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 (숙)
1. 개요
장구는 전한 문제 때 태자 유계를 섬겼으며, 형법에 능통했으나 어진 성품을 지닌 인물이다. 경제가 즉위한 후 구경에 이르렀으며, 무제 때 어사대부에 임명되었다. 재임 기간 동안 죄인을 문초하는 대신 어진 인재를 등용하고, 죄인에게 형벌을 내리는 판결문은 돌려보내거나 눈물을 흘리며 봉하는 등 관대함을 보였다. 늙어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양릉에서 여생을 보냈으며, 자손들은 고위 관직에 올랐다. 안사고는 경제 초기의 정위 구가 장구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장구에 대한 내용은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에 전해진다.
-
중국에 관한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중국에 관한 -
카자흐인
카자흐인은 15세기 카자흐 칸국 건국 이후 명칭이 사용된 튀르크계 중앙아시아 북부 유목민족으로, "자유로운 자"를 뜻하는 카자흐라는 명칭은 권위에 저항하는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에서 유래했으며, 카자흐 초원을 중심으로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 번성했고, 유목 생활과 튀르크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현재 여러 국가에 디아스포라가 거주하고 있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
전한 사람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 사람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2. 생애
장구는 형법에 뛰어난 인물로, 문제 때 태자 유계를 섬겼다. 비록 형법을 익혔으나 어진 사람이었고, 유계(경제)가 즉위한 후에는 더욱 대우받아 항상 관직이 구경에 이르렀다.
무제 때인 원광 4년(기원전 131)에는 한안국의 뒤를 이어 어사대부에 임명되었다. 벼슬한 이래 죄인을 문초할 것을 상주한 적이 없었고, 오로지 어진 자를 관직에 앉힐 뿐이었다. 관원들은 장구를 어진 자라고 생각하여 감히 속이지 못하였다. 죄인에게 형벌을 내리는 판결문이 오면 가능한 한 돌려보냈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눈물을 흘리며 봉하였다.
늙어서 병이 위중해지자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하였고, 무제는 상대부(上大夫)의 봉록을 내려 양릉(陽陵)의 집에서 여생을 보내게 하였다. 장구의 자손들은 모두 높은 관직에 올랐다.
경제 초기에 정위를 지낸 구라는 인물이 있는데, 안사고는 장구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하였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진출
형법에 뛰어나 문제 때 태자 유계를 섬겼다. 장구는 비록 형법을 익혔으나 어진 사람이었고, 유계가 즉위한 후(경제)에는 더욱 대우받아 항상 관직이 구경에 이르렀다.
무제 때인 원광 4년(기원전 131년), 면직된 한안국의 뒤를 이어 어사대부에 임명되었다.
장구는 벼슬한 이래 죄인을 문초할 것을 상주한 적이 없었고, 오로지 어진 자를 관직에 앉힐 뿐이었다. 관원들은 장구를 어진 자라고 생각하여 감히 속이지 못하였다. 또 장구는 죄인에게 형벌을 내리는 판결문이 오면 가능한 한 돌려보냈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눈물을 흘리며 봉하였다.
늙어서 병이 위중해지니 관직을 사퇴하길 청하였고, 무제는 상대부(上大夫)의 봉록을 내려 양릉(陽陵)의 집에서 여생을 보내게 하였다. 자손들은 모두 높은 관직에 올랐다.
경제 초기에 정위를 지낸 인물로 구가 있는데, 안사고는 장구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하였다.
2.2. 어사대부 임명과 활동
무제 때인 원광 4년(기원전 131), 면직된 한안국의 뒤를 이어 어사대부에 임명되었다.
장구는 벼슬한 이래 죄인을 문초할 것을 상주한 적이 없었고, 오로지 어진 자를 관직에 앉힐 뿐이었다. 관원들은 장구를 어진 자라고 생각하여 감히 속이지 못하였다. 또 장구는 죄인에게 형벌을 내리는 판결문이 오면 가능한 한 돌려보냈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눈물을 흘리며 봉하였다.
2.3. 죄인에 대한 태도
장구는 벼슬을 한 이후 죄인을 문초할 것을 상주한 적이 없었고, 오로지 어진 자를 관직에 앉힐 뿐이었다. 관원들은 장구를 어진 자라고 생각하여 감히 속이지 못하였다. 또한 장구는 죄인에게 형벌을 내리는 판결문이 오면 가능한 한 돌려보냈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눈물을 흘리며 봉하였다.
2.4. 은퇴와 여생
장구는 형법에 뛰어난 인물로, 문제 때 태자 유계를 섬겼다. 비록 형법을 익혔으나 어진 사람이었고, 유계(경제)가 즉위한 후에는 더욱 대우받아 항상 관직이 구경에 이르렀다.
무제 때인 원광 4년(기원전 131년)에는 면직된 한안국의 뒤를 이어 어사대부에 임명되었다.
장구는 벼슬한 이래 죄인을 문초할 것을 상주한 적이 없었고, 오로지 어진 자를 관직에 앉힐 뿐이었다. 관원들은 장구를 어진 자라고 생각하여 감히 속이지 못하였다. 또한 장구는 죄인에게 형벌을 내리는 판결문이 오면 가능한 한 돌려보냈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눈물을 흘리며 봉하였다.
늙어서 병이 위중해지자 관직을 사퇴하길 청하였고, 무제는 상대부(上大夫)의 봉록을 내려 양릉(陽陵)의 집에서 여생을 보내게 하였다. 그의 자손들은 모두 높은 관직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