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설성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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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천 설성산성은 설성산 정상부와 북쪽 봉우리 사이 계곡을 포함하여 축조된 포곡식 산성이다. 성벽 둘레는 1,095m이며, 동문지와 서문지가 확인되고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설성산은 이천 시내, 여주 지역, 음성 지역이 한눈에 보이는 요충지이며, 성 안에는 신층사가 위치한다. 백제가 처음 쌓았다는 견해도 있으나, 축성 방법과 출토 유물을 고려할 때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유한 이후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천 설성산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천 설성산성
이천 설성산성
명칭이천 설성산성 (利川 雪城山城)
국가대한민국
위치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선읍리 931번지
지정 번호경기도 기념물 제76호
지정일1984년 9월 12일
시대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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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이천 설성산성의 정확한 축성 연대와 주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한다. 신라 내물왕 대에 축성되었다는 전승이 있으나, 초기 백제 축성 후 고구려신라가 개축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성벽 축조 방식이나 출토 유물을 근거로 신라가 한강 유역 점유 후 축조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도 있다. 성 내부에서는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유물이 출토되어 오랜 기간 중요한 군사 거점이었음을 보여주며, 현재 성 안에는 신층사가 있다.

2.1. 축성 배경 및 시기

이 성은 신라 내물왕(재위 356년 ~ 402년) 때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쌓았다고 전해진다. 성을 쌓을 때 성이 들어설 자리에만 띠를 두른 듯 흰 눈이 내려 있어, 그 자취를 따라 성을 쌓았기 때문에 ‘설성(雪城)’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성은 처음에는 백제의 성이었으나, 이후 이 지역을 점령한 고구려신라가 계속해서 보완하여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2.2. 삼국시대의 설성산성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 위치한 설성산의 봉우리와 그 아래 큰 계곡을 포함하는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된 산성이다.

현재까지 성곽의 자취가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있어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성의 둘레는 약 1km, 폭은 5m, 높이는 4~5m에 달한다. 성벽은 바깥쪽으로 경사지게 쌓고 안쪽은 돌로 채우는 방식으로 매우 견고하게 만들어져, 당시 발달된 축성 기술을 엿볼 수 있다. 대부분 돌로 쌓았지만, 동쪽 능선 일부에는 흙과 돌을 섞어 쌓은 구간도 존재한다.

성 내부의 설성산 정상 바로 아래에서는 건물터의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이곳에서는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들이 출토되었다. 또한 성 안에는 도랑을 팠던 흔적과 함께 동쪽, 서쪽, 북쪽에 문터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 산성은 신라 내물왕(재위 356년~402년) 때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처음 쌓았다는 전승이 내려온다. 성을 쌓을 당시, 성벽이 들어설 자리에만 마치 띠를 두른 것처럼 흰 눈이 내려 있어 그 자취를 따라 성을 쌓았기 때문에 '설성(雪城)'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본래 백제의 성이었으나, 이후 이 지역을 차지한 고구려신라가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사용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3. 구조 및 특징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설성산의 험준한 지형과 계곡을 이용하여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성벽의 자취가 비교적 잘 남아 전체 윤곽을 알 수 있으며, 둘레는 1095m, 폭은 약 5m, 높이는 4m~5m 정도이다. 성벽은 주로 돌을 이용하여 협축법 등 발달된 방식으로 견고하게 쌓았고, 일부 구간에는 흙과 돌을 섞어 쌓거나 보축(補築) 시설을 두기도 하였다.

성 안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여러 문터와 건물터, 도랑 등의 흔적이 확인된다. 현재 성 내부에는 신층사라는 절이 있다.

이 성의 축조 시기에 대해서는 신라 내물왕(재위 356년~402년) 때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성을 쌓을 자리에만 띠처럼 흰 눈이 내려 그 자취를 따라 성을 쌓았기 때문에 ‘설성(雪城)’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처음에는 백제의 성이었으나 이후 이 지역을 차지한 고구려신라가 계속 보완하여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축성 방법이나 출토 유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령한 이후에 축조했을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3.1. 지형적 특징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 위치한 설성산의 봉우리와 그 아래 큰 계곡을 아우르는 험준한 산세를 활용하여 축조된 산성이다. 설성산 정상부와 북쪽 봉우리 사이의 계곡을 감싸 안은 형태의 포곡식 산성에 해당한다. 설성산은 산세가 험준하며 주변은 넓은 평야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이 때문에 정상부에서는 북쪽으로 이천시 시내와 설봉산성, 여주 지역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충청북도 음성 지역 일대까지 조망할 수 있어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3.2. 축성 방식

이 산성은 설성산 정상부와 그 북쪽 봉우리 사이의 계곡을 포함하여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1095m이고, 높이는 대략 4m~5m 정도이며, 폭은 약 5m이다.

성벽은 전 구간에 걸쳐 양쪽 면을 모두 쌓아 올리는 협축법으로 축조되었다. 또한 바깥쪽으로 경사지게 쌓고 안쪽은 돌로 메우는 방식도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자연 암반의 윗부분을 평탄하게 다듬은 후, 잘 가공된 성돌을 이용하여 면을 맞추면서 서로 엇물리게 쌓아 올렸다. 이러한 축성 방식은 매우 견고하여 당시 발달된 성 쌓기 기술 수준을 보여준다. 성벽 재료는 대부분 돌을 사용하였으나, 동쪽 능선 일부 구간에서는 흙과 돌을 섞어 쌓기도 하였다. 구조적으로 취약한 지점에는 성벽 바깥 면에 덧대어 쌓는 보축(補築)을 하여 성벽 기단부를 보강하였다.

성문은 동문지와 서문지가 확인되었으며, 북쪽에서도 문터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성 안에는 도랑을 판 흔적과 건물터의 흔적도 남아 있다.

3.3. 시설물

이천 설성산성은 설성산 봉우리와 그 아래 계곡을 아우르는 포곡식 산성이다. 성벽의 자취가 비교적 분명하게 남아 있어 전체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약 1095m이며, 남북 길이는 345m, 동서 길이는 320m로 부정형에 가까운 형태를 띤다. 성벽의 폭은 약 5m, 높이는 대략 4m에서 5m 정도이다. 성벽은 바깥쪽으로 경사를 두어 쌓고 안쪽은 돌로 메우는 방식으로 축조되었으며, 전 구간에 걸쳐 양쪽을 모두 쌓아 올리는 협축법(夾築法)이 사용되었다. 자연 암반 윗부분을 다듬은 후, 잘 가공된 성돌을 면을 맞추어 서로 엇물리게 쌓아 매우 견고하게 만들었다. 구조적으로 취약한 부분에는 성벽 외면에 기단부를 보강하기 위한 보축(補築) 시설을 두었다. 성벽은 대부분 돌로 쌓았으나, 동쪽 능선 일부에는 흙과 돌을 섞어 쌓은 구간도 확인된다.

성문 터로는 동문지와 서문지가 확인되었으며, 북쪽에도 문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성 안에는 설성산 정상 바로 아래에 건물터의 흔적이 있으며, 이곳에서는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들이 출토되었다. 성 내부는 평탄한 곳이 많아 여러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도랑을 판 흔적도 발견되었다. 현재 성 안에는 신층사라는 절이 자리하고 있다. 성 내부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4. 출토 유물

이곳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여러 시기의 것이 확인되었다.

5. 의의 및 평가

설성산성은 현재까지 성벽의 자취가 비교적 분명하게 남아 있어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성벽은 바깥쪽으로 경사를 두어 쌓고 안쪽은 돌로 채우는 방식으로 축조되었는데, 이는 매우 견고하여 당시 발달된 성쌓기 기술을 보여준다. 성벽 대부분은 돌로 쌓았으나 동쪽 능선 일부에는 흙과 돌을 섞어 쌓은 구간도 확인된다.

이 성은 백제가 처음 축조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삼국시대 동안 전략적 요충지로서 고구려신라가 차례로 점령하며 지속적으로 보수하고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내물왕(재위 356년~402년) 때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되었다고 한다. 성을 쌓을 자리에만 마치 띠를 두른 듯 흰 눈이 내려 그 흔적을 따라 성을 쌓았기 때문에 '설성(雪城)'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축조 방식은 설성산성이 지닌 가치를 보여준다.

6. 현황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설성산 봉우리와 그 아래의 큰 계곡을 포함한 험준한 산의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산성이다. 설성산은 산세가 험준하고 주변 지역이 넓은 평야지대인 관계로 정상부에서 북쪽으로는 이천시 시내와 설봉산성, 여주 지역, 남으로는 음성 지역 일대가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요충지이다.

지금까지 성의 자취가 비교적 분명하게 남아있어 성 전체의 윤곽을 알아 볼 수 있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1095m이고, 남북의 길이는 345m, 동서의 길이는 320m이며 부정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성벽의 폭은 약 5m, 높이는 4m에서 5m 정도이다. 이 산성은 설성산 정상부와 그 북쪽에 위치한 봉우리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계곡을 포함하여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성벽은 대부분 돌로 쌓았지만, 동쪽 능선에는 흙과 돌을 섞어 쌓은 곳도 있다. 성벽은 전 구간에 걸쳐 양쪽을 모두 쌓아 올린 협축법으로 쌓았으며, 자연 암반의 윗부분을 다듬은 후 잘 다듬어진 성돌을 면을 맞추어 가며 서로 엇물리게 쌓았다. 매우 견고하게 쌓아 발달된 성 쌓기 기술을 보여준다. 구조적으로 취약한 부분에는 성벽 외면에 성벽 기단부를 보강하기 위한 보축을 하였다.

성 안에는 평탄한 곳이 많아 여러 개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설성산 정상 바로 밑에 건물터의 흔적이 남아 있어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들이 출토되었으며, 성 안에는 도랑을 판 흔적도 있다. 문지는 동문지와 서문지가 확인되었으며, 이 외에도 북쪽에 문터의 흔적이 남아있다. 성 안에는 신층사라는 절이 있다.

이곳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여러 시기의 것이다. 설성산성은 백제가 처음 쌓았다는 견해도 있으나, 축성 방법이나 출토 유물을 고려할 때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유한 이후 쌓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