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직상
1. 개요
장직상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이후 기업인, 관료로 활동한 인물이다. 조선의 관찰사 장승원의 아들이자 장택상의 형이며, 1903년 경기전 참봉을 시작으로 신령군수, 비안군수, 하양군수, 선산군수를 역임했다. 이후 은행, 금융, 상업 관련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해방 후에는 대한생명보험 취체역 회장, 화신무역 취체역 등을 역임했고, 반민특위에 기소되었으나 석방되었다.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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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금융인 -
장택상
장택상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임시정부 활동, 수도경찰청장, 초대 외무부 장관, 국무총리,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이승만 지지 후 야당 정치인으로 반독재 투쟁을 전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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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룡
이완용의 외조카이자 친일파 집안 출신인 한상룡은 한성은행을 기반으로 성장하여 조선총독부의 지원하에 각종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며 일제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한 인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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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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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2. 생애
장승원(張承遠)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정부인 조남철(趙南徹, 풍양 조씨(豊壤 趙氏))이다. 장택상은 그의 동생이다. 1903년 경기전 참봉, 1904년 감조관을 역임했다.
2.1. 일제강점기 활동
1910년 6월 경북 신령군수가 되었다. 한일합방 직후 신령군수를 사임하고 고향인 칠곡군 오태로 돌아갔다. 같은 해 10월 다시 신령군수가 되었다.
1911년 비안군수, 1912년 하양군수, 1913년 선산군수를 거쳐 1915년 경상북도 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을 지냈다가 1916년 3월 관직을 그만두었다.
1917년 7월 대구은행 취체역(이사)이 되고 곧 선남은행 취체역이 되었다. 1920년 4월 경일은행 설립에 참여하고 이사가 되었다. 1920년 8월 왜관금융창고주식회사를 설립했고, 같은 해 동아인촌(東亞燐寸)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사장이 되었다.
1924년 2월 대구상업회의소 특별평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26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해방 직후 동생 장택상이 미군정의 경무국장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하던 중, 송진우 피살을 계기로 경찰계에 투신하자 만류하기도 했다.
2.2. 해방 이후 활동
1946년 9월 9일 대한생명보험 취체역 회장에 선임되었다. 같은 해 12월 12일 화신상사가 화신에서 분리, 화신무역으로 창립되자 화신무역 취체역의 한 사람으로 선임되었다. 1947년 민규식, 박충식 등과 함께 경찰 후원 조직 보경회를 조직, 경찰 후원금을 모금하였다. 1948년 정부수립 후 그해 10월 20일 상공부에서 각 분과위원을 선출할 때 상공부 전기분과위원에 선임됐다.
1949년 1월 반민특위에 기소, 구속되었으나 곧 풀려났다. 김준연에 의하면 이범석, 지청천, 오광선 장군 등이 그를 탄원하여 석방되었다고 한다. 이후 이천전기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1959년 4월 17일 오전 6시 대구 자택에서 숙환으로 사망했다.
3. 논란 및 비판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다.
4. 가족 관계
5. 기타
박정희의 아버지 박성빈과 둘째 형 박무희(1898 ~ 1960)는 장직상 집안의 농토에서 소작농으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