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손
1. 개요
이인손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17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후 형조좌랑, 대사헌 등을 역임했으며,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킨 후 호조판서에 승진하고 세조 즉위 후 원종공신 2등에 봉해졌다. 이후 우의정을 거쳐 치사했으며, 시호는 충희이다. 묘소는 경기도 여주시에 있으며, 2012년 여주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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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5년 출생 -
프라 안젤리코
프라 안젤리코는 르네상스 초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도미니크 수도회 수사로,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의 특징을 아우르는 섬세한 색채, 고요한 분위기, 깊은 신앙심을 보여주는 종교화를 다수 제작하여 가톨릭 예술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
1395년 출생 -
피사넬로
피사넬로는 15세기 초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메달 제작가로서,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영향을 받아 섬세하고 우아한 화풍을 확립하여 궁정풍 고딕 양식을 대표하면서도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적 면모를 보였으며, 특히 초상 메달 분야에서 독창적인 업적을 남겼다. -
1463년 사망 -
윤사로
윤사로는 세조의 계유정난 공신으로 의정부 좌찬성 등 요직을 역임하며 세조 정권에 기여하고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는 등 권력층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조선왕조실록에 영민함과 청렴함이 기록됨과 동시에 재산 축적에 대한 비판도 함께 제시된 조선 전기의 인물이다. -
1463년 사망 -
장 뷔로
15세기 프랑스의 포병 전문가이자 군사 지도자, 행정가였던 장 뷔로는 샤를 7세 휘하에서 백년전쟁의 프랑스 승리에 기여하고 여러 공성전과 전투에서 활약했으며, 행정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다. -
과거 급제자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과거 급제자 -
정여립
정여립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동인으로 전향하여 이이를 비판하다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후 대동계를 결성했으나 반란 혐의로 자결했으며, 기축옥사로 동서인 갈등을 심화시킨 인물이다.
2. 생애
1417년(태종 17)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다. 1429년(세종 11) 명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1453년 계유정난에 참여하여 세조가 즉위하는데 공을 세워 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 1459년(세조 5) 우의정에 오른 뒤 은퇴하였다.
2.1. 관직 생활
1417년(태종 17)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에 등용되고, 이어 사헌부 감찰을 지냈다. 1429년(세종 11) 천추사의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온 후 형조좌랑과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1454년(단종 2)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게 되자 호조판서에 승진되었고, 이듬해 세조 즉위와 함께 원종공신 2등에 봉해졌다. 이후 판중추부사와 우찬성을 거쳐 1459년(세조 5) 우의정에 오른 뒤 곧 치사(致仕)하였다. 시호는 충희(忠僖)이다.
2.2. 세조 즉위와 공신 책봉
1454년(단종 2) 수양대군(세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게 되자 호조판서에 승진되었고, 이듬해 세조의 즉위와 함께 원종공신 2등에 봉해졌다. 이후 판중추부사, 우찬성을 거쳐 1459년(세조 5) 우의정에 오른 뒤 곧 치사(致仕)하였다. 시호는 충희(忠僖)이다.
3. 가계
4. 묘소
이인손 묘는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신지리 새미실마을의 북쪽으로 뻗어 내린 북성산의 나지막한 줄기에 있다. 원래 묘소는 왕대리(세종대왕릉)에 있었는데, 영릉이 옮겨오면서 지금의 자리로 이장하였다. 2012년 7월 11일 여주시의 향토유적 제18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