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 (전한)
1. 개요
이창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기원전 189년에 장사나라의 승상으로서 대후에 봉해졌다. 고후 2년(기원전 186년)에 사망하여 마왕퇴에 묻혔으며, 작위는 아들 이희가 이었다. 마왕퇴 한묘에는 이창 외에 부인 신추와 아들 이희가 함께 매장되었으며, 이창의 묘는 도굴되었지만 "이창", "대후지인", "장사승상"이라고 새겨진 세 개의 인감이 발견되었다. 이 인감들은 각각 이창의 사인, 작위 인장, 관인으로, 매우 드문 경우이다. 이창에 대한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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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왕퇴 한묘
마왕퇴 한묘에는 이창과 그의 부인 辛追중국어와 아들 이희가 함께 묻혔다. 신추와 이희의 묘는 도굴되지 않아 부장품이 많이 출토되었으며, 이를 통해 전한 초기 귀족의 생활과 풍속을 알 수 있다.
3.1. 부장품 및 학술적 의의
신추와 이희의 묘는 도굴되지 않아 다량의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부장품은 전한 초기 귀족의 생활과 풍속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백서는 고고학뿐만 아니라 문헌학, 중국사, 중국 사상사, 중국 의학사, 중국 서도사 등 여러 분야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이창의 묘는 도굴되었기 때문에 출토된 물품은 상당히 적었다. 그러나 이창의 묘에서 발견된 세 개의 인감에는 "이창", "대후지인", "장사승상"이라고 새겨져 있었으며, 각각 이창의 사인, 작위 인장, 관인이다. 이러한 발견은 매우 드문 경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