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평 (15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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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평은 1572년 경상북도 영주 출신의 인물로, 1612년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상경하여 유영경을 탄핵하고 광해군에게 존호를 올릴 것을 상소했다. 그는 생원시에 합격하고 문과에 급제했으나 관직에 나아가기 전에 사망했다. 사후 선교랑 홍문관 부수찬으로 증직되었으며, 정운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이평 (15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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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572년 8월 17일 경상북도 영주군 부석면 감곡리 출신으로, 도촌 이수형의 셋째 아들 참봉 이준근(李峻根)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참봉 이은(李檃)이고,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이효린이며, 어머니는 영천 이씨(永川李氏)로 생원 이여량(李汝樑)의 딸이자 장악원 직장 찰방 이현준(李賢俊)의 손녀이다. 순흥지의 장수편에 의하면 할아버지 이은(李檃)은 88세, 할머니 공주이씨(公州李氏)는 90세로 장수했다 한다. 이여빈의 8촌 동생이 된다.

유학(儒學)으로 1612년(광해군 4년)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1612년(광해군 4년) 4월 28일 상소를 올려 유영경을 세 역적의 우두머리라며 탄핵하고, 광해군에게 존호를 올리고 국시(國是)를 정하라고 하였다. 광해군은 이평의 상소 중 존호에 관한 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의논하여 시행하겠다고 답하였다. 1612년 5월 12일 광해군의 즉위를 방해한 유영경(柳永慶)을 강경하게 탄핵하였다. 대동야승과 연려실기술, 광해군일기에 그가 유영경의 죄를 탄핵한 기록이 실려 있다. 5월 25일 류영경에 대한 추죄와 임해군의 역옥, 김직재의 역변과 존호를 올리는 일을 상소하였다.

5월 29일 대신들이 존호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광해군은 거절하였다. 광해군은 "이평(李坪)의 상소 하나로 인하여 경들이 정청(庭請)을 그치지 않으니, 내가 더욱 통탄스럽게 여긴다."며 이평의 상소 때문에 신하들이 정청을 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이후 이항복 등이 신하들을 데리고 입계하여 그에게 존호 올리기를 청하기도 했다. 일설에는 이이첨이 이평을 사주하여 유영경의 추죄를 청하는 상소를 올리게 했다는 의견도 있다. 계암 김령은 6월 8일 '이평이 시사(時事)를 논한 것은 지평이 되고자 해서라는 말을 들었다.'고 평하였다.

1612년(광해군 4) 8월 1일 증광시(增廣試) 생원시에 2등 4위로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바로 전시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졌다. 그해 9월 9일의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 20위로 급제하였으나, 관직에 발령되기 전에 병으로 사망한다. 증 선교랑 홍문관 부수찬이 추서된다.

2.1. 관직 활동과 유영경 탄핵

2.2. 과거 급제와 죽음

이평은 1612년(광해군 4년)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그해 4월 28일 상소를 올려 유영경을 탄핵하고, 광해군에게 존호를 올릴것을 청하였다. 광해군은 이평의 상소에 대해 가상히 여기면서도 존호에 관한 내용은 비판하였다. 5월 12일 이평은 다시 유영경을 강경하게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5월 29일 대신들이 이평의 상소를 근거로 광해군에게 존호를 올리기를 청했으나, 광해군은 이를 거절했다. 이항복 등은 신하들을 데리고 입계하여 존호 올리기를 청하기도 했다. 일설에는 이이첨이 이평을 사주하여 유영경의 추죄를 청하는 상소를 올리게 했다는 의견도 있다.

1612년 8월 1일 증광시 생원시에 2등 4위로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바로 전시 자격이 주어져 그해 9월 9일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 20위로 급제하였으나, 관직에 발령되기 전에 병으로 사망한다. 사후 선교랑 홍문관 부수찬으로 추서된다.

2.3. 사후

그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 석남마을 후곡 자좌(子坐)에 있고, 그의 부인 파평윤씨는 영주 옥산에 묘가 있다.

1614년(광해군 6) 11월 11일 정운원종공신 2등(定運原從功臣二等)에 책록되었다.

3. 가계

할아버지는 이은(李檃)이다. 아버지 이효린(李孝麟, 1540년 - 1622년)이고, 어머니는 영천이씨(永川李氏)로 이여량(李汝樑)의 딸이다. 형은 이채(李埰)이고, 동생은 이오(李墺)와 이잠(李埁, 1581년(선조 14년) ~ 1655년)이다. 부인은 파평 윤씨(坡平尹氏)로, 증 판결사 윤제맹(尹齊盟)의 딸이다. 아들은 선교랑 이성침(李成琛)이며, 며느리는 영천 이씨(永川 李氏)로 금학당 이립(琴鶴堂 李笠)의 딸이다. 손자는 이원열, 이형열이다. 장인은 증 판결사 윤제맹(尹齊盟)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