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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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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자크 칼로는 17세기 프랑스의 판화가로, 로렌 공국의 낭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사망했다. 금세공인으로 시작하여 로마와 피렌체에서 판화를 배운 그는 메디치 가문을 위해 활동했으며, 에칭 기법의 혁신을 통해 판화의 표현 영역을 넓혔다. 특히 "에쇼프" 바늘 개발, 새로운 부식제 사용, 스토핑 아웃 기법 활용 등을 통해 섬세하고 정교한 표현을 가능하게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전쟁의 참화》, 《임프루네타의 축제》 등이 있으며, 그의 작품은 한국 미술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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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칼로
기본 정보
앤서니 반 다이크의 원화에 따른 야코부스 칼로 초상화 (1630)
앤서니 반 다이크의 원화에 따른 초상화 (1630)
본명자크 칼로
출생1592년, 낭시, 로렌 공국
사망1635년 3월 24일, 낭시, 로렌 공국
국적프랑스
직업판화가, 제도공
활동 정보
활동 시기1608년 - 1635년
사조바로크

2. 생애와 훈련

자크 칼로는 로렌 공국(현재 프랑스 영토)의 수도 낭시에서 태어났다. 칼로는 신분이 높은 집안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로렌 공의 의전관이었다. 훗날 칼로는 자신의 서명에 스스로를 귀족으로 적어 넣었다. 15세에 금세공인 견습생이 되었지만, 곧 로마로 건너가 프랑스인 필리프 토마생에게 판화 기술을 배웠다. 이후 피렌체에서 안토니오 템페스타에게 에칭 기법을 배우고, 1612년부터 1621년까지 이 곳에서 지냈다. 칼로는 2000점이 넘는 판화 밑그림용 스케치를 남겼지만, 회화 수련은 쌓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1621년 코시모 2세 데 메디치 사망 후 낭시로 돌아와, 이후 파리와 네덜란드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로렌, 프랑스, 스페인 궁정과 파리 출판사로부터 의뢰를 받았다. 낭시에 머물렀지만, 그의 판화는 유럽 전역에 널리 배포되었고, 렘브란트는 그의 판화를 수집했다.[1]

2. 1. 초기 경력 (이탈리아 시기)

칼로는 현재 프랑스에 속한 로렌의 수도인 낭시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공작 궁정의 의전관을 맡을 정도로 중요한 가문 출신이었다. 칼로는 자신의 판화에 쓰인 문구에서 종종 자신을 귀족 신분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그는 15세에 금세공인에게 도제 생활을 시작했지만, 곧 로마로 가서 프랑스 출신 망명자인 필리프 토마생에게 판화를 배웠다. 1612년부터 1621년까지 피렌체에서 안토니오 템페스타에게 에칭을 배운 것으로 보이며, 이 시기 칼로가 판화를 위해 제작한 2,000점 이상의 준비 드로잉과 습작이 남아 있다. 다만, 그의 회화 작품은 알려진 바가 없어, 아마도 그는 화가로서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듯하다.

피렌체에 머무는 동안 그는 독립적인 장인이 되었고, 종종 메디치 가문 궁정을 위해 일했다. 1621년 토스카나 대공 코시모 2세 데 메디치가 사망한 후, 그는 낭시로 돌아왔다.

2. 2. 낭시 귀환과 전성기

''The Large Hunt'', 유명한 기술적 걸작


1621년 코시모 2세 데 메디치가 사망한 후, 칼로는 낭시로 돌아와 남은 생애를 그곳에서 보냈다. 이후 10년 동안 파리와 네덜란드를 방문했다. 그는 로렌, 프랑스, 스페인 궁정과 주로 파리의 출판사로부터 의뢰를 받았다. 낭시에 머물렀지만, 그의 판화는 유럽 전역에 널리 배포되었고, 렘브란트는 그의 판화를 열렬히 수집했다. 피렌체에 거주하는 동안 판화가로서 독립하여, 특히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주문을 받았다. 만년에는 파리와 네덜란드도 방문했다. 칼로는 로렌, 프랑스, 스페인 궁정으로부터 주문을 받았으며, 파리의 출판사로부터도 주문을 받았다. 낭시의 외딴곳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으며, 렘브란트 판 레인은 열렬한 수집가 중 한 명이었다.[1]

3. 에칭 기법의 혁신

칼로는 에칭 기법에 여러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와 판화의 표현 영역을 크게 확장했다. 그는 에칭 바늘의 일종인 에쇼프(échoppe)를 개발하고, 새로운 방식의 바니시를 사용했으며, 스토핑 아웃 기법을 여러 번 활용하여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섬세한 표현을 가능하게 했다.[1]

칼로의 이러한 혁신은 그의 제자 아브라함 보스가 쓴 에칭 기법서를 통해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다. 이 책은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 독일어, 영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혔다.[1]

분류:17세기 프랑스 판화가

분류:에칭 판화가

3. 1. 에쇼프(échoppe) 개발

칼로는 끝부분이 기울어진 타원형 단면을 가진 에칭 바늘인 에쇼프(échoppe)를 개발했다. 이를 통해 에칭 작가들은 조각가들이 할 수 있었던 것처럼 굵은 선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1] 이전에는 인그레이빙에서만 가능했던 섬세한 표현을 에칭에서도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칼로는 새로운 가능성을 잘 활용했다.[2]

3. 2. 새로운 경질 방지액 사용

칼로는 류트 제작자들이 사용하는 바니시를 왁스 기반의 방식액 대신 사용하여 판을 코팅하고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제거하는 에칭 그라운드에 대한 개선된 레시피를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선을 더 깊게 에칭할 수 있었고, 인쇄 시 판의 수명을 연장했으며, 산이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그라운드를 통과하여 판에 닿아 이미지에 반점이나 얼룩을 생성하는 "불완전한 물림"의 위험을 크게 줄였다. 이전에는 불완전한 물림의 위험이 항상 존재하여 조각가가 불완전한 물림으로 인해 망가질 위험이 있는 하나의 판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게 했다. 이제 에칭 작가들은 이전에 조각가들의 독점이었던 매우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있었고, 칼로는 새로운 가능성을 잘 활용했다.

3. 3. 스토핑 아웃(stopping-out) 기법 활용

칼로는 판 전체를 산으로 부식시키는 과정에서, 음영의 톤을 조절하기 위해 특정 부분을 방지액으로 덮는 '스토핑 아웃(stopping-out)'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1] 이 기법을 여러 차례 반복함으로써, 원근감과 명암 효과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전례 없는 미묘한 거리감과 음영을 구현할 수 있었다.[1]

무고한 자들의 학살, 멀리 있는 풍경의 흐릿한 선을 만들기 위해 여러 번의 스토핑 아웃 기법을 사용한 모습. x

4. 주요 작품

칼로는 다양한 주제와 양식으로 판화 작품을 남겼다.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코메디아 델라르테 인물들을 단순하고 풍자적인 스타일로 묘사한 대규모 연작 ''발리 디 스페사니아''(Balli di Sfessania)는 피렌체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제작되었다.[4]
  • 예수와 마리아의 생애에 관한 연작.
  • 탕자의 이야기에 관한 연작.
  • ''이스키아 산 아래의 거인 티페오''(1617).
  • ''임프루네타의 축제''(1620). --
  • ''곤드르빌의 축제''(1624).
  •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1635, 피츠윌리엄 박물관).
  • 1633년에 출판된 18점의 판화 《전쟁의 참화(Les Misères et les Malheurs de la Guerre, 큰 참화)》와 이보다 앞서 미완성된 《작은 불행》.

4. 1. 《전쟁의 참화》(Les Misères et les Malheurs de la Guerre)

자크 칼로의 ''전쟁의 불행'' 중 하나


칼로의 가장 유명한 판화는 "전쟁의 불행과 불운"을 주제로 한 두 개의 연작이다. 1633년에 출판된 18점의 판화 《전쟁의 참화》(Les Misères et les Malheurs de la Guerre, 큰 참화)와 이보다 앞서 미완성된 《작은 불행》이 있는데, 이는 판화의 크기가 크고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비록 큰 세트조차도 약 8cm x 13cm에 불과하다). 이 이미지들은 병사들이 마을, 시골, 수도원을 약탈하고 불태우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후 상사에게 체포되어 처형당하거나, 농민에게 린치를 당하거나, 불구로 구걸하며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에는 장군들이 군주로부터 보상을 받는다.[2] 1633년은 30년 전쟁 동안 로렌 지방이 프랑스에 의해 침략당한 해였으며, 칼로의 작품은 칼로의 영향을 받은 프란시스코 고야의 ''전쟁의 참화''와 함께 전쟁의 비인간성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예술적 표현으로 평가받고 있다.

4. 2. 《작은 참화》(Les Petites Misères)

《작은 참화》(Les Petites Misères)는 자크 칼로의 미완성 연작으로, 《전쟁의 참화》보다 앞서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전쟁의 참화》의 초기 구상을 보여준다. 그림의 크기는 작지만(8×13cm 정도), 전쟁의 참상을 묘사하고 있다.

4. 3. 《임프루네타의 축제》(La Foire d'Impruneta)

1620년에 제작된 대형 판화로, 이탈리아 임프루네타에서 열리는 축제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수많은 인물 군상과 다채로운 풍경을 정교하게 묘사하여, 당시의 사회상과 풍속을 엿볼 수 있게 한다.[4]

4. 4. 《곤드르빌의 축제》(La Foire de Gondreville)

자크 칼로는 1624년에 곤드르빌에서 열리는 축제의 모습을 묘사한 판화를 제작했다.[4]

4. 5.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La Tentation de Saint Antoine)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Temptation of Saint Anthony영어)은 자크 칼로가 1635년에 제작한 판화이다. 이 작품은 성 안토니우스가 겪는 유혹과 고뇌를 종교적 상징과 알레고리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1]

4. 6. 《코메디아 델라르테》 연작 (Balli di Sfessania)

피렌체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제작된 대규모 연작으로, 코메디아 델라르테 인물들을 단순하고 풍자적인 스타일로 묘사한 ''발리 디 스페사니아''(Balli di Sfessania)가 있다.[4]

4. 7. 기타 작품


  • 코메디아 델 아르테 인물들을 단순하고 풍자적인 스타일로 묘사한 대규모 연작 ''발리 디 스페사니아''(Balli di Sfessania)는 칼로피렌체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제작되었다.[4]
  • 예수와 마리아의 생애에 관한 연작.
  • 탕자의 이야기에 관한 연작.
  • ''이스키아 산 아래의 거인 티페오''(1617).
  • ''임프루네타의 축제''(1620).

''임프루네타의 축제''(1620).

  • ''곤드르빌의 축제''(1624).
  •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1635, 피츠윌리엄 박물관).

5. 그로테스크 드워프(Grotesque Dwarves)

자크 칼로의 '''그로테스크 드워프''' 연작은 더비 도자기와 다른 회사들이 "맨션 하우스 드워프" 또는 "그로테스크 드워프"로 알려진 도자기 인형을 만드는 데 영감을 주었다. 전자의 제목은 런던의 맨션 하우스 주변을 돌아다니며 광고가 담긴 큰 모자를 쓴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유래되었다.[3]

Varie Figure Gobbi는 1616년에 제작된 21점의 에칭 연작이다.

참조

[1] 서적 Callot, Jacques EB1911
[2] 서적 The Art of War[s]: Paintings of Heroes, Horrors and History 2014
[3] 웹사이트 Mansion House Dwarves http://www2.derby.ac[...] 2011-08-27
[4] 간행물 Black Slaves' Music and Dance in the Sixteenth and Sventeenth Centuries: Spanish, Italian and French Reflections 2020
[5] 서적 Callot, Jacques EB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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