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1. 개요
정홍원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출신 정치인으로, 1972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로 30년간 재직했다. 검사 퇴임 후 법무연수원 원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2012년 새누리당 공직후보추천위원장을 지냈다. 2013년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로 지명되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한 사퇴 의사를 표명했으나 유임되었고, 2015년 2월 퇴임했다. 이후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선거관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 이름 | 정홍원 |
|---|---|
| 로마자 표기 | Jeong Hongwon |
| 한자 표기 | 鄭烘原 |
| 출생일 | 1944년 10월 9일 |
| 출생지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
| 국적 | 대한민국 |
| 본관 | 진주 |
| 학력 | 성균관대학교 법률학 학사 |
| 종교 | 개신교 |
| 배우자 | 최옥자(재혼) |
| 자녀 | 정우준(아들) |
| 직위 | 제42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
|---|---|
| 대통령 | 박근혜 |
| 임기 시작 | 2013년 2월 26일 |
| 임기 종료 | 2015년 2월 16일 |
| 전임자 | 김황식 |
| 후임자 | 이완구 |
| 소속 정당 | 국민의힘 |
| 주요 경력 | 제27대 법무연수원장 광주지방검찰청 검사장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제9대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 |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
| 복무 기간 | 1965년~1967년 |
| 계급 | 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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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
김수장 (법조인)
김수장은 1945년 대전 출생으로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로 임용되어 검사장까지 승진, 주요 검찰 요직을 역임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과 법무부 검찰인사위원장을 지냈으나 권인숙 성고문 사건 관련 논란이 있었다. -
대한민국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
박영무
박영무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로 임용된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여러 법원에서 법원장을 역임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서울형사지방법원 재판장 시절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주요 판결들을 내렸다. -
영도초등학교 (부산) 동문 -
서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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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초등학교 (부산) 동문 -
정경미 (희극인)
대한민국의 희극 배우 정경미는 2005년 KBS 공채 개그우먼으로 데뷔하여 《개그콘서트》에서 활약하고 디지털 싱글 앨범을 발매했으며, 동료 개그맨 윤형빈과 결혼 후 라디오 진행, 드라마 및 영화 출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
하동군 출신 -
태완선
태완선은 경상남도 하동군 출신의 관료, 정치인, 기업인으로, 국회의원, 부흥부 장관, 상공부 장관, 경제기획원 장관, 건설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경제 개발에 참여했고, 대한석탄공사 사장, 한국종합제철 사장, 대한중석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
하동군 출신 -
정호승
정호승은 1950년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나 시 〈첨성대〉로 시인, 단편소설 〈위령제〉로 소설가로 등단했으며, 민중적 서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 활동을 해온 대한민국의 시인, 소설가, 동화 작가이다.
2. 생애
정홍원은 1944년 10월 9일 일제강점기 경상남도에서 태어났다. 진주사범학교(현 진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 야간 과정을 마쳤다. 1972년 제1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974년 서울지방검찰청 영등포지청 검사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이후 30년간 검사로 재직하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과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부장, 부산지방검찰청 및 광주지방검찰청 검사장 등을 역임했다. 검사 시절 이창동 사건, 워커힐 카지노 사건 등 여러 주요 사건 수사를 통해 명성을 얻었다.
2003년 검사직에서 물러난 뒤 법무연수원 원장(2003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2004년~2006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2008년~2011년) 등을 지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시절에는 매니페스토 운동 도입과 전자투표 제도 추진에 기여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공직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과 인연을 맺었다. 같은 해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자, 2013년 2월 8일 박근혜 정부의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었다. 아들의 병역 면제 관련 논란이 있었으나, 2월 26일 대한민국 국회의 임명 동의를 받아 공식 취임했다. 총리 재임 중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그대로 읽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대독 총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후 정부의 미흡한 대응에 대한 책임을 지고 4월 27일 사의를 표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의를 수용했으나, 후임으로 지명된 안대희, 문창극 후보자가 연이어 자진 사퇴하면서 6월 26일 결국 유임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사의가 수용된 국무총리가 유임된 첫 사례였다. 이후 2015년 1월 이완구 의원이 후임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었고, 2월 16일 이완구 총리 임명 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됨에 따라 정홍원은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퇴임 후에는 저서를 출간하고 강연 활동 등을 하였으며, 2020년 7월에는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2021년에는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았다.
2.1. 자라온 환경
정홍원은 1944년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에서 6남 6녀, 총 12남매 중 열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학자 집안 출신이었고 집에 머슴을 둘 정도의 형편이었기에 가난한 집안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어린 시절, 부산에 살던 친척의 눈에 띄어 그 집에서 지내며 부산 영도초등학교와 경남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셋째 형이 고시 공부를 중도에 포기하자 아버지는 이에 실망하여 아들들을 교육시키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정홍원을 고향으로 다시 불렀다. 12남매라는 대가족으로 인해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점도 그가 원하던 경남고 진학을 포기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는 진주사범학교(현 진주교육대학교)에 진학하여 집안일을 돕는 조건으로 아버지와 타협했다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사범학교 졸업 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인왕초등학교 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다. 낮에는 교사로 일하며 돈을 벌고, 밤에는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 야간 과정에 다니며 학업을 이어갔다. 1972년, 제1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였던 김황식과 사법시험(14회) 및 사법연수원(4기) 동기이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75년, 화재 사고로 첫 아내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최옥자 씨와 재혼하여 외아들 한 명을 두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법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74년 서울지방검찰청 영등포지청 검사로 임용되며 법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2. 검사 시절
1972년 제1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74년 서울지방검찰청 영등포지청 검사로 임관하여 30년간 검사로 활동하였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과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부장, 대전지방검찰청 및 광주고등검찰청 차장검사,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장 등을 역임하였다.
검사 재직 시절인 1982년 이철희·장영자 부부 사기사건, '대도' 조세형 탈주 사건, 워커힐 카지노 외화 밀반출 사건 등을 처리하며 '특별 수사통'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3과장으로 재직하던 1991년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컴퓨터 해커를 적발하기도 했다.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장 시절에는 '민원인 후견인' 제도를 도입했으며, 1999년 대검찰청 감찰부장이 되어서는 '검찰 낮술 금지' 조치를 시행하는 등 검찰 개혁에 관심을 보였다. 이후 광주지방검찰청과 부산지방검찰청에서 검사장을 역임하였다.
2003년 검사직에서 물러났다.
2.3. 노무현 정부 시절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법무연수원장을 지냈고,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법무연수원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에는 검사장급 이상 검찰청 고위간부 인사를 앞두고 후배들을 위해 용퇴하기도 했다. 또한 대한변협에 의해 삼성 비자금 사건의 특별검사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2.4. 이명박 정부 시절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의 공직후보추천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권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2.5. 박근혜 정부 국무총리
박근혜 정부의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는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지명되었으나, 아들의 병역 면제 및 부동산 투기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에 사퇴했다. 이후 2013년 2월 8일, 정홍원이 새로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정홍원 역시 아들이 추간판 탈출증으로 병역 면제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고위 공직자로서의 적합성 논란에 휩싸였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다음 날인 2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이 가결되어 공식적으로 국무총리 임기를 시작했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그대로 읽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대독 총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13년 8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하여 방사능 오염 식품 수입에 대한 괴담 유포자를 추적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식품을 수입한다는 괴담이 인터넷 등으로 급속히 확산돼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고 지적하며, 관계 기관에 악의적인 괴담 유포 행위를 근절해 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해 11월 17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75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여 "일본은 아직 역사에 대해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연설하며 일본의 역사 인식을 비판했다. 하지만 며칠 뒤인 11월 25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는, 일제의 침략을 '진출'로 기술하여 논란이 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역사 왜곡 문제에 대해 "역사학자들이 판단할 문제"라며 즉답을 회피했다. 이에 야당 의원들은 "대한민국 총리가 맞느냐"며 강하게 반발했고,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정 총리의 답변 태도를 문제 삼아 집단 퇴장하는 등 파행을 빚기도 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고, 정부의 미흡한 초기 대응과 구조 과정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4월 2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와 함께 총리직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의를 수용했으나 사고 수습이 마무리될 때까지 총리직을 유지하도록 했다. 후임 총리 후보자로 안대희 전 대법관과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연이어 지명되었지만, 안대희 후보자는 변호사 시절 고액 수임료 논란으로, 문창극 후보자는 과거 친일적 발언과 식민사관 논란으로 인해 결국 자진 사퇴했다. 후임자를 찾지 못하자 2014년 6월 26일, 청와대는 정홍원 총리의 유임을 공식 발표했다. 사의를 표명하고 대통령이 이를 수용한 국무총리가 유임된 것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사례였다.
이후 2015년 1월 10일,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일본 내 혐한 기류에 대해 "일본은 ‘한국은 형님 나라’라고 부를 정도로 여러 방면에서 우리가 일본을 능가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이러한 점에 대한 일본의 심리적인 문제도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2015년 1월 23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이완구가 차기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었고, 2월 16일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가결됨에 따라 정홍원은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는 2014년 4월 사퇴 의사를 밝힌 지 296일 만의 퇴임이었다.
퇴임 후인 2020년 7월 27일에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당시 야당인 미래통합당에 대한 제언을 하기도 했다.
2.6. 퇴임 이후
기독교 장로로서 퇴임 후 산마루교회에서 노숙자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음식 봉사, 강연 등의 활동을 하였다.
2018년에는 「정홍원 스토리」라는 제목의 저서를 출간하였고, 같은 해 12월 23일 성탄 기념 예배가 열린 공간 산마루에서 저자 사인회를 가졌다.
2020년 7월 27일에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통해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함께 야당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2021년 8월 23일에는 국민의힘의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선거관리위원장으로 내정되었다.
3. 논란
(내용 없음)
3.1. 위장전입
2013년 2월 13일,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는 부산지방검찰청 특수부장으로 재직하던 1988년 당시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이에 대해 국무총리후보자인사청문회준비단은 "당시 후보자가 무주택자이면서 주택청약예금에 가입해 국민주택 청약 1순위자에 해당됐기 때문에 본인만 주소지를 누나 집으로 이전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 후보자는 1988년 9월 1일 부산지방검찰청으로 발령받으면서 가족 모두 부산으로 이사했지만, 주택청약 1순위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서울특별시 구로구 독산동에 있는 누나의 집으로 혼자 주소를 옮겼다. 당시에는 근무지 이동 등으로 주소지를 옮기면 청약 자격이 박탈되는 경직된 제도가 운영되고 있었다. 정 후보자는 2013년 2월 2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집이 없어 주택청약예금을 들어놓은 상태에서 주소를 부산으로 옮기면 무효가 되는 상황이었다"며 "법을 위반했지만 조금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당시 건설부는 정 후보자의 위장전입 다음 해인 1989년 3월, 취학·질병·근무 등의 사정으로 주소지를 서울 외 지역으로 옮긴 1순위자가 다시 서울로 이전할 경우 1순위 자격을 다시 부여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결과적으로 정 후보자는 위장전입을 통해 유지한 1순위 자격 덕분에 1992년 12월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의 아파트를 분양받아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이러한 위장전입 문제는 과거 정부에서도 고위공직자 임명에 걸림돌이 된 바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장상 국무총리 내정자는 위장전입 문제로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노무현 정부 때는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같은 문제로 사퇴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3년 2월 14일, 당시 새누리당 국무총리인사청문회 간사였던 홍일표 의원은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정홍원 후보자의 위장전입에 대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홍 의원은 "당시 제도가 너무 경직되게 운영됐었고, 이것이 불합리하다 하여 89년도에 제도가 바뀌어 전근 간 경우 구제되도록 했다"며 "그런 점을 고려하면 여러 동기나 경위에 비추어 그렇게 비난할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3.2. 아들 병역면제 관련 의혹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정홍원의 아들 정우준은 대학 2학년 때인 1997년 첫 신체검사에서 1급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대학원 재학 중이던 2001년 재검에서 수핵탈추증(디스크)으로 5급 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는 현역 판정 이후 학업을 이유로 4년간 입대를 연기하다가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을 앞두고 병역 면제를 받은 것이다.
이에 대해 정 후보자 측은 아들이 석사과정 중 실험에 오랜 시간 참여하며 허리에 무리가 갔고, 여름 휴가철 친구들과 동해안 여행에서 운전한 뒤 통증이 심해졌다고 해명했다. 서울로 돌아와 강남21C병원에서 MRI 촬영 후 수술 진단을 받았으나, 후유증을 우려해 1년 넘게 치료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국무총리실이 공개한 병적기록표에 따르면, 정우준은 2001년 10월 30일 강남성모병원에서 진단서를 발급받아 서울지방병무청에 제출했다. 서울지방병무청은 자체 CT로 재검사를 실시하여 11월 8일 신체등위판정심의위원회 전원 합의로 5급 면제 판정을 내렸다. 강남성모병원 진단서에는 '요통 오른쪽 다리 방사통에 따른 운동 제한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국무총리실은 또한 1997년 대선 이후 군 신체검사가 강화되었고, 면제 처분 당시 정 후보자가 병역 신고 대상 공직자(광주지방검찰청 검사장)였기 때문에 허위 면제는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병역 면제 이후 정우준은 2006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2013년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검사로 재직하게 되었다. 디스크 발병 후 장시간 앉아 공부해야 하는 사법시험을 준비한 점에 대해, 일각에서는 디스크 치료와 시험 준비를 어떻게 병행했는지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국무총리실이 공개한 의무기록에는 사법시험 합격 전후인 2005년과 2006년 기록이 누락되어 있다.
당시 새누리당 홍일표 의원은 정홍원 총리 후보자 아들의 병역 문제에 대해 "낙마로 이어질 정도의 하자는 아니라고 예상하지만, 본인 해명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잘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4. 가족
* 배우자: 최옥자 (崔玉子, 1951년 ~ )
* 아들: 정우준 (鄭祐埈, 1978년 ~ )
** 서울대학교 전기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사법시험에 도전하여 사법연수원 38기를 수료했으며, 2009년에 성남지청 검사로 임용되었다. 인천지방검찰청 검사로 있을 때 드루킹 여론 조작 사건 특별검사팀에 합류했다.
5. 학력
부산에 살던 친척의 도움으로 부산광역시에서 영도국민학교와 경남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이후 부친의 반대로 원하던 경남고 진학에 실패하고, 집안 형편을 돕기 위해 진주사범학교에 진학하는 것으로 부친과 타협했다.
사범학교 졸업 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인왕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학비를 벌어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 야간과정을 다녔고, 1971년 법률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6. 경력
정홍원은 대전지방검찰청과 광주고등검찰청 차장검사,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장을 거쳐 1999년 대검찰청 감찰부장이 되었고, 이후 광주지방검찰청과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하였다.
검사 시절에는 1982년 이철희·장영자 부부 사기사건, '대도' 조세형 탈주 사건, 워커힐 카지노 외화 밀반출 사건 등을 처리하며 '특별 수사통'으로 불렸다. 199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3과장 재직 시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컴퓨터 해커를 적발했다.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장 시절에는 '민원인 후견인' 제도를 도입했고, 대검찰청 감찰부장 때는 '검찰 낮술 금지'를 시행하는 등 검찰 개혁에 관심을 보였다.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연수원 원장을 지냈고, 2004년에는 후배들을 위해 검사장급 이상 고위간부 인사 전에 용퇴했다. 이후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내며 한국 최초로 매니페스토 운동을 제안하고 전자투표 제도 도입에 기여했다. 또한 대한변호사협회에 의해 삼성 비자금 사건의 특별검사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으며,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박근혜와의 인연으로 공직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첫 국무총리 후보자였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아들 병역 문제 등 여러 의혹으로 사퇴하자, 2013년 2월 8일 정홍원이 후임 후보자로 지명되었다. 정홍원 역시 아들의 추간판 탈출증으로 인한 병역 면제 문제로 논란이 있었으나, 2월 26일 대한민국 국회의 임명 동의를 받아 제42대 국무총리로 취임했다. 총리 재임 중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그대로 읽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대독 총리'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2013년 8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관련 괴담 유포자에 대한 처벌을 주장했다. 같은 해 11월 대정부 질문에서는 일제 침략을 '진출'로 기술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문제에 대해 "역사학자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답하여 야당의 강한 비판을 받고 국회 파행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후 정부의 미흡한 대응에 대한 책임을 지고 4월 27일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후임으로 지명된 안대희 전 대법관과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각각 고액 수임료 논란과 친일 발언 논란으로 연이어 낙마하자, 6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은 정홍원의 사표를 반려하고 유임을 결정했다. 사의를 표명했던 국무총리가 유임된 것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이후 2015년 2월 16일, 후임 이완구 총리의 임명 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사퇴 발표 296일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퇴임 후인 2020년 7월,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공개했으며, 2021년에는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23년 11월부터 2024년 5월까지 국가원로회의 상임의장을 역임했다.
| 연도 | 경력 |
|---|---|
| 1972년 | 제14회 사법시험 합격 |
| 1974년 | 서울지방검찰청 영등포지청 검사 |
| 1995년 | 대전지방검찰청 차장검사 |
| 1995년 ~ 1996년 |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 지청장 |
| 1999년 | 광주고등검찰청 차장검사 |
| 1999년 ~ 2000년 | 대검찰청 감찰부장 |
| 2000년 ~ 2002년 | 광주지방검찰청 검사장 |
| 2002년 ~ 2003년 |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
| 2003년 4월 ~ 2004년 | 제27대 법무연수원 원장 |
| 2004년 | 법무법인 로고스 대표변호사 |
| 2004년 10월 ~ 2006년 9월 | 제12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
| 2006년 ~ 2008년 | 법무법인 유한로고스 상임고문 변호사 |
| 2008년 6월 ~ 2011년 6월 | 제9대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
| 2012년 1월 ~ 2013년 2월 | 새누리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 (2012년 1월 한나라당, 2월 새누리당으로 당명 변경) |
| 2013년 2월 ~ 2015년 2월 | 제42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
| 2013년 2월 ~ 2015년 2월 |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 |
| 2013년 4월 | 대구세계에너지총회 명예조직위원장 |
| 2014년 9월 ~ 2015년 7월 |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
| 2021년 8월 ~ 2021년 11월 |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
| 2023년 11월 ~ 2024년 5월 | 국가원로회의 상임의장 |
| - |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