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 요시카쓰
1. 개요
이케다 요시카쓰는 아마키 이케다가의 제3대 당주 이케다 요시타카의 아들로, 1674년 오카야마에서 태어났다. 1697년 가독을 상속받아 3만 2천 석을 받았으나, 1704년 3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아코 사건으로 알려진 아코번 가로 오이시 요시오와 친척 관계였으며, 사건 이후 연좌되어 지행이 삭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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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년 사망 -
존 로크
존 로크는 경험론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잉글랜드의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로서, 인간의 마음을 백지 상태로 보고 경험을 통해 지식이 형성된다고 주장했으며, 사회계약론과 자연권 사상을 발전시켜 자유주의 사상과 민주주의 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704년 사망 -
심호
심호는 조선 숙종 시대 인물로, 딸이 경종의 비인 단의왕후가 되면서 벼슬길에 올라 사옹원 첨정으로 재직 중 사망 후 우의정에 증직되었고, 경종 즉위 후에는 국구로서 청은부원군에 추봉되고 영의정에 가증된 명문가 출신이다. -
아코 사건 관계자 -
히가시야마 천황
히가시야마 천황은 레이겐 천황의 아들로 1687년부터 1709년까지 재위하며 겐로쿠 문화의 전성기와 조정과 막부의 원만한 관계, 황실 재정 안정 등 안정적인 시기를 보낸 후 천연두로 사망했다. -
아코 사건 관계자 -
레이겐 천황
레이겐 천황은 에도 시대의 제112대 일본 천황으로, 고사이 천황으로부터 양위받아 즉위하여 황실 재흥을 목표로 하였으며 히가시야마 천황에게 양위 후 법황이 되었다. -
미노 이케다씨 -
이케다 아쓰코
이케다 아쓰코는 쇼와 천황과 고준 황후의 넷째 딸로 태어나 이케다 다카마사와 결혼하며 황족 신분을 떠난 후 이케다 동물원 운영을 돕고 이세 신궁 제주와 신사본청 총재를 역임한 일본의 옛 황족이다. -
미노 이케다씨 -
오카야마성
오카야마성은 일본 오카야마현에 위치하며, 남북조 시대에 축성되어 센고쿠 시대를 거쳐 에도 시대에 이케다 씨의 거성으로 사용되었고, 메이지 시대에 폐성령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었으나 1960년대에 재건되어 현재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천수각은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2. 생애
엔포 2년(1674년), 아마키 이케다가 제3대 당주 이케다 요시타카의 아들로 오카야마에서 태어났다. 덴나 원년(1681년) 번주 이케다 쓰나마사에게 처음 알현하였고, 이듬해 겐바(玄蕃)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겐로쿠 10년(1697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독을 상속받아 지행 3만 2천 석을 받았다.
호에이 원년(1704년) 8월 16일, 3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의 사후 가독은 번주 쓰나마사의 아들들이 양자로 들어와 이었으나 변동이 있었다.
한편, 아코 사건으로 알려진 아코번의 가로 오이시 요시오는 요시카쓰의 고종사촌(아버지 요시타카의 누나 쿠마코의 아들)이다. 오이시 요시오가 할복 전에 막부의 오메츠케에게 제출한 친척 명단에는 요시카쓰가 '어머니 쪽 사촌 이케다 겐바'로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과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요시카쓰는 지행 2천 석이 삭감되었다.
2.1. 출생과 가계
1674년(연보 2년) 오카야마에서 아마키 이케다가의 제3대 당주인 이케다 요시타카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사이토 도산의 후손인 斎藤光일본어이다.
아코 사건으로 유명한 아코번의 家老일본어 오이시 요시오는 그의 고종사촌에 해당하는데, 요시카쓰의 아버지 요시타카의 누나인 쿠마코의 아들이었다.
2.2. 가독 상속과 사망
덴나 원년(1681년) 11월 1일, 번주 이케다 쓰나마사에게 알현했다. 1682년 11월 27일에는 겐바(玄蕃)라고 칭했다. 겐로쿠 9년(1696년) 부친 요시타카가 사망하자, 이듬해인 겐로쿠 10년(1697년) 가독을 상속받아 지행고 3만 2천 석을 받았다.
호에이 원년(1704년) 8월 16일에 3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묘소는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에 있는 아마키 이케다가(天城池田家) 묘소이다.
2.3. 양자 상속과 가독 변동
호에이 원년(1704년) 8월 16일 요시카쓰가 사망하자, 같은 해 10월 오카야마번 번주 이케다 쓰나마사의 17남 미네치요(호쿄)가 양자로 들어가 가독을 상속했다. 그러나 호에이 6년(1709년), 번주의 세자였던 형 이케다 마사요리가 사망하면서 미네치요는 친가로 돌아가 세자가 되었다. 이에 따라 호에이 7년(1710년), 쓰나마사의 18남 도요지로(마사즈미)가 대신 가독을 상속받았다.
3. 아코 사건과의 관계
아코 사건으로 유명한 아코번의 가로(家老) 오이시 요시오는 이케다 요시카쓰의 외사촌 형이다. 오이시 요시오가 할복하기 전 막부에 제출한 친척 명단에도 요시카쓰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 때문에 아코 사건 이후 연좌(緣坐)되어 지행(知行) 2,000석이 삭감되는 불이익을 받았다.
3.1. 오이시 요시오와의 관계
아코 사건으로 유명한 아코번의 가로(家老) 오이시 요시오는 이케다 요시카쓰의 아버지 이케다 요시타카의 누나인 쿠마코의 아들이다. 따라서 오이시 요시오는 요시카쓰에게 외사촌 형이 된다. 오이시 요시오가 할복하기 전 막부의 오메츠케(大目付)에게 제출했던 친척 명단에는 요시카쓰가 '어머니 쪽 사촌 이케다 겐바(母方の従兄弟 池田玄蕃)'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겐바(玄蕃)는 요시카쓰의 통칭이다.
아코 사건 이후, 요시카쓰는 오이시 요시오와의 관계 때문에 연좌(緣坐)되어 지행(知行) 2,000석이 감봉되는 처분을 받았다.
3.2. 아코 사건의 영향
아코 사건으로 유명한 아코번의 가로 오이시 요시오는 이케다 요시카쓰의 아버지 이케다 요시타카의 누나 쿠마코의 아들이다. 따라서 오이시 요시오와 이케다 요시카쓰는 사촌 관계에 해당한다.
오이시 요시오가 할복하기 전 막부의 오메츠케(大目付, 감찰관)에게 제출한 친척 명단에는 이케다 요시카쓰가 '어머니 쪽 사촌 이케다 겐바(池田 玄蕃)'로 기록되어 있다. 이 명단에는 오카야마번 성대(城代) 이케다 시치로베 마사하루(요시타카의 누나 센코의 아들), 코시시키(小柎) 이케다 사헤이 노부오키(요시타카의 누나 나츠코의 아들) 등 다른 친척들의 이름도 함께 기재되었다.
아코 사건 이후, 이케다 요시카쓰는 오이시 요시오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연좌(緣坐)되어 지행(知行, 봉록) 2000석이 삭감되었다. 당시 3만 2천 석의 지행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2000석 삭감은 상당한 타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