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우
1. 개요
이훈우는 1886년 경상남도 하동군 출생으로, 일본 유학 후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하다 1920년 한국인 최초로 건축사무소인 이훈우건축공무소를 개업한 건축가이다. 그는 조선총독부 청사 건축에 참여했으며, '조선 건축계에 유일한 기술가'로 불리며 주택 개량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부산중학교, 보성고등보통학교, 동덕여학교, 천도교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 진주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 조선일보사 평양지국 사옥 등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했다.
-
한국의 건축가 -
이상 (작가)
일제강점기 한국의 아방가르드 작가이자 건축기사였던 이상은 '오감도'와 '날개' 등 실험적인 작품으로 한국 문학사에 독보적인 자취를 남겼으며, 초현실주의 기법과 수학·건축적 요소를 결합하여 현대인의 소외와 내면세계를 탐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
한국의 건축가 -
정세권
정세권은 일제강점기 사업가이자 민족운동가로, 건양사를 설립하여 북촌 한옥마을을 개발하고 조선물산장려운동 등 민족운동을 지원하다가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
하동군 출신 -
정홍원
정홍원은 '특별 수사통'으로 불렸던 법조인 출신 정치인으로서, 새누리당 공직후보추천위원장을 거쳐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으나 유임 후 퇴임, 이후 봉사 및 저술 활동과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았고,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과 위장전입 논란이 있었다. -
하동군 출신 -
태완선
태완선은 경상남도 하동군 출신의 관료, 정치인, 기업인으로, 국회의원, 부흥부 장관, 상공부 장관, 경제기획원 장관, 건설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경제 개발에 참여했고, 대한석탄공사 사장, 한국종합제철 사장, 대한중석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
19세기 한국 사람 -
손병희
손병희는 조선 말 동학의 지도자이자 대한제국의 종교인, 독립운동가로서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3·1 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며 인내천 사상을 강조했다. -
19세기 한국 사람 -
허영호 (정치인)
허영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신간회 활동을 했으나, 중일전쟁 이후 친일로 전향하여 해방 후 혜화전문학교 교장과 동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했으며, 제헌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후 친일 행적이 드러나 건국훈장이 취소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2. 생애
이훈우는 1886년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 후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하다가 한국인 최초로 건축사무소를 개업한 건축가이다.
이은우는 그의 형이다. 이훈우는 1908년 나고야 고등공업학교(현재의 나고야 공업대학) 건축과에 입학하여 1911년 졸업하였다. 졸업 후에는 조선총독부 탁지부 세관공사과, 조선총독부 총독관방 토목국 영선과에 소속되었으며, 1917년 12월 31일 총독관방 토목국 영선과 기수(技手)로 임명되었다. 경복궁 신청사 건축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1920년 조선총독부 기수직을 사임하고 이훈우건축공무소를 개업하였다. 이는 조선인이 개업한 건축사무소로는 가장 이른 사례로, 당시 그는 '조선 건축계에 유일한 기술가'로 불렸다. 또한, 1923년 《동아일보》에 〈주택은 여하히 개량할가〉, 1927년 《중외일보》에 〈우리의 주택은 첫재구조부터 고쳐야학니다〉라는 글을 기고하여 주택 개량과 가옥 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2.1. 출생과 가계
1886년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이종구(李鍾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하동의 지역 유지였던 이은우는 그의 형이다.
2.3. 조선총독부 근무
1911년 3월 나고야고등공업학교(현재의 나고야 공업대학) 건축과를 졸업한 후 조선에 돌아가 조선총독부 탁지부 세관공사과, 조선총독부 총독관방 토목국 영선과에 소속되었다. 1917년 12월 31일, 총독관방 토목국 영선과 기수(技手)로 임명되었다. 이훈우는 경복궁 신청사 건축 과정에 참여하여 《조선총독부 청사 신영지》에 전 직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2.4. 이훈우건축공무소 개업
1920년 이훈우는 조선총독부 기수직에서 물러나 한국인 최초로 이훈우건축공무소를 개업하였다. 개업 당시 그는 '조선 건축계에 유일한 기술가'로 불렸으며, 조선의 건축물을 개량하기 위해 건축사무소를 개업했다고 한다. 1923년 《동아일보》에 〈주택은 여하히 개량할가〉(주택은 어떻게 개량할까?), 1927년 《중외일보》에 〈우리의 주택은 첫재구조부터 고쳐야학니다〉(우리의 주택은 첫째 구조부터 고쳐야 합니다.)라는 글을 기고하여, 위생 측면에서 주택 개량과 가옥 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