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운
1. 개요
이현운은 고려 시대의 인물로, 강조의 정변에 참여하여 현종 옹립에 기여했다. 1010년 제2차 고려-거란 전쟁에서 거란에 포로로 잡혔으며, 거란의 신하가 되었다. 그는 "이제 밝은 해와 달을 두 눈으로 보았으니, 어찌 옛 강산만을 생각하겠습니까?"라고 말하며 항복했다. 이현운은 드라마 《천추태후》와 《고려 거란 전쟁》에서 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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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이부시랑 -
왕자지
왕자지는 고려 시대 문신으로, 왕국모의 쿠데타를 통해 요직에 발탁되었고, 윤관의 여진족 정벌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으며,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송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
고려의 이부시랑 -
서눌
서눌은 996년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형부시랑, 상서이부시랑 등을 역임하고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고려 전기의 문신으로, 딸 원목왕후가 현종의 비가 되면서 문하시중에 올랐으며, 거란과의 외교 관계에서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
고려-거란 전쟁 관련자 -
지채문
지채문은 고려 전기의 무신으로, 거란의 2차 침입 때 서경 방어에 참여했다가 현종의 몽진을 호종하며 왕을 보호한 공으로 공신에 녹훈되고 상장군 우복야에 올랐으며 사후 1등공신에 추록되었다. -
고려-거란 전쟁 관련자 -
현종 (고려)
현종은 고려 제8대 국왕으로, 왕위에 올라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 국방을 강화했으며, 중앙집권화 추진과 연등회 및 팔관회 부활 등 문화 사업에도 힘썼다. -
고려의 무신 -
태조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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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무신 -
완풍대군
완풍대군 이원계는 고려 말 무신이자 이성계의 이복 형으로, 위화도 회군에 반대하다 사망 후 대군으로 추봉되었으며 홍건적과 왜구 격퇴에 공을 세워 완산군에 봉해졌고 조선 개국 후 완산백에 추봉, 여러 사당에 배향되었다.
2. 생애
1009년, 이현운은 김치양 일파를 제거하고 목종을 폐위시킨 후 현종을 옹립하기 위한 강조의 정변에 참여했다. 정변 이전 그는 서북면의 부도순검부사(都巡檢副使)였으며, 이부시랑(吏部侍郞)이었다. 정변 후, 강조는 중추원(中樞院), 은대(銀臺), 선휘원(宣徽院)을 새로 설립된 중대성(中臺省)으로 통합했다. 강조는 중대성의 수장으로 임명되었고, 이현운은 그의 부관으로서 부수장이 되었다.
1010년 제2차 고려-거란 전쟁 때 거란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해오자 강조와 함께 30만 대군을 이끌고 방어에 나섰으나 패배하여 포로가 되었다. 이현운은 거란의 신하가 되었지만, 강조는 거란의 신하가 되기를 거부하여 처형당했다. 요 성종은 두 사람에게 항복하여 요를 섬길 것을 요구했고, 강조는 거절했지만 이현운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황제에게 "이제 밝은 해와 달을 두 눈으로 보았으니, 어찌 옛 강산만을 생각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2.1. 강조의 정변 가담
1009년, 이현운은 김치양 일파를 제거하고 목종을 폐위시킨 후 현종을 옹립하기 위한 강조의 정변에 참여했다. 정변 이전 그는 서북면의 부도순검부사(都巡檢副使)였으며, 이부시랑(吏部侍郞)이었다. 정변 후, 강조는 중추원(中樞院), 은대(銀臺), 선휘원(宣徽院)을 새로 설립된 중대성(中臺省)으로 통합했다. 강조는 중대성의 수장으로 임명되었고, 이현운은 그의 부관으로서 부수장이 되었다.
1010년 제2차 고려-거란 전쟁 때 거란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강조와 함께 30만 대군을 이끌고 방어에 나섰으나 패하여 포로가 되었다. 요 성종은 항복하여 요나라를 섬길 것을 요구했으나, 강조는 거절했지만 이현운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황제에게 "이제 밝은 해와 달을 두 눈으로 보았으니, 어찌 옛 강산만을 생각하겠습니까?"라고 말하며 거란의 신하가 되었다.
2.2. 제2차 고려-거란 전쟁
1009년, 이현운은 김치양 일파를 제거하고 목종을 폐위시킨 후 현종을 옹립하기 위한 강조의 정변에 참여했다. 정변 이전 그는 서북면의 부도순검부사(都巡檢副使)였으며, 이부시랑(吏部侍郞)이었다. 정변 후, 강조는 중추원(中樞院), 은대(銀臺), 선휘원(宣徽院)을 새로 설립된 중대성(中臺省)으로 통합했다. 강조는 중대성의 수장으로 임명되었고, 이현운은 그의 부관으로서 부수장이 되었다.
1010년 제2차 고려-거란 전쟁 때 거란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해오자 강조와 함께 30만 대군을 이끌고 방어에 나섰으나 패배하여 포로가 되었다. 이현운은 거란의 신하가 되었지만, 강조는 거란의 신하가 되기를 거부하여 처형당했다. 요 성종은 두 사람에게 항복하여 요를 섬길 것을 요구했고, 강조는 거절했지만 이현운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황제에게 "이제 밝은 해와 달을 두 눈으로 보았으니, 어찌 옛 강산만을 생각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