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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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서구는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대를 거쳐 활동한 대한민국의 극작가, 언론인, 방송 작가, 작사가이다. 경기도 안양 출신으로 서울에서 성장하여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1922년 토월회에 참여하며 연극계에 데뷔했다. 1931년 단막희곡 〈파계〉, 〈동백꽃〉을 발표하며 극작가로 등단했고, 극단 호화선의 연극 대본을 집필하며 인기를 얻었다. 광복 후 조선영화동맹 중앙상임위원, 전국연극예술협회 결성, 한국무대예술원 원장, 대한연극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연극계에 기여했다. 경성방송국 근무 경력을 바탕으로 방송극을 다수 집필했으며, 동양방송 최초의 사극 《민며느리》와 《장희빈》 등을 통해 사극 드라마의 전형을 마련했다.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주제가 〈홍도야 우지마라〉의 작사자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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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구 (작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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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이서구 |
출생일 | 1899년 9월 28일 |
출생지 | 대한제국 한성부 |
사망일 | 1981년 5월 25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직업 | 극작가 |
학력 | 니혼 대학 예술학과 중퇴 |
국적 | 대한제국→대한민국 |
장르 | 희곡, 시나리오, 방송작가 |
2. 생애
이서구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에 걸쳐 활동한 극작가이자 작사가이다. 경기도 안양에서 출생하여 서울제일고등보통학교와 오산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보 등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연극계에서 활동했고, 1922년 토월회에 참여하며 연극계에 등장했다. 1931년 단막희곡 〈파계〉와 〈동백꽃〉을 발표하며 극작가로 등단, 이후 인기 극작가로 활동하며 많은 연극 대본을 썼다.
1947년 유치진과 함께 전국연극예술협회를 결성하여 대한민국 연극계의 대부로 활동했다. 한국무대예술원 원장, 대한연극협회 회장을 지냈다. 조선영화동맹 중앙상임위원을 지냈고[2], 경성방송국에서 근무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광복 후 방송계에도 진출하여 방송극도 다수 집필했다. 동양방송 최초의 사극인 《민며느리》, 희빈 장씨를 다룬 《장희빈》 등 인기 사극의 방송대본을 써 대한민국 사극 드라마의 전형을 마련했다. 한국방송극작가협회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주제가로 큰 인기를 모은 대중 가요인 〈홍도야 우지마라〉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안양시에 〈홍도야 우지마라〉 가사를 적어넣은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3]
2. 1. 일제 강점기 (1910년 ~ 1945년)
경기도 안양에서 출생하였고, 서울제일고등보통학교와 오산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보 등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연극계에서 활동했다. 이 시기 일본 유학생들과 교류하며 예술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1922년 토월회에 참여하면서 연극계에 등장했고, 1931년 단막희곡 〈파계〉와 〈동백꽃〉을 발표하며 극작가로 등단했다. 이후 인기 극작가로 활동하며 많은 연극 대본을 썼다. 1937년 극단 호화선이 공연한 〈어머니의 힘〉은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연극은 기생 출신의 주인공이 남편을 잃고 고생 끝에 명문가인 시댁의 마음을 돌린다는 신파극이다.
2. 2. 대한민국 (1945년 ~ )
예원좌의 후신인 청춘극장에서 상업극 공연을 계속했으나 이전과 같은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좌익 계열이 주도권을 잡기 전 좌우익 영화인들을 망라해 조직된 조선영화동맹 중앙상임위원[2]을 지냈고, 1947년 유치진과 함께 전국연극예술협회를 결성하여 대한민국 연극계의 대부로 활동했다. 한국무대예술원 원장, 대한연극협회 회장을 지냈다. 이때부터는 창작 작업보다는 정치 활동에 좀 더 주력했다.한편, 이서구는 1938년부터 경성방송국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있었다. 광복 후 방송계에도 진출하여 방송극도 다수 집필했다. 동양방송 최초의 사극인 《민며느리》를 비롯, 조선 숙종의 정비였다가 폐비된 뒤 사사된 희빈 장씨를 다룬 《장희빈》 등 인기 사극의 방송대본을 써 대한민국 사극 드라마의 전형을 마련했다. 한국방송극작가협회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주제가로 큰 인기를 모은 대중 가요인 〈홍도야 우지마라〉의 작사자이기도 하다. 선산이 있는 경기도 안양시에 〈홍도야 우지마라〉 가사를 적어넣은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3]
3. 작품 활동
이서구는 극작가이자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1922년 토월회에 참여하면서 연극계에 발을 들였고, 1931년 단막희곡 〈파계〉와 〈동백꽃〉을 발표하며 극작가로 등단했다.[1] 1937년 극단 호화선이 공연한 〈어머니의 힘〉은 특히 큰 인기를 얻었다.[1]
1938년부터 경성방송국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광복 후 방송계에 진출하여 방송극도 다수 집필했다. 동양방송 최초의 사극 《민며느리》, 희빈 장씨를 다룬 《장희빈》 등 인기 사극의 방송 대본을 집필하여 대한민국 사극 드라마의 전형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2] 한국방송극작가협회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3. 1. 연극
1922년 토월회에 참여하면서 연극계에 모습을 보였다.[1] 1931년 단막희곡 〈파계〉와 〈동백꽃〉을 발표하여 극작가로 등단했다.[1] 이후 인기 극작가로서 많은 연극 대본을 썼다.[1] 1937년 극단 호화선이 공연한 〈어머니의 힘〉은 특히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이 연극은 기생 출신의 주인공이 남편을 잃고 온갖 고생을 한 끝에 명문가인 시댁의 마음을 돌린다는 내용의 전형적인 신파극이다.[1]3. 2. 방송극
이서구는 1938년부터 경성방송국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으며, 광복 후 방송계에 진출하여 방송극도 다수 집필했다. 동양방송 최초의 사극인 《민며느리》를 비롯하여, 조선 숙종의 정비였다가 폐비된 뒤 사사된 희빈 장씨를 다룬 《장희빈》 등 인기 사극의 방송 대본을 써 대한민국 사극 드라마의 전형을 마련했다.[2] 한국방송극작가협회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였다.참조
[1]
뉴스
劇作家 李瑞求씨
http://gonews.kinds.[...]
한국일보
2008-06-08
[2]
서적
한국현대 예술사대계 1 (해방과 분단 고착 시기)
시공사
1999-12-22
[3]
웹인용
홍도야 우지마라 노래비
https://web.archive.[...]
시흥문화원
200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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