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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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자카르타 대성당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위치한 로마 가톨릭 대성당이다. 1619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의해 가톨릭이 금지된 후, 1829년 처음 건설되었으며, 현재 건물은 1891년부터 1901년 사이에 재건되었다. 고딕 리바이벌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세 개의 첨탑과 붉은 벽돌, 티크 목재 지붕이 특징이다. 대성당은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박물관, 파이프 오르간 등을 갖추고 있다. 2020년부터 2021년 사이에는 자카르타 이스티클랄 모스크와 연결되는 터널이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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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대성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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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자카르타 대성당 |
전체 이름 | 성모 승천 교회 |
로마자 표기 | Gereja Katedral Jakarta |
네덜란드어 이름 | Kathedraal van Jakarta |
인도네시아어 이름 | Gereja Santa Maria Diangkat ke Surga |
네덜란드어 전체 이름 | De Kerk van Onze Lieve Vrouwe ten Hemelopneming |
위치 | 자카르타, 중앙자카르타, 인도네시아 |
종파 | 로마 가톨릭교회 |
관할 구역 | 자카르타 대교구 |
지구 | 중앙 자카르타 |
웹사이트 | 자카르타 대성당 공식 웹사이트 |
건축가 | 안토니우스 디크만스, 예수회 |
건축 양식 | 고딕 리바이벌 |
기공 | 1891년 |
완공 | 1901년 |
축성일 | 1901년 4월 21일 |
건축 비용 | 628,000 네덜란드령 길더 (1891년 기준) |
종교 기관 | 예수회 |
지위 | 대성당 |
길이 | 60m |
너비 | 10m |
높이 | 60m |
첨탑 수 | 3개 |
첨탑 높이 | 60m |
재료 | 벽돌 (회반죽 마감), 티크 목재 지붕 구조, 철제 첨탑 구조 |
일본어 정보 | |
일본어 이름 | ジャカルタ大聖堂 |
일본어 위치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
일본어 종파 | 가톨릭교회 |
일본어 건축 양식 | 고딕 리바이벌 |
일본어 기공 | 1891년 |
일본어 완공 | 1901년 |
일본어 관할 구역 | 자카르타 대교구 |
일본어 지위 | 대성당 |
일본어 길이 | 60 m |
일본어 높이 | 60 m |
일본어 첨탑 수 | 3 |
일본어 재료 | 벽돌, 티크, 연철, 모르타르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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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네덜란드 종교 개혁 이후, 네덜란드령 동인도 정부는 티모르섬, 플로레스섬을 제외하고는 가톨릭교회의 전교 활동을 금지했다. 그러나 1803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네덜란드 본국이 프랑스 제국에 지배되면서 가톨릭교회 설립이 허용되었다.
1829년 바타비아(자카르타) 최초의 가톨릭 교회가 건설되었다. 1890년 이 교회는 무너졌고, 곧바로 재건이 계획되어 1901년 현재의 대성당이 완공되었다.[8] 1988년부터 2002년 사이에 개조되었으며, 2020년부터 2021년 사이에는 이스티클랄 모스크와의 연결 터널이 건설되었다.[4][5]
2. 1.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

1619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도착한 이후, 네덜란드 동인도 제도에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금지되었고 플로레스와 티모르로 제한되었다. 네덜란드는 프로테스탄티즘을 지지하고 교황청의 영향력과 권위를 제한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 동안, 네덜란드 동인도 제도와 다른 식민지를 포함한 네덜란드는 프랑스 혁명 정부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나중에는 프랑스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806년, 나폴레옹은 그의 가톨릭 신자인 동생 루이 나폴레옹(Lodewijk|links=nonl)을 네덜란드의 왕으로 임명했다. 그때부터 가톨릭 교회는 네덜란드 동인도 제도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2]
바타비아 총독 레오나르 뒤 부스 드 지지니(1825~1830)는 바타비아에 첫 번째 가톨릭 교회를 건립할 토지를 제공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벨테브레덴 지역에 있던 드 코크 장군의 이전 저택은 교회로 개조되었다. 프린센 주교는 1829년 11월 6일에 교회를 축복하고 봉헌하여 "몽세뇨르 승천 성모 마리아 교회(Our Lady of the Assumption)"라고 명명했다. 이 교회는 1859년에 개조되었지만 1890년 4월 9일에 무너졌다.[2]
현재의 교회는 1891년부터 1901년 사이에 재건된 건물이다. 안토니우스 디이크만스(Antonius Dijkmans) 신부가 건축가로 임명되었다. 자금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되었지만, 교회의 새로운 주교인 몬시뇰 E. S. 루이펜(Mgr E. S. Luypen) SJ가 네덜란드에서 필요한 자금을 모금했고, M. J. 훌스윗(MJ Hulswit) 건축가가 1899년에 공사를 재개했다.[3] "몽세뇨르 승천 성모 마리아 교회(De Kerk van Onze Lieve Vrowe ten Hemelopneming - The Church of Our Lady of the Assumption)"는 1901년 4월 21일 몬시뇰 에드문두스 시브란두스 루이펜(Mgr Edmundus Sybrandus Luypen) SJ에 의해 축복되고 봉헌되었다. 이 교회는 1988년부터 2002년 사이에 개조되었다.[2]
2. 2. 초기 교회 설립과 재건
1619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도착 이후, 네덜란드 동인도 제도에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금지되었고 플로레스와 티모르로 제한되었다. 네덜란드는 프로테스탄티즘을 지지하고 교황청의 영향력과 권위를 제한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 동안, 네덜란드 동인도 제도와 다른 식민지를 포함한 네덜란드는 프랑스 혁명 정부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나중에는 프랑스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1806년, 나폴레옹은 그의 가톨릭 신자인 동생 루이 나폴레옹(Lodewijk|links=nonl)을 네덜란드의 왕으로 임명했다. 그때부터 가톨릭 교회는 네덜란드 동인도 제도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2]
바타비아의 총독 레오나르 뒤 부스 드 지지니(1825~1830)는 바타비아에 첫 번째 가톨릭 교회를 건립할 토지를 제공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벨테브레덴 지역에 있던 드 코크 장군의 이전 저택은 교회로 개조되었다. 프린센 주교는 1829년 11월 6일에 교회를 축복하고 봉헌하여 "몽세뇨르 승천 성모 마리아 교회(Our Lady of the Assumption)"라고 명명했다. 이 교회는 1859년에 개조되었지만 1890년 4월 9일에 무너졌다.[2]
현재의 교회는 1891년부터 1901년 사이에 재건된 건물이다. 안토니우스 디이크만스(Antonius Dijkmans) 신부 SJ가 건축가로 임명되었다. 자금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되었지만, 교회의 새로운 주교인 몬시뇰 E. S. 루이펜(Mgr E. S. Luypen) SJ가 네덜란드에서 필요한 자금을 모금했고, M. J. 훌스윗(MJ Hulswit) 건축가가 1899년에 공사를 재개했다.[3] "몽세뇨르 승천 성모 마리아 교회(De Kerk van Onze Lieve Vrowe ten Hemelopneming - The Church of Our Lady of the Assumption)"는 1901년 4월 21일 몬시뇰 에드문두스 시브란두스 루이펜(Mgr Edmundus Sybrandus Luypen) SJ에 의해 축복되고 봉헌되었다. 이 교회는 1988년부터 2002년 사이에 개조되었다.[2]
2. 3. 현대
현재의 교회는 1891년부터 1901년 사이에 재건된 건물이다. 안토니우스 디이크만스(Antonius Dijkmans) 신부가 건축가로 임명되었다. 자금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되었지만, 교회의 새로운 주교인 몬시뇰 E. S. 루이펜(Mgr E. S. Luypen) SJ가 네덜란드에서 필요한 자금을 모금했고, M. J. 훌스윗(MJ Hulswit) 건축가가 1899년에 공사를 재개했다.[3] 1901년 4월 21일, 몬시뇰 에드문두스 시브란두스 루이펜(Mgr Edmundus Sybrandus Luypen) SJ는 "몽세뇨르 승천 성모 마리아 교회(De Kerk van Onze Lieve Vrowe ten Hemelopneming - The Church of Our Lady of the Assumption)"를 축복하고 봉헌했다. 이 교회는 1988년부터 2002년 사이에 개조되었다.[2]
2020년부터 2021년 사이에는 교회와 이스티클랄 모스크를 연결하는 터널이 건설되었다.[4][5]
3. 건축
자카르타 대성당은 고딕 리바이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세 개의 철골 첨탑을 가지고 있다. 겉보기에는 돌로 지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벽돌을 쌓고 모르타르로 마감하였다. 지붕은 티크 목재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인도네시아의 특성상 지붕의 무게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는 고딕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방식이다.[1]
건물 본체는 두꺼운 붉은 벽돌로 만들어졌지만, 석재 건축물처럼 보이도록 회반죽을 바르고 무늬를 넣었다. 넓은 벽은 지붕 구조에 넓게 걸쳐진 티크 나무 들보를 지탱한다. 첨탑 꼭대기는 철제 골조로 만들어졌고, 지붕은 티크 나무로 만들어졌다. 철과 나무는 일반적인 네오 고딕 건축에서 사용되는 돌로 된 벽돌과는 달리,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인도네시아 지역 특성상 더 가벼운 재료를 선택한 것이다.[1]
3. 1. 외관
자카르타 대성당의 평면도는 십자가 모양이며, 길이 60미터, 너비 10미터에 각 통로에 5미터씩 더해진다.[1] 건물의 정문은 서쪽을 향하고 있다. 주 출입구의 트뤼모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있으며, 출입구 위에는 라틴어로 "''Beatam Me Dicentes Omnes Generationes''"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는 뜻이다.[1] 또한 성모 마리아의 상징인 큰 원형 스테인드글라스 로제타 로사 미스티카가 있다.[1]


자카르타 대성당에는 세 개의 주요 첨탑이 있다. 가장 높은 두 개의 첨탑은 높이 60미터이며, 정문 양쪽 앞에 위치해 있다. 북쪽 첨탑은 "''Turris Davidica''" 또는 "다윗의 탑"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어둠의 세력에 대한 피난처이자 보호자로서의 마리아를 상징하는 마리아에 대한 경건한 칭호이다. 남쪽 첨탑 역시 60미터 높이이며, "상아탑"이라고 불린다. 상아의 하얀색과 순수함은 성모 마리아의 순수함을 나타낸다. 상아탑에는 아직도 작동하는 오래된 시계와 교회 종이 있다. 세 번째 첨탑은 지붕의 십자형 교차점 위로 솟아 있으며, 지면으로부터 45미터 높이에 있으며 "천사의 탑(The Angelus Dei Tower)"이라고 불린다.[1]
건물은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위층은 북쪽 탑의 계단으로 접근할 수 있다. 원래 2층은 미사 중 합창단이 있던 곳이었지만, 대성당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위층에 너무 많은 사람들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다는 우려가 있다. 오늘날 위층은 자카르타 대성당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6]
남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후 시신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묘사한 피에타상이 있다. 내부를 둘러싼 벽에는 십자가의 길을 묘사한 여러 장면이 있다. 대성당에는 양쪽에 두 개씩 총 네 개의 고해소가 있다. 중앙에는 소리 반사를 위한 조개 모양 지붕이 있는 높이 올라간 나무 연단이 있다. 이 연단은 1905년에 설치되었다.[1] 남쪽에는 벨기에 베르쉬렌에서 제작된 네오 고딕 양식의 큰 오르간이 있는데, 1988년에 설치되었다.[1]
대성당에는 세 개의 제단이 있다. 왼쪽에는 마리아의 승천을 기념하는 "성모 마리아 제단"이 있다. 이 제단은 1915년에 제작되었다. 오른쪽에는 1922년 5월에 완공된 "성 요셉 제단"이 있다. 중앙에 있는 주 제단은 19세기에 네덜란드에서 제작되었으며, 1956년에 옮겨왔다. 이 제단에는 예수의 큰 십자가와 감실이 있다.[1]
건물의 본체는 두꺼운 붉은 벽돌로 만들어졌으며, 석재 건축물을 모방하기 위해 회반죽을 바르고 무늬를 넣었다. 넓은 벽은 지붕 구조에 넓게 걸쳐진 티크 나무 들보를 지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첨탑 꼭대기는 철제 골조로 만들어졌고, 지붕은 티크 나무로 만들어졌다. 철과 나무는 일반적인 네오 고딕 건축에서 사용되는 돌로 된 벽돌과는 달리 적합한 재료가 아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가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돌로 된 벽돌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재료를 선택하였다.[1]
자카르타 대성당은 세 개의 철골 첨탑을 가진 고딕 리바이벌 건축물이다. 돌로 지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골조는 벽돌로 쌓고 모르타르로 마감하였다. 지붕은 티크 목재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지진에 대비하여 지붕의 무게를 줄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며, 고딕 건축에서는 이례적인 것이다. 파사드는 서쪽을 향하고 있으며, 큰 장미창이 있고, 입구의 두 개의 문 사이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놓여 있다. 내부는 라틴 십자형 평면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교차부 바로 위에 작은 첨탑이 있다.
3. 2. 내부
자카르타 대성당의 평면도는 십자가 모양이며, 길이 60미터, 너비 10미터에 각 통로에 5미터씩 더해진다. 대성당은 주교의 자리인 "감독좌"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대성당이라 불린다. 건물의 정문은 서쪽을 향하고 있다. 주 출입구 트뤼모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있으며, 출입구 위에는 라틴어로 "''Beatam Me Dicentes Omnes Generationes''"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는 뜻이다. 또한 성모 마리아의 상징인 큰 원형 스테인드글라스 로제타 로사 미스티카가 있다.[1]
자카르타 대성당에는 세 개의 주요 첨탑이 있다.
- 가장 높은 두 개의 첨탑은 높이 60미터이며, 정문 양쪽 앞에 위치해 있다.
- 북쪽 첨탑은 "''Turris Davidica''" 또는 "다윗의 탑"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어둠의 세력에 대한 피난처이자 보호자로서의 마리아를 상징하는 마리아에 대한 경건한 칭호이다.
- 남쪽 첨탑 역시 60미터 높이이며, "상아탑"이라고 불린다. 상아의 하얀색과 순수함은 성모 마리아의 순수함을 나타낸다. 상아탑에는 아직도 작동하는 오래된 시계와 교회 종이 있다.
- 세 번째 첨탑은 지붕의 십자형 교차점 위로 솟아 있으며, 지면으로부터 45미터 높이에 있으며 "천사의 탑(The Angelus Dei Tower)"이라고 불린다.[1]
건물은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위층은 북쪽 탑의 계단으로 접근할 수 있다. 원래 2층은 미사 중 합창단이 있던 곳이었지만, 대성당이 상당히 오래되었기 때문에 건물이 위층에 너무 많은 사람들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다는 우려가 있다. 오늘날 위층은 자카르타 대성당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네덜란드령 동인도와 인도네시아 대주교 및 추기경의 은잔, 모자, 가운 등 가톨릭 의식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6] 박물관에는 인도네시아의 로마 가톨릭 역사도 전시되어 있다.[1]
남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후 시신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묘사한 피에타상이 있다. 내부를 둘러싼 벽에는 십자가의 길을 묘사한 여러 장면이 있다. 대성당에는 양쪽에 두 개씩 총 네 개의 고해소가 있다. 중앙에는 소리 반사를 위한 조개 모양 지붕이 있는 높이 올라간 나무 연단이 있다. 이 연단은 1905년에 설치되었으며, 아래쪽에는 지옥의 이미지가, 중간에는 예수의 설교와 다른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연단 꼭대기에는 날개 달린 천사들로 장식된 천국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남쪽에는 벨기에 베르쉬렌에서 제작된 네오 고딕 양식의 큰 오르간이 있는데, 1988년에 마스트리흐트 근처 암비 마을에서 옮겨져 설치되었다.[1]
대성당에는 세 개의 제단이 있다.
- 왼쪽: 마리아의 승천을 기념하는 "성모 마리아 제단" (1915년 아틀리에 라마커스 제작)
- 오른쪽: 1922년 5월에 완공된 "성 요셉 제단"
- 감독좌: 왼쪽에 세 개의 좌석과 함께 위치
- 중앙: 19세기에 네덜란드에서 제작, 1956년 그로닝겐의 예수회 교회에서 옮겨옴, 예수의 큰 십자가와 감실[1]
건물의 본체는 두꺼운 붉은 벽돌로 만들어졌으며, 석재 건축물을 모방하기 위해 회반죽을 바르고 무늬를 넣었다. 넓은 벽은 지붕 구조에 넓게 걸쳐진 티크 나무 들보를 지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첨탑 꼭대기는 철제 골조로 만들어졌고, 지붕은 티크 나무로 만들어졌다. 철과 나무는 일반적인 네오 고딕 건축에서 사용되는 돌로 된 벽돌과는 달리 적합한 재료가 아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가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돌로 된 벽돌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재료를 선택하였다.[1]
3. 3. 건축 양식
자카르타 대성당은 고딕 리바이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세 개의 철골 첨탑을 가지고 있다. 겉보기에는 돌로 지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벽돌을 쌓고 모르타르로 마감하였다. 지붕은 티크 목재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인도네시아의 특성상 지붕의 무게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는 고딕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방식이다.[1]대성당의 평면도는 십자가 모양이며, 길이 60미터, 너비 10미터에 각 통로에 5미터씩 더해진다. 건물의 정문은 서쪽을 향하고 있으며, 주 출입구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있고, 출입구 위에는 "Beatam Me Dicentes Omnes Generationesla"라는 라틴어 문구가 적혀 있다. 이는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는 뜻이다. 또한 성모 마리아의 상징인 큰 원형 스테인드글라스 로제타 로사 미스티카가 있다.[1]
자카르타 대성당에는 세 개의 주요 첨탑이 있다. 가장 높은 두 개의 첨탑은 높이 60미터이며, 정문 양쪽에 있다. 북쪽 첨탑은 "Turris Davidicala" 또는 "다윗의 탑"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어둠의 세력에 대한 피난처이자 보호자로서의 마리아를 상징한다. 남쪽 첨탑은 "상아탑"이라고 불리며, 성모 마리아의 순수함을 상징한다. 상아탑에는 오래된 시계와 교회 종이 있다. 세 번째 첨탑은 지붕의 십자형 교차점 위에 있으며, 높이 45미터이고 "천사의 탑(The Angelus Dei Tower)"이라고 불린다.[1]
건물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위층은 북쪽 탑의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다. 원래 2층은 합창단이 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자카르타 대성당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에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와 인도네시아 대주교 및 추기경의 은잔, 모자, 가운 등 가톨릭 의식의 유물과 인도네시아의 로마 가톨릭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6][1]
남쪽에는 피에타상이 있다. 내부 벽에는 십자가의 길을 묘사한 장면들이 있다. 대성당에는 네 개의 고해소가 있다. 중앙에는 소리 반사를 위한 조개 모양 지붕이 있는 나무 연단이 있는데 1905년에 설치되었다. 연단 아래쪽에는 지옥, 중간에는 예수의 설교, 꼭대기에는 천국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남쪽에는 1988년에 설치된 네오 고딕 양식의 오르간이 있다.[1]
대성당에는 세 개의 제단이 있다. 왼쪽에는 "성모 마리아 제단"(1915년 제작), 오른쪽에는 "성 요셉 제단"(1922년 완공)이 있다. 감독좌는 왼쪽에 세 개의 좌석과 함께 있다. 중앙의 주 제단은 19세기에 네덜란드에서 제작되었으며, 1956년 그로닝겐의 예수회 교회에서 옮겨왔다. 이 제단에는 예수의 큰 십자가와 감실이 있다.[1]
4. 갤러리
5. 음악
자카르타 대성당에는 피아노 두 대, 일렉톤 두 대, 그리고 사용 가능한 파이프 오르간 두 대가 있다.
5. 1. 파이프 오르간 상세 정보

벨기에 통헤렌(Tongeren) 출신 조지 페르슈어런(George Verschueren)이 1988년에 제작한 오르간이 남쪽 횡단 예배실의 높은 자리에 놓여 있다. 건반대 양쪽에 스톱(stop)이 배치되어 있으며, 왼쪽의 스톱으로 바람을 작동시킨다. 건반은 4옥타브이며, 평평한 페달 건반은 2.5옥타브이다. 오르간 로프트 난간과 오르간 케이스는 자카르타 대성당의 고딕 양식을 반영하며, 모든 목재는 교회의 기존 목공과 어울리도록 착색되어 있다. 파이프는 평평하게 배열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큰 탑이 있고, 케이스의 좌우 끝에는 작은 탑 두 개가 있다.[7]
오르간의 스톱 목록은 다음과 같다.
Manual I (56 건반/4옥타브) | Manual II (56 건반/4옥타브) | Pedal (30 건반/2 1/2옥타브) | 커플러 |
---|---|---|---|
참조
[1]
서적
Sejuta Pesona Gereja Katedral Jakarta
Gereja St. Maria Diangkat ke Surga, Paroki Katedral Jakarta
2005
[2]
서적
Perjalanan Iman Gereja Katedral
Museum Katedral
2008
[3]
웹사이트
1891 – 1901
http://www.katedralj[...]
2020-11-12
[4]
뉴스
Jokowi Bangun 'Terowongan Silaturahmi' Istiqlal-Katedral
https://www.cnnindon[...]
2020-02-07
[5]
뉴스
Terowongan Silaturahmi Istiqlal-Katedral Rampung, Begini Penampakannya
https://money.kompas[...]
2021-09-21
[6]
뉴스
Cathedral Museum Counts on Volunteers
https://www.thejakar[...]
2012-03-07
[7]
웹사이트
Katedral Katolik
http://www.clackline[...]
2022-03-26
[8]
웹사이트
Paroki Katedral Jakarta 1891–1901
http://www.katedralj[...]
2022-12-21
[9]
서적
Sejuta Pesona Gereja Katedral Jakarta
Gereja St. Maria Diangkat ke Surga, Paroki Katedral Jakarta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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