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홍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장홍은 후한 말기의 인물로, 효렴으로 천거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동탁이 정권을 잡자 장초에게 거병을 촉구하고 반동탁 연합군에 참여했으며, 이후 원소를 섬기며 청주 자사로 도적을 소탕했다. 장초가 조조에게 포위되자 원소에게 구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이에 원소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패하여 처형당했다.
장홍은 일찍이 즉구장(卽丘長)을 지냈으나, 영제 말년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장초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군의 공조(功曹)가 되어 그를 섬겼다.
2. 생애
동탁이 조정을 장악하고 황제를 살해하자, 장홍은 장초에게 거병을 촉구했고, 장초는 형인 장막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장홍은 유대, 공주, 교모 등과 함께 맹약을 맺고 선서를 낭독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아 주변을 감동시켰다. 그러나 이들의 군대는 동탁군과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군량이 떨어져 해산되었다.
그 후 장홍은 원소를 섬기게 되었고, 청주자사 초화가 죽자 원소에 의해 청주자사로 임명되었다. 장홍은 2년 동안 재임하면서 도적들을 물리치는 등 청주를 안정시켰다. 이후 동군태수로 임명되어 동무양(東武陽)으로 이주하였다.
이전에 섬겼던 장초가 옹구(雍邱)에서 조조군에게 포위되자, 장홍은 원소에게 병력을 빌려 구원에 나서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장홍이 구원하러 올 것이라 믿었던 장초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흥평 2년(195년) 겨울, 장홍은 원소에게 반기를 들었다. 원소는 군대를 일으켜 장홍을 포위하였으나, 해를 넘기도록 함락시키지 못했다. 원소는 진림을 시켜 항복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장홍은 항복하지 않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이에 원소는 더욱 거세게 장홍을 공격하였다. 죽음을 각오한 장홍은 성 안의 주민들에게 탈출할 것을 권하였으나, 모두 장홍을 따랐다. 그러나 결국 성은 함락되었고, 원소는 장홍을 생포하였다.
원소는 본래 장홍을 좋아하여 용서하려 하였으나, 장홍은 절개를 굽히지 않아 결국 처형당하였다.
2. 1. 초기 생애와 관직 생활
장홍은 체격과 용모가 뛰어나다는 평판을 받았으며, 효렴으로 추천되어 낭(郎)이 되었다.[1] 당시 관례에 따라 현령으로 임명되었는데, 이때 함께 임명된 인물로는 왕랑, 유요, 조욱 등이 있었다.[1] 장홍은 즉구장(卽丘長)에 임명되었다.[1]
영제 말년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장초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군의 공조(功曹)가 되어 태수의 실무를 맡았다.[1] 동탁이 조정을 장악하고 황제를 살해하자, 장홍은 장초에게 거병을 촉구했다.[1] 장초는 그의 말을 받아들여 형인 장막을 찾아가 거병을 상의했고, 장막도 원래 그러한 의향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1]
장막은 군사를 이끌고 아군인 제후들과 산조의 땅에서 합류했다.[1] 장막이 산조에서 장초에게 장홍의 성격을 묻자, 장초는 장홍을 극찬했다.[1] 장막도 장홍과 면회하여 그가 매우 뛰어난 인물임을 인정했다.[1] 유대, 공주 등의 제후들과도 친밀한 사이였기 때문에, 교모를 포함한 의병을 일으킨 제후 5명은 동맹을 맺는 자리에서 맹세의 말을 할 역할을 서로에게 미루다가, 모두 함께 장홍에게 맡겼다.[1] 장홍은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여 주변을 감동시켰다.[1] 그러나 결국 그들의 군대는 동탁군과 싸우지 못하고 군량이 다 떨어져 해산했다.[1]
그 후, 장초는 유우에게 사자로 장홍을 보냈다.[1] 그러나 장홍은 하간까지 왔을 때 원소와 공손찬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임무를 완수할 수 없었다.[1] 장홍이 원소와 회견하자, 원소도 장홍을 마음에 들어 하여 서로 우호 관계를 맺기로 했다.[1] 이때, 청주자사 초화(焦和)가 사망했기 때문에, 원소는 그 후임으로 청주의 통치와 군대의 진무를 맡겼다.[1] 당시 청주는 전임 초화가 도적을 처리하지 못해 황폐해져 있었다.[1] 그러나 장홍은 재임한 2년 동안 도적을 진압했다.[1]
이 일로 원소에게 능력을 인정받은 장홍은 연주의 동군태수로 임명되어 동무양(東武陽)으로 이주했다.[1]
2. 2. 반동탁 연합군 참여
동탁이 조정을 장악하자, 장홍은 장초를 설득하여 공주, 교모, 유대, 장막 등과 함께 맹약을 맺었다.[1] 이들은 동맹을 맺는 자리에서 맹세의 말을 할 역할을 서로에게 미루다가, 모두 함께 장홍에게 맡겼고, 장홍은 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여 주변을 감동시켰다.[1]
이전에 섬겼던 장초가 옹구에서 조조군에게 포위되자, 장홍은 원소에게 병력을 빌려 구원에 나설 수 있도록 부탁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1] 장홍의 구원을 기대했던 장초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1]
2. 3. 원소 휘하에서의 활동
장초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군의 공조(功曹)가 되어 그를 섬겼다. 동탁이 조정을 장악하자 장초를 설득하여, 공주, 교모, 유대, 장막, 장초 등과 함께 맹약을 맺고 선서를 낭독하였다.
그 후 원소를 섬겼으며, 청주자사 초화(焦和)가 죽자 원소는 청주 진출을 위해 장홍을 청주자사로 임명해 부임시켰다. 장홍은 2년 동안 재임하면서 초화가 소탕하지 못한 도적들을 물리쳤다. 이후 동군태수가 되어 동무양(東武陽)으로 이주하였다.
전에 섬겼던 장초가 옹구(雍邱)에서 조조군에게 포위되자, 장홍은 병력을 빌려 구원해 줄 것을 원소에게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장홍이 구원하러 올 것이라 믿었던 장초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흥평 2년(195년) 겨울, 장홍은 원소에게 반기를 들었다. 원소는 군대를 일으켜 장홍을 포위하였으나, 해를 넘기도록 함락시키지 못했다. 원소는 진림을 시켜 항복을 권하는 편지를 썼으나, 장홍은 항복하지 않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이에 원소는 더욱 거세게 장홍을 공격하였다. 죽음을 각오한 장홍은 성 안의 주민들에게 탈출할 것을 권하였으나, 모두들 장홍을 따랐으므로 굶주림 속에서도 탈출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성은 함락되었고, 원소는 장홍을 생포하였다.
원소는 본래 장홍을 좋아하여 그를 용서하려 하였으나, 장홍은 절개를 굽히지 않아 처형당하였다.
2. 4. 장초 구원 실패와 원소와의 대립
조조가 옹구에서 장초를 포위하자, 장홍은 원소에게 병력을 빌려 구원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1] 장홍의 구원을 기대했던 장초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1]
흥평 2년(195년) 겨울, 장홍은 원소에게 반기를 들었다.[1] 원소는 군대를 동원해 장홍을 포위했으나, 해가 넘도록 함락하지 못했다.[1] 원소는 진림을 시켜 항복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장홍은 거절하는 답장을 보냈다.[1] 이에 원소는 더욱 강력하게 장홍을 공격했다.[1] 죽음을 각오한 장홍은 성 안의 백성들에게 탈출을 권했으나, 모두 장홍을 따르며 굶주림 속에서도 탈출하지 않았다.[1] 그러나 결국 성은 함락되었고, 원소는 장홍을 생포했다.[1]
원소는 평소 장홍을 아꼈기에 용서하려 했으나, 장홍이 절개를 굽히지 않자 결국 처형했다.[1]
2. 5. 최후
흥평 2년(195년) 겨울, 장홍은 원소에게 반기를 들었다. 원소는 군대를 일으켜 장홍을 포위하였으나, 해를 넘기도록 함락시키지 못했다.[1] 원소는 진림을 시켜 항복을 권하는 편지를 썼으나, 장홍은 항복하지 않겠다는 답장을 보냈다.[1] 이에 원소는 더욱 거세게 장홍을 공격하였다.[1] 죽음을 각오한 장홍은 성 안의 주민들에게 탈출할 것을 권하였으나, 모두들 장홍을 따랐으므로 굶주림 속에서도 전혀 탈출하지 않았다.[1] 그러나 결국 성은 함락되었고, 원소는 장홍을 생포하였다.[1]
본래 장홍을 좋아했던 원소는 그를 용서하려 하였으나, 장홍은 절개를 굽히지 않아 원소에게 처형당하였다.[1]
3. 장홍을 섬긴 사람들
4. 평가
당순지의 『양한해의』에서는 "친구를 구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공을 세우지도 못했으며, 군주에게 공헌하지도 못했다.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은 필부와 다를 바 없는 것인가? 그러나 장홍은 장초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고, 양심의 가책도 없이 군주와 친족의 긍지에 걸맞는 높은 명성을 얻었다. 원소는 조조를 위해 그를 죽인 비열한 자였고, 후세에 악명을 남겼다[1]."라고 평가했다.
5. 친족 관계
洪|장홍중국어의 아버지는 장민이다.
6. 기타
- 후한서 권58 열전 제48
- 삼국지 권7 위서7 여포장홍전 제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