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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교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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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임오교변(壬午敎變)은 1942년(임오년)에 일제가 대종교를 탄압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입니다.
사건 배경 및 발생:


  • 대종교는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항일 독립운동에 기여했습니다.
  • 1937년, 대종교는 발해고궁유지에 천진전(단군전) 건립을 추진하고 대종학원을 설립하는 등 교세 확장에 힘썼습니다.
  • 일제는 대종교를 감시하고 탄압하기 위해 교단 내부에 밀정을 잠입시키기도 했습니다.
  • 1942년 11월 19일, 일제 경찰은 조선어학회 사건과 연계하여 대종교 교주 이하 간부들을 검거했습니다.
  • 조선어학회의 이극로가 천진전 건립과 관련하여 대종교 교주에게 보낸 편지 속 '널리 펴는 말'이라는 원고를 '조선독립선언서'라고 조작하고, 내용을 왜곡했습니다.
  • "대종교는 조선 고유의 신도를 중심으로 단군문화를 다시 발전시킨다는 기치 아래, 조선민중에게 조선정신을 배양하고 민족자결의식을 선전하는 교화단체이니만큼 조선독립이 그 최후목적이다.”라는 죄목을 씌웠습니다.

사건 결과:

  • 대종교 교주 단애종사 이하 25명이 체포되었습니다.
  • 권상익, 이정, 안희제, 나정련, 김서종, 강철구, 오근태, 나정문, 이창언, 이재유 등 10명이 고문으로 옥사했습니다. (순교십현)
  • 교주 단애는 무기형을, 그 외 간부들은 7~1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출옥했습니다.
  • 대종교에서는 이 사건을 임오교변이라 부르며, 옥사한 10명의 간부를 임오십현(壬午十賢)으로 숭상하고 있습니다.

추가 정보:

  • 2022년, 임오교변 8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고 추모하는 논문과 자료를 모은 책 『임오교변 - 대종교 탄압과 박해』가 발간되었습니다.
  • 2023년에는 임오교변 80주년, '대종교와 신도와의 전쟁'이라는 주제로 관련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임오교변
개요
명칭임오교변(壬午敎變)
발생 시기1912년 음력 8월 15일 ~ 9월 15일
발생 위치만주 각지
원인대종교에 대한 일제의 탄압
조선총독부의 대종교에 대한 오해와 날조된 정보
전개 과정만주 각지에서 대종교인 체포 및 고문, 재산 약탈
무고한 대종교인 학살
결과대종교의 간부 및 교도 다수 순교
대종교의 조직 약화
항일 민족 운동의 기반 약화
배경
시대적 배경일제강점기
관련 인물
주요 관련 인물오근태
강철영
김서종
이창언
이재유
나정련
나정문
이복
권상익
안희제
영향
영향대종교는 1912년 음력 8월 15일부터 9월 15일까지 만주 각지에서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교세가 크게 위축되었으며, 독립운동의 기반이 약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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