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뽕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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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잠실 뽕나무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원동에 위치했던 뽕나무를 지칭한다. 뽕나무는 뽕나무과 뽕나무속에 속하는 낙엽 교목 또는 관목으로, 오디나무라고도 불린다. 잠실 뽕나무는 조선 초기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성종~연산군 재위 기간에 신잠실이 설치될 때 함께 심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잠실이라는 지명은 누에를 치는 곳을 의미하며, 조선 시대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잠실도회가 설치되어 양잠을 장려했다. 서울에는 연희궁의 서잠실, 아차산 아래 동잠실, 그리고 잠원동 지역의 신잠실이 있었다.

잠실 뽕나무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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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리 뽕나무는 이미 죽은 나무로 원줄기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자라다 가지 중간에서 잘렸고 나무 속도 대부분 썩은 상태다.
이름잠실 뽕나무 (蠶室 뽕나무)
지정 종류서울특별시 기념물
지정 번호1
지정일1973년 1월 26일
주소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 1-54번지
시대조선시대
면적토지 0.6㎡
수량1주
추가 정보
지정 종류 (과거)천연기념물
지정 번호 (과거)77
지정일 (과거)1962년 12월 3일
설명잠실리 뽕나무는 이미 죽은 상태이지만 조선 전기의 것이라 전해오는 유서 깊은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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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뽕나무의 특징

뽕나무는 뽕나무과 뽕나무속에 속하는 낙엽 교목 또는 관목으로, 중국, 우수리, 몽고, 코카사스, 중앙아시아, 유럽 등지에 넓게 분포하며 북위 59도 55분까지 심을 수 있다.

《잠실 뽕나무》는 한남대교 남서쪽, 서울신동초등학교 북서쪽 잠원로변(한신아파트 120동 앞)에 있으며, 가슴높이직경 65cm로서 조선 초기에 심어진 것으로 추측되나 정확한 심은 시기와 수령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성종~연산군 재위 기간에 이 지역 일대에 신잠실(新蠶室)이 설치될 때 심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고사된 상태로 원줄기가 1.2m 높이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고 3.5m 높이에서 잘린 상태이다. 이 나무의 뿌리에서 싹터 자란 듯 수고 4m, 흉고직경 9cm에 달하는 나무가 바로 옆에 서 있다. 이 뽕나무 주변에는 수고 10m, 흉고직경 30cm에 달하는 큰 나무로부터 수고 1.5m, 흉고직경 4.5cm에 달하는 어린 것까지 8주 정도가 길이 11m, 폭 7m의 화단에 심겨져 있고 단지 주변 곳곳에 어린 것들이 심어져 있다.

이 뽕나무가 잠실리뽕나무로 불리는 것은 이곳이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잠실리였기 때문이다. 1963년 서울에 편입될 때 이미 현 송파구(당시는 성동구)에 잠실동이 있으므로 중복을 피해 잠실리의 '잠' 자와 신동면 신원리의 '원' 자를 따서 잠원동이라 칭한 것이다.

2.1. 형태

뽕나무(Morus alba Linnaeus)는 뽕나무과 뽕나무속에 속하는 낙엽 교목 또는 관목으로, 오디나무 혹은 새뽕나무라고도 한다. 가지에 가시가 있으며 어린 가지에는 털이 있다. 잎은 3개로 갈라지는 것과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난형(卵形)인 것이 있다. 3개로 갈라지는 잎은 둔두(鈍頭) 원저(圓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한 것은 예두(銳頭)이고 넓은 예저(銳底)이며 길이 6∼10cm, 너비 3∼6cm로서 표면에 잔털이 있고 뒷면에 융모(絨毛)가 있다. 잎자루는 길이 15∼25mm로서 털이 있다. 꽃은 암수딴그루(二家花)로서 5∼6월에 피며, 열매는 취과(棸果)로서 둥글며 지름 2∼3cm 정도로서 육질(肉質)이고 9월에 적색으로 익으며, 수과는 5mm정도로서 흑색이다. 과육(果肉)은 달고 먹을 수 있다. 산뽕나무에 비해 암술대가 짧고 잎의 톱니가 둔하다.

2.2. 생태

뽕나무(Morus alba Linnaeus)는 뽕나무과 뽕나무속에 속하는 낙엽교목 또는 관목으로, 오디나무나 새뽕나무라고도 불린다. 가지에 가시가 있으며 작은 가지에 털이 있다. 잎은 3개로 갈라지는 것과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난형(알 모양)인 것이 있다. 꽃은 암수의 꽃이 각각 다른 나무에서 피는 이가화로서 5~6월에 피며, 열매는 취과로서 둥글고 지름 2~3cm 정도이며 육질이고 9월에 적색으로 익는다. 과육은 달고 먹을 수 있다. 산뽕나무에 비해 암술대가 짧고 잎의 톱니가 둔하다.

2.3. 분포

뽕나무뽕나무과 뽕나무속에 속하는 낙엽교목 또는 관목으로, 중국, 우수리, 몽고, 코카사스, 중앙아시아, 유럽 등지에 넓게 분포하며, 북위 59도 55분까지 식재할 수 있다.

잠실 뽕나무는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기 이전에는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잠실리 지역에 있었다. 1963년 서울에 편입될 당시 잠실동이 이미 존재했기 때문에, 잠실리의 '잠' 자와 신동면 신원리의 '원' 자를 따서 잠원동으로 칭하게 되었다.

3. 잠실 뽕나무와 잠실도회

《잠실 뽕나무》는 한남대교 남서쪽, 서울신동초등학교 북서쪽 잠원로변(한신아파트 120동 앞)에 있으며, 가슴높이직경 65cm이다. 조선 초기에 심어진 것으로 추측되나 정확한 식수 시기와 수령은 알 수 없다. 성종~연산군 재위 기간에 이 지역 일대에 신잠실(新蠶室)이 설치될 때 심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고사된 상태로, 원줄기가 1.2m 높이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고 3.5m 높이에서 잘린 상태이다. 이 나무의 뿌리에서 싹터 자란 듯 수고 4m, 흉고직경 9cm인 나무가 바로 옆에 서 있다. 이 뽕나무 주변에는 수고 10m, 흉고직경 30cm인 큰 나무부터 수고 1.5m, 흉고직경 4.5cm인 어린 것까지 8주 정도가 길이 11m, 폭 7m의 화단에 심겨져 있고, 단지 주변 곳곳에 어린 것들이 식재되어 있다.

3.1. 잠원동과 신잠실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기 이전까지 이 지역은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잠실리였다. 1963년 서울에 편입될 때 이미 현 송파구 (당시는 성동구)에 잠실동이 있어 중복을 피하기 위해 잠실리의 '잠' 자와 신동면 신원리의 '원' 자를 따서 잠원동이라 칭했다. 따라서 지하철 잠원역잠실역과의 혼동을 막기 위해 잠원역으로 불렀다.

일반적으로 잠실은 민간에서 잠종을 받아 뽕잎을 먹이고 누에를 치는 곳을 말한다. 그러나 조선 전기 문헌에 나타나는 잠실은 일반 민가의 잠실이 아니라 국립양잠소 격인 잠실도회(蠶室都會)를 의미한다. 조선 초기에는 중국의 예에 따라 궁중에 잠실을 설치하여 중전과 세자빈이 뽕나무를 기르고 누에 치는 일을 익히며 백성에게 길쌈의 시범을 보였다.

태종은 양잠을 국가적인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잠실도회를 설치·운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여 1416년 2월 우선 지방에 시범 잠실도회를 설치했는데, 이것이 잠실도회의 효시이다. 서울 지역에 잠실을 설치한 시기는 세종 때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에는 서울에 3개의 잠실이 설치되었는데, 연희궁의 서잠실, 아차산 아래 동잠실(현 송파구 잠실동), 그리고 잠원동 지역의 신잠실이 있었다.

신잠실의 설치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용재총화》에 신잠실 기사가 수록된 것으로 보아 성종~연산군 재위 때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신잠실은 동·서잠실과 함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유명무실해졌다. 그러나 조선 말부터 일제강점기 초까지 잠원동에는 뽕나무 묘목을 재배하고 잠종을 보급했으며 잠업강습소가 세워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