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우메코
1. 개요
이토 우메코는 1848년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나, 게이샤로 활동하다가 1866년 이토 히로부미와 결혼했다. 1885년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내각총리대신이 되면서 일본 최초의 내각총리대신 부인이 되었으며, 괄괄하고 학구적인 면모를 보였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에게 암살된 후, 1924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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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후작부인 -
구로다 시게코
구로다 시게코는 간인노미야 사네히토 친왕의 차녀로 태어나 구로다 나가노리 후작과 결혼한 일본 제국의 황족이자 화족으로, 남편 사후 구로다 가문의 문화재를 기증하여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
일본의 백작부인 -
덕혜옹주
덕혜옹주는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 대한제국의 옹주로, 일본 유학 후 결혼 생활 중 조현병 증세를 보였으며 해방 후 귀국하여 창덕궁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녀의 삶은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일본의 백작부인 -
히로하시 노리코
일본 황족 출신인 히로하시 노리코는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 왕의 둘째 왕녀로 태어나 야마시나노미야 타케히코 왕과의 파혼 후 히로하시 사네미츠 백작과 결혼하여 평민이 되었으며, 결혼 후 자선 활동과 다이 니폰 부인회 시부야 지부장으로 활동했다. -
이토 공작가 -
이토 히로쿠니
이토 히로쿠니는 이토 히로부미의 양자로서 그의 사망 후 공작 작위를 이어받아 귀족원 의원을 지냈으며, 일본은행 감사와 일독 문화협회 회장을 역임한 일본의 화족이자 정치인이다. -
이토 공작가 -
이토 히로요시 (공작)
이토 히로요시는 이토 히로부미의 양자의 장남으로 공작을 습작하여 귀족원 공작 의원이 되었고, 미쓰이 합명회사에 취직하여 이왕직 어용 담당과 전전직을 역임했으며, 귀족원 폐지까지 화요회에 소속되어 재임했다.
2. 생애
이토 우메코는 1848년 에도 막부 나가토국(지금의 일본 야마구치현 서부) 시모노세키에서 태어나 1924년 4월 12일 사망했다. 우메코는 이토 히로부미의 두 번째 부인으로, 내각총리대신 부인을 지냈으며, 남편 사후에는 스에마쓰 겐초 저택 등에서 여생을 보냈다.
2.1. 어린 시절과 결혼
1848년 에도 막부 나가토국 (지금의 일본 야마구치현 서부) 시모노세키에서 기다 규베의 장녀로 태어났다. 아카마세키(시모노세키) 이나리초의 오키야 "이로하루"의 양녀가 되어, 게이샤로 "코우메"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1864년 영국에서 귀국한 지 얼마 안 된 이토 히로부미를 만났다. 당시 이토는 이미 이리에 구이치와 노무라 야스시의 여동생인 이토 스미코와 결혼한 상태였으나, 1866년 이토 스미코와 이혼하고 우메코와 결혼하였다. 이후 우메코는 장녀 사다코(1868년 사망), 차녀 세이코(1868년 9월 19일 - 1934년 1월 2일)를 낳았고, 양녀 아사코(1876년 - 1944년), 양자 히로쿠니(유명 용키치, 이노우에 미츠토의 아들, 1870년 - 1931년), 신이치(1890년 - 1980년), 분키치 등을 키웠다.
2.2. 내각총리대신 부인
1885년 남편 이토 히로부미가 내각총리대신이 되면서, 우메코는 일본 최초의 내각총리대신 부인이 되었다. 우메코는 괄괄하고 학구열이 넘치는 성격으로, 시다 타카코에게 단카를 배우고 영어 습득에도 힘썼다. 항상 몸가짐에 신경을 써 '부덕의 거울'로 칭송받았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불꽃』에도 우메코의 이러한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1909년 10월 26일 남편 히로부미가 안중근에게 암살되었을 때, 우메코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으나, 자신의 방에서 "나라를 위해 빛을 비춰주시던 당신, 그립고 슬프기 그지없네"라는 단카를 읊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