다. 이란의 개입은 종교적, 이념적, 지정학적 요인에 기인하며,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종파 갈등 심화, 인권 침해, 국제 사회의 제재 등의 비판을 받았다. 이란은 시리아 내전에서 많은 수의 군인과 민병대를 잃었으며, 특히 이란 혁명수비대 고위 장교들의 사망이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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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이란 관계 -
카타이브 헤즈볼라
카타이브 헤즈볼라는 이란 쿠드스군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시아파 무장단체로, 다국적군 공격, 테러 단체 지정, 인민동원군 참여, 시위 진압 논란, 사령관 사망 등으로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다. -
시리아-이란 관계 -
2024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 공습
2024년 4월 1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위치한 이란 영사관 별관 건물이 파괴되어 이란 혁명수비대 고위 간부들을 포함한 16명이 사망하고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긴장이 고조되었으며, 공습의 배경, 목표, 경과, 피해 상황, 국제법 위반 논란 및 각국의 반응 등 다양한 쟁점들이 제기되었다. -
이란이 참전한 전쟁 -
1946년 이란 위기
1946년 이란 위기는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소련이 이란에서 군대를 철수하지 않고 친소 정권을 지원하여 발생한 냉전 초기 분쟁으로, 미국의 외교적 압박과 이란 정부의 노력으로 해결되어 미국의 트루먼 독트린에 영향을 미쳤다. -
이란이 참전한 전쟁 -
러시아-페르시아 전쟁
러시아-페르시아 전쟁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러시아와 페르시아 제국 간에 벌어진 정치적, 경제적, 영토적 이해관계가 얽힌 일련의 전쟁과 충돌로, 러시아가 캅카스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페르시아가 영토를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
시리아 내전 -
시리아 반군
시리아 반군은 시리아 내전 중 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는 다양한 정치적 성향과 목표를 가진 무장 및 비무장 단체들의 연합체로, 아사드 가문의 장기 집권과 탄압에 대한 반발, 아랍의 봄의 영향 등으로 형성되었으며, 시리아 혁명 및 반정부 세력을 위한 전국연합 등 다수의 정치 조직과 자유 시리아군 등의 무장 단체가 활동했으나, 국제 사회에서 지위가 불안정하고 통일된 목표가 없어 내전 장기화에 기여했다. -
시리아 내전 -
2024년 시리아 반군 공세
2. 배경
이란은 시리아 정부의 생존이 자국의 이익에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이란의 유일한 동맹국인 시리아는 레바논의 헤즈볼라에 대한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이란 혁명 수비대(IRGC)는 시리아를 이란의 "35번째 주"라고 자랑하며, 바샤르 알 아사드의 알라위파가 지배하는 바트당 정부를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중요한 완충지대로 여겼다.
시리아의 자바다니는 아사드와 이란에 매우 중요한 도시였는데, 적어도 2011년 6월까지는 이란 혁명 수비대가 헤즈볼라에 대한 군수품 공급을 위한 중심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시리아 내전 이전에 이란은 2,000명에서 3,000명 사이의 이란 혁명 수비대 장교들을 시리아에 주둔시켜 현지군을 훈련하고 인근 레바논으로의 무기와 자금 공급로를 관리했다.
2014년 4월, 이란의 외무차관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은 "우리는 바샤르 알 아사드가 종신 대통령직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극단주의 세력과 테러를 이용하여 아사드와 시리아 정부를 전복시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란 정부는 내전 중 증가된 영향력을 이용하여 호메이니즘 종교 센터를 설립하여 알라위파 사람들을 십이이마미파로 개종시키면서 알라위파 사람들을 모집했다. 또한 외국 시아파 정착민과 IRGC 군인들의 가족들을 시리아 전역에 들여와 인구 구성 변화를 시도했다.
3. 이란의 시리아 내전 개입
이란은 시리아 내전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 정부의 생존이 자국의 이익에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의 유일한 동맹국인 시리아는 레바논의 헤즈볼라에 대한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이란 혁명 수비대(IRGC)는 시리아를 이란의 "35번째 주"라고 칭하며, 아사드의 알라위파가 지배하는 바트당 정부를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중요한 완충지대로 여겼다.
자바다니는 아사드와 이란에게 매우 중요한 도시였는데, 적어도 2011년 6월까지는 이란 혁명 수비대가 헤즈볼라에 대한 군수품 공급 중심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시리아 내전 이전에 이란은 2,000명에서 3,000명 사이의 이란 혁명 수비대 장교들을 시리아에 주둔시켜 현지군을 훈련하고 인근 레바논으로의 무기와 자금 공급로를 관리했다.
2014년 4월, 이란의 외무차관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은 "우리는 바샤르 알 아사드가 종신 대통령직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극단주의 세력과 테러를 이용하여 아사드와 시리아 정부를 전복시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란 정부는 내전 중 증가된 영향력을 이용하여 호메이니주의 종교 센터를 설립하여 알라위파 사람들을 십이이마미파로 개종시키면서 알라위파 사람들을 모집했다. 또한 외국 시아파 정착민과 IRGC 군인들의 가족들을 시리아 전역에 들여와 인구 구성 변화를 시도했다.
3.1. 초기 개입 (2011~2012)
이란은 시리아 내전 초기부터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며 개입했다. 2011년 미국은 이란이 시리아의 시위 진압을 비밀리에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시리아 보안군 대원들이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것이 목격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란은 시리아 정부에 진압 장비, 정보 감시 기술, 기술 지원을 제공했다.
2012년, 이란은 시리아 정부에 9를 지원하여 국제 제재를 견딜 수 있도록 돕고, 연료를 공급했으며, 군함 두 척을 시리아 항구로 보내는 등 군사적 지원을 강화했다. 이란은 시리아 정부에 무기를 공급하고,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통해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란은 2009년-2010년 이란 선거 항의 시위 이후 개발된 감시 기술을 시리아 정부에 제공하여 이메일, 휴대전화, 소셜 미디어를 감시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란의 감시 기술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기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2012년 8월, 레온 파네타 미국 국방장관은 이란이 시리아에서 친정부 민병대를 구성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한, 이란은 무인 항공기를 이용하여 시리아 군용기와 포병이 반군 진지를 폭격하도록 유도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3.2. 군사 개입 확대 (2013~2014)
이란은 시리아 정부의 생존이 자국의 이익에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이란의 유일한 동맹국인 시리아는 레바논의 헤즈볼라에 대한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2013년 6월, 이란은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기 위해 4,000명의 병력을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인디펜던트》는 이를 "첫 번째 파병대"라고 묘사하며, 이 조치가 중동 지역의 수니파 대 시아파 대립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이란 혁명 수비대 군인들은 헤즈볼라의 시아파 병력 및 이란 바시지 민병대원들과 함께 2013년 6월 9일 쿠세이르 전투에서 반군으로부터 쿠세이르를 점령하는 작전에 참여했다. 2014년 이란은 시리아에 이란 혁명 수비대 파병을 증가시켰다.
미국 관리들에 따르면, 쿠드스군 장교들은 2012년 말부터 2013년까지 시리아에서 "공격을 조율하고, 민병대를 훈련시키고, 반군 통신을 감시하는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헤즈볼라의 도움을 받아 카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의 지휘 아래 시리아 정부군은 2013년 반군으로부터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탈환했는데, 특히 4월과 5월 쿠세이르 전투 기간 동안 중요한 보급로를 확보했다.
2013년 가을, 이란 혁명 수비대의 모하마드 자말리 파갈레 준장이 시아파 사원을 방어하다 전사했다. 같은 해 2월에는 이란 혁명 수비대의 하산 샤테리 장군이 베이루트에서 다마스쿠스로 이동 중 사망했다.
3.3. 러시아와의 협력 및 지속적인 개입 (2015~현재)
2015년, 이란은 러시아의 군사 개입과 함께 시리아 내전 개입을 더욱 강화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러시아의 공습 지원을 받으며 시리아 정부군 및 헤즈볼라와 함께 주요 전투에 참여했다. 특히, 알-가브 평원 전투, 알레포 공세, 2015년 다라야 공세, 칼라문 지역 북부 및 레바논-시리아 국경 지대 장악 등 주요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일부 보도에서는 이란군이 시리아 정부군을 사실상 지휘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2015년 상반기, 반군 공세로 이들리브 주가 함락되면서 아사드 정권의 생존이 위기에 처했다. 이에 2015년 상반기 모스크바와 테헤란 간 고위급 회담이 열렸고, 7월 24일 가셈 솔레이마니 장군이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러시아와의 합동 군사 작전 계획을 구체화했다.
2015년 9월 중순, 이란 혁명수비대 신규 부대가 시리아 서부 타르투스와 라타키아에 도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들은 시리아 아랍군과 국방군이 다른 전선에 배치됨에 따라 슬룬페, 마시야프, 라스 알-바싯 등에 군사 검문소를 설치했다. 10월 초에는 추가 부대 배치 보도도 있었다. 레바논 소식통에 따르면, 수백 명의 이란군이 시리아에 도착하여 러시아 공습의 지원을 받는 대규모 지상 공세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란은 시리아 내 군사 시설을 공격받는 등 이스라엘과의 갈등이 심화되기도 했다. 2015년 10월, 가셈 솔레이마니 장군의 부관인 호세인 하마다니 준장이 사망했고, 이란 혁명수비대의 고위 사령관인 하미드 묵타르반드와 파르샤드 하순자데도 사망했다.
10월 말, 이란은 비엔나에서 열린 시리아 평화 회담에 참여했지만, 회담 직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갈등으로 향후 참여가 불투명해졌다.
2015년 12월, 11월 말 시작된 반군 공세로 시리아 정부군이 붕괴되자 이란은 시리아에서 군 지휘관과 인원들을 철수하기 시작했다. 철수 대상에는 쿠드스군 사령관, 이란혁명수비대(IRGC) 대원, 외교관 및 그 가족, 이란 시민 등이 포함되었다. 이란인들의 철수를 위해 테헤란으로 향하는 항공편과 레바논, 이라크, 라타키아 항으로 가는 육로가 이용되었다.
이러한 철수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며 군사적 개입을 지속하고 있다.
4. 이란의 개입 목적과 전략
이란은 시리아 정부의 생존이 자국의 이익에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의 유일한 동맹국인 시리아는 레바논의 헤즈볼라에 대한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시리아를 이란의 "35번째 주"라고 칭하며, 바샤르 알 아사드의 알라위파가 지배하는 바트당 정부를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중요한 완충지대로 여겼다.
시리아 내전 이전에 이란은 2,000명에서 3,000명 사이의 이란혁명수비대 장교들을 시리아에 주둔시켜 현지군을 훈련하고 인근 레바논으로의 무기와 자금 공급로를 관리했다. 2014년 4월, 이란의 외무차관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은 "우리는 바샤르 알 아사드가 종신 대통령직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극단주의 세력과 테러를 이용하여 아사드와 시리아 정부를 전복시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2015년 10월 2일,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약 7,000명의 대원과 이란의 준군사 조직 자원봉사자들을 시리아에 배치하고 있으며, 현지 전투원들과 대리 세력을 통해 시리아 내 존재감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일부 전문가들은 이란과 헤즈볼라의 지원을 받는 2만 명의 시아파 외국인 전투원들이 시리아에 있다고 추산한다고 보도했다.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이후 최소 121명의 이란 혁명수비대 대원(여러 사령관 포함)이 사망했다.
알가브 평원 전투, 알레포 공세, 2015년 다라야 공세, 칼라문 지역(안나베크 구역) 북부와 레바논-시리아 국경 지대를 정부군과 헤즈볼라가 장악하게 된 알쿠사이르 공세 등 주요 승리는 쿠드스군의 상당한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2015년 6월 일부 보도에서는 이란군이 전장에서 시리아 정부군을 사실상 지휘하고 있다고 제기했다.
2015년 상반기 이들리브 주가 반군 공세에 의해 함락(이들리브 제2차 전투)되면서 아사드 정권의 생존이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되었다. 2015년 상반기에 모스크바와 테헤란 간 고위급 회담이 열렸고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7월 24일 카셈 솔레이마니 장군이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시리아에서의 조정된 군사 작전 계획 세부 사항을 구체화했다.
2015년 9월 중순, 시리아 서부 타르투스와 라타키아에 이란 혁명수비대 신규 부대가 도착했다는 첫 보도가 나왔다. 시리아 아랍군과 국방군 대부분이 더 불안정한 전선에 배치됨에 따라 러시아 해병대와 이란 혁명수비대는 슬룬페(라타키아 주 동부), 마시야프(타르투스 주 동부), 라스 알바싯(라타키아 연안 도시) 도시 내에 군사 검문소를 설치하여 이들의 위치를 대신했다. 또한 2015년 10월 초 시리아에 새로운 이란 부대가 배치되었다는 추가 보도가 있었다.
10월 1일 로이터는 레바논 소식통 두 곳을 인용하여 지난 10일 동안 수백 명의 이란군이 시리아에 도착하여 시리아 정부군과 레바논 헤즈볼라 동맹군에 합류하여 9월 30일에 시작된 러시아 공습의 지원을 받는 대규모 지상 공세에 참여했으며, 바샤르 알아사드는 이를 매우 중요하게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10월 8일, 시리아에서 카셈 솔레이마니 장군의 부관인 호세인 하마다니 준장이 사망했다. 10월 12일 이란 언론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또 다른 고위 사령관인 하미드 묵타르반드와 파르샤드 하순자데가 시리아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10월 말 이란은 비엔나에서 열린 시리아 평화 회담에 참여하기로 합의했다. 이 회담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시리아에서 대리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알려진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처음 불러들였다. 그러나 회담 직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고위 관계자들 사이에 날카로운 비난이 오가면서 이란의 향후 참여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4.1. 종교적, 이념적 요인
이란은 시아파 이슬람의 종주국으로서 시리아 내 시아파 소수 종파인 알라위파 정권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을 종교적 의무로 간주한다. 이란은 시리아 내전을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과의 대결로 규정하고,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여 시아파 세력권을 확장하려는 전략을 추구한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의 유일한 동맹국인 시리아는 레바논의 헤즈볼라에 대한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시리아를 이란의 "35번째 주"라고 자랑하며, 바샤르 알 아사드의 알라위파가 지배하는 바트당 정부를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중요한 완충지대로 여겼다.
자바다니는 아사드와 이란에 매우 중요한 도시였는데, 적어도 2011년 6월까지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헤즈볼라에 대한 군수품 공급을 위한 중심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란 정부는 내전 중 증가된 영향력을 이용하여 호메이니주의 종교 센터를 설립하여 알라위파 사람들을 십이이마미파로 개종시키면서 알라위파 사람들을 모집했다. 또한 외국 시아파 정착민과 IRGC 군인들의 가족들을 시리아 전역에 들여와 인구 구성 변화를 시도했다.
4.2. 지정학적 요인
이란은 시리아를 중동 지역 내 영향력 확대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간주한다.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의 유일한 동맹국인 시리아는 레바논의 헤즈볼라에 대한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해왔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시리아를 이란의 "35번째 주"라고 칭하며, 바샤르 알 아사드의 알라위파가 지배하는 바트당 정부를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중요한 완충지대로 여겼다.
특히 자바다니는 아사드와 이란에게 매우 중요한 도시였는데, 적어도 2011년 6월까지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헤즈볼라에 대한 군수품 공급을 위한 중심지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이란은 시리아를 통해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며, 지중해로 진출하여 중동 지역 내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전략을 추구한다.
5. 이란의 개입에 대한 비판과 논란
이란의 시리아 내전 개입은 여러가지 비판과 논란을 낳고 있다.
2018년 5월, 시리아 주둔 이란 쿠드스군이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 20발을 발사했으나 모두 목표물을 맞추지 못했고, 이스라엘 공군은 시리아와 이란의 군사 시설을 대대적으로 공격하며 응수했다. 2019년 1월, 이스라엘 방위군은 골란 고원 상공에서 로켓이 요격된 후 시리아 내 이란 군사 시설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군은 쿠드스군의 시설을 공격했으며, 시리아군에 "이스라엘군이나 영토를 해칠 시도"에 대해 경고했다.
2020년에는 이란군 및 이란 혁명 수비대(IRGC) 지휘관 여러 명이 사망했다. 2월 27일부터 3월 3일 사이에는 이란인 4명이 터키군에 의해 사망했고, 3월 7일에는 IRGC 지휘관 파르하드 다비리안이 다마스쿠스 사이이다 자이나브 지역에서 사망했다. 3월 18일에는 이란군 지휘관 메흐란 아지자니가, 5월 15일에는 또 다른 지휘관 아부 알-파들 살락이 사망했다.
1년간의 휴전 협상과 동결된 분쟁 이후, 마헤르 알아사드와 아스마 알아사드 등 바트당 고위 인사들은 이란의 군사 개입 종식과 시아파 민병대 철수를 요구했다. 바샤르 알아사드는 2021년 11월 이란의 시리아 내 영향력 축소를 위해 IRGC 시리아 지부 책임자 자바드 가파리를 해임했다.
5.1. 종파 갈등 심화
이란은 시리아 내전을 종파 분쟁으로 규정하고, 시아파 민병대를 동원하여 수니파 민간인 학살에 가담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이는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란 지도부 성직자들은 시리아 내전을 "종교 전쟁"으로 묘사하는 종파적 전략을 펼쳤다. 이들은 알라위파와 십이이마미파 사이의 교리적 차이, 바트당 집권 세력의 아랍 민족주의 및 세속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아사드 정부는 건국 이후 이란 지도부 성직자들과 정치적 동맹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이는 공통된 종교적, 종파적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시리아의 바트당 정부는 이란의 종교 문제에 참여하지 않으며, 이란의 아야톨라들도 아사드를 시아파 동반자로 여기지 않는다.
2018년 3월 ORB 인터내셔널이 시리아 전역 14개 주의 성인 1,0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리아인의 64%가 이란의 자국 영향력을 "부정적"이라고 응답했고, 32%는 "긍정적"이라고 응답했다. 아사드 정권의 여러 파벌과 많은 바트당 지지자들 또한 시리아에서 헤즈볼라와 다른 이란 지원 호메이니즘 무장 단체들의 철수를 요구해왔다.
5.2. 인권 침해 및 전쟁 범죄
이란 혁명수비대와 친이란 민병대는 시리아 내전에서 민간인 학살, 고문, 강간 등 심각한 인권 침해를 자행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란은 시리아 정부군의 전쟁 범죄를 방조하고 지원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5.3. 국제 사회의 제재
이란의 시리아 내전 개입은 국제 사회의 제재를 초래했다. 미국과 유럽 연합은 이란의 시리아 내전 개입을 비난하며,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화했다. 2018년 5월, 시리아에 주둔한 이란 쿠드스군이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 20발을 발사했지만 모두 목표물을 맞추지 못했고, 이스라엘 공군은 시리아와 이란의 군사 시설을 대대적으로 공격하며 응수했다. 1년간의 휴전 협상과 분쟁 동결 이후, 마헤르 알아사드와 영부인 아스마 알아사드와 같은 바트당 지도부의 여러 고위급 인사들은 이란의 군사적 개입 종식과 시아파 민병대 철수를 요구했다. 이는 지역 내 다른 아랍 국가들과의 화해 계획의 일환이었다. 바샤르 알아사드는 2021년 11월 이란의 시리아 내 영향력 축소를 위해 이란혁명수비대의 시리아 지부 책임자 자바드 가파리를 해임했는데, 이는 정권 장악 지역에서 이란의 지속적인 존재에 대한 정부 내부의 불만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6. 주요 사망자
이란은 시리아 내전에서 많은 수의 이란 혁명수비대(IRGC) 장교와 병력을 잃었다. 특히, 2015년 이후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와 함께 이란군의 사상자가 급증했다. 2013년 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이란 혁명수비대는 시리아에서 2,100명의 사망자와 7,000명의 부상자를 냈으며, 여기에는 고위 장교 418명과 여러 명의 장성이 포함된다. 2017년 8월, 하미드 아바자리 준장은 이란이 시리아에 파병한 병사의 25%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알리 알포네는 2018년 초까지 최소 559명의 이란인 전투 사망자를 기록했다.
다음은 시리아 내전에서 사망한 주요 이란 군인 및 관련 인물 목록이다.
| 이름 | 계급 및 소속 | 날짜 | 장소 |
|---|---|---|---|
| 고드라톨라흐 만수리(Qodratollah Mansouri) | 준장, 이슬람 혁명수비대 | 2018년 12월 15일 | 시리아-이라크 국경 |
| 샤흐로크 다이푸르(Shahrokh Daipour) | 준장, 이슬람 혁명수비대 | 2018년 6월 17일 | 시리아 알부카말 구 |
| 모센 호자지(Mohsen Hojaji) | 소위, 이슬람 혁명수비대 | 2017년 8월 9일 | 시리아 알왈리드 국경 검문소 |
| 아흐마드 골라미(Ahmad Gholami) | 준장, 이슬람 혁명수비대 | 2016년 8월 30일 | 시리아 알레포 |
| 모센 기타슬루(Mohsen Ghitaslou) | 중위, 제65공수특전여단 | 2016년 4월 11일 | 시리아 |
| 모센 카자리안(Mohsen Qajarian) | 준장, 제1 레자 기갑여단 | 2016년 2월 3일 | 시리아 아부카말 구 |
| 압돌레자 모지리(Abdolreza Mojiri) | 준장, 이슬람 혁명수비대 | 2015년 11월 29일 | 시리아 알레포 |
| 레자 카바리(Reza Khavari) | 준장, 이슬람 혁명수비대 | 2015년 10월 23일 | 시리아 하마 |
| 압둘 카림 고바시(Abdul Karim Ghobash) | 준장, 이슬람 혁명수비대 | 2015년 1월 18일 | 시리아 알자바다니 |
| 하미드 타카비(Hamid Taqavi) | 준장, 이슬람 혁명수비대 | 2014년 12월 27일 | 이라크 사마라 |
| 자바르 다리사위(Jabbar Darisawi) | 준장, 이슬람 혁명수비대 | 2014년 10월 14일 |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 |
| 압둘라 에스칸다리(Abdullah Eskandari) | 준장, 이슬람 혁명수비대 | 2014년 5월 |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 |
| 모하마드 자말리-파갈레(Mohammad Jamali-Paqaleh) | 준장, 이슬람 혁명수비대 | 2013년 11월 | 시리아 |
| 파르하드 다비리안(Farhad Dabirian) | 사령관, 이슬람 혁명수비대 | 2020년 3월 6일 | 시리아 |
| 사데크 오미드자데(Sadegh Omidzadeh) | 장군, 이슬람 혁명수비대 | 2024년 1월 20일 | 시리아 다마스쿠스 메제 |
| 키우마르스 푸르하셰미(Kioumars Pourhashemi) | 준장, 이슬람 혁명수비대 | 2024년 11월 24일 | 시리아 알레포 |
이란의 지원을 받는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이라크, 예멘, 파키스탄 및 기타 민병대 수천 명도 사망했다. 이들은 대부분 이란의 하자라족 출신이며, 2018년 1월까지 파티미윤 여단에서만 1만 명 이상의 사상자(사망 2,000명 이상, 부상 8,000명 이상)를 냈다.
6.1. 이란
이란은 시리아 내전에 깊이 개입한 국가 중 하나이다.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호세인 하마다니 소장, 하산 샤테리 소장, 모하마드 알리 알라다디 준장, 라지 무사비 준장 등 여러 고위급 지휘관들이 시리아에서 사망했다.
| 이름 | 계급 및 소속 | 날짜 | 장소 |
|---|---|---|---|
| 호세인 하마다니(Hossein Hamadani) | 소장, 이란 혁명수비대 | 2015년 10월 7일 | 시리아 알레포(Aleppo) |
| 모하마드 알리 알라다디(Mohammad Ali Allahdadi) | 준장, 이란 혁명수비대 | 2015년 1월 18일 | 시리아 쿠네이트라 주 |
| 하산 샤테리(Hassan Shateri) | 소장, 이란 혁명수비대 | 2013년 2월 12일 | 시리아 |
| 라지 무사비(Razi Mousavi) | 준장, 이란 혁명수비대 | 2023년 12월 25일 | 시리아 리프 디마슈크 주 사이이다 자이나브(Sayyidah Zayna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