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휴 이사금
1. 개요
벌휴 이사금은 신라의 제8대 이사금으로, 아달라 이사금 사후 국인의 추대로 즉위했다. 그는 재위 기간 동안 소문국을 정벌하고 백제와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으며, 1천여 명의 왜인이 기근을 피해 신라로 이주해 오는 사건이 있었다. 196년 4월에 사망했으며, 아들 골정은 조분 이사금과 첨해 이사금의 아버지이며, 이매는 내해 이사금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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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호 | 이사금 |
|---|---|
| 재위 기간 | 184년 - 196년 |
| 즉위 | 184년 |
| 이전 군주 | 아달라 이사금 |
| 다음 군주 | 내해 이사금 |
| 아버지 | 석구추 |
| 어머니 | 지진내례부인 |
| 사망일 | 196년 |
| 사망 장소 | 신라 |
| 휘 | 미상 |
| 시호 | 벌휴이사금 (伐休尼師今) |
| 별칭 | 벌휴 이사금 (伐休尼師今) 발휘 이사금 (發暉尼師今) |
| 부 | 석구추 |
|---|---|
| 모 | 지진내례부인 |
| 배우자 | 일지 갈문왕의 딸 |
| 혁거세 57 BCE – 4 CE | |
| 남해 4–24 | |
| 유리 24–57 | |
| 탈해 57–80 | |
| 파사 80–112 | |
| 지마 112–134 | |
| 일성 134–154 | |
| 아달라 154–184 | |
| 벌휴 184–196 | |
| 내해 196–230 | |
| 조분 230–247 | |
| 첨해 247–261 | |
| 미추 262–284 | |
| 유례 284–298 | |
| 기림 298–310 | |
| 흘해 310–356 | |
| 내물 356–402 | |
| 실성 402–417 | |
| 눌지 417–458 | |
| 자비 458–479 | |
| 소지 479–500 | |
| 지증 500–514 | |
| 법흥 514–540 | |
| 진흥 540–576 | |
| 진지 576–579 | |
| 진평 579–632 | |
| 선덕 632–647 | |
| 진덕 647–654 | |
| 무열 654–6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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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년 사망 -
황소 (후한)
황소는 후한 말 황건적 잔당의 수괴로, 원술과 손견에게 협력하다가 조조에게 야습을 시도했으나 패하여 참수되었으며,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에게 토벌당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
196년 사망 -
장제 (후한)
장제는 후한 말 동탁의 부하로 시작하여 이각, 곽사와 함께 장안을 점령하고 조정을 장악했으나, 헌제 옹립 실패 후 남양군 공격 중 전사했으며, 그의 조카 장수는 군벌로 성장하고 미망인은 절세가인이었다고 한다. -
월성 석씨 -
탈해 이사금
탈해 이사금은 알에서 태어났다는 설화가 전해지며, 남해 차차웅의 사위가 되어 대보를 지내다가 유리 이사금 사후 왕위에 올라 왜, 백제, 가야 등 주변 세력과 외교 및 군사적 갈등을 겪으며 영토 확장에 힘썼고, 김알지를 발견하여 신라 김씨 왕조의 기원을 마련했으며, 80년에 사망했다. -
월성 석씨 -
석우로
석우로는 신라의 이찬이자 대장군으로, 우루상팔국과의 전투와 감문국 토벌 등 군사적 활약을 펼쳤으나, 왜의 사신에게 실언하여 왜인에 의해 화형당해 신라와 왜의 관계를 악화시킨 인물이다. -
2세기 한국의 군주 -
기루왕
기루왕은 백제의 제5대 국왕으로, 다루왕 사후 즉위하여 신라를 공격했으나 패배하고 신라와 평화 조약을 맺었으며 말갈의 침입 시 신라의 지원을 받았고 자연재해가 빈번했다. -
2세기 한국의 군주 -
수로왕
김수로왕은 삼국시대 금관가야의 시조이자 초대 왕으로, 42년에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알에서 태어나 가락국을 건국하고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이하여 가야 문화 발전에 기여했으며, 그의 능은 경상남도 김해시에 위치하고 김해 김씨의 시조로 받들어지고 있다.
2. 치세
탈해 이사금의 아들인 각간 석구추의 아들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벌휴는 바람과 구름을 점쳐 홍수나 가뭄 및 그 해의 풍흉을 예지하며 사람의 정직함과 바르지 못함을 꿰뚫어 봐 성인으로 불렸다 하니, 이는 신라 사회에 2세기 말까지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남아있었음을 시사한다.
185년 소문국(召文國)을 정벌하고, 188년부터 190년까지 백제와 전쟁을 벌였다.
193년 기아에 시달린 왜인 1천여 명이 신라로 넘어왔다.
2.1. 즉위
《삼국사기》에는 벌휴 이사금이 선대 임금인 아달라가 후사 없이 죽자 백성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즉위는 신라의 건국자 박혁거세의 후손인 박씨 일족의 여러 세대에 걸친 지속적인 통치를 깼다.
벌휴는 탈해왕의 손자로 기록되어 있지만, 탈해왕 사후 104년 후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이 기록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그의 어머니는 김씨 가문 출신이었다.
184년 3월, 선대 아달라 이사금이 사망했을 때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국인(國人)의 추대로 즉위했다.
2.2.1. 소문국 정벌
185년 음력 2월 파진찬 구도와 일길찬 구수혜를 임명해 소문국(召文國)을 공격했다. 같은 해 신라는 오늘날의 의성군에 있는 소국인 소문국을 정복했다. 185년에 처음으로 군주(軍主)의 제도를 마련하고, 파진찬(4등관) 김구도와 일길찬(7등관) 김구수혜를 임명하여 소문국(경상북도의성군)을 토벌하게 했다.
2.2.2. 백제와의 전쟁
188년 음력 2월 백제가 모산성(母山城)을 공격하니, 파진찬 구도에게 명해 군사를 내 막게 하였다. 189년 음력 7월 구도가 백제군을 상대로 구양(狗壤)에서 싸워 이기고 5백 명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았다. 190년 음력 8월 백제가 다시 공격해 원산향(圓山鄕)을 습격하고 부곡성(缶谷城)을 포위했다. 구도가 5백 기병을 이끌고 공격했으나 패배하니, 벌휴 이사금은 구도의 벼슬을 깎고 설지(薛支)를 그 자리에 앉혔다.
188년 백제에게 모산성(충청북도진천군)을 공격받았으며, 구도가 이를 격퇴했다. 189년 구도가 구량(충청북도옥천군)에서 백제와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190년 8월, 백제는 원산향(경상북도예천군)에 쳐들어와 감곡성을 포위했다. 이때 구도는 기병 500명을 이끌고 반격하여 와산까지 출격했으나 백제군에게 패했다.
2.3. 기타
193년 6월 왜인이 기근에 시달려 먹을 것을 찾아 1천여 명이 신라로 유입되었다고 한다.
벌휴 이사금은 재위 13년 만인 196년 4월에 사망했다. 매장지는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