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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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흥 오씨는 중국 북위에서 신라로 귀화한 오첨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오첨은 500년 신라에 귀화하여 함양에서 2남 1녀를 두었으며, 521년 북위로 돌아갔다. 고려 시대에는 오현필이 거란족 토벌에 공을 세워 보성군에 봉해졌고, 조선 시대에는 오사염, 오천우 등이 활약했다. 주요 인물로는 오명룡, 오적 등이 있으며, 2015년 대한민국 인구는 4,132명이다.
| 씨족 이름 | 장흥 오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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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표기 | 長興 吳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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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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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 전라남도 장흥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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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시자 | (오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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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오첨(吳瞻, 472년~548년)은 472년 중국 남북조 시대 북위 셴양(咸陽)에서 태어났다. 499년(북위 선무제 원년), 오첨은 가족과 함께 북위를 떠나 이듬해 500년(신라 지증왕 원년) 신라에 귀화하였다. 506년(지증왕 6년), 오첨은 첫 부인을 병으로 잃고, 이듬해 507년(지증왕 7년) 지증왕의 명으로 경주 김씨 진골 후손 김종지(金宗之)의 딸과 재혼하였다. 오첨은 재혼 후 신라 함양(咸陽)에서 2남 1녀를 두었다.
521년(신라 법흥왕 7년), 오첨은 법흥왕의 허락을 받아 계배 부인과 장남, 셋째 딸과 함께 북위 셴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오첨의 차남 오응(吳膺)은 당시 병을 앓고 있어 신라에 남았고, 외척인 경주 김씨 진골 가문과 함께 함양에서 살게 되었다. 548년(동위 효정제 14년), 오첨은 중국 동위 셴양에서 사망하였다.
고려 시대, 오첨의 24세손 오현필(吳賢弼, 1세 중시조)은 1216년(고려 고종 3년) 거란족 토벌에 공을 세워 보성군(寶城君)에 봉해졌다. 오현필의 6세손 오사염(吳思焰, 2세 중시조)은 1394년(조선 태조 2년) 조선에서 녹사(錄事)를 지냈다. 오사염의 차남 오천우(吳天佑, 3세 중시조)는 1416년(조선 태종 16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지냈다.
3. 주요 인물
오명룡(吳明龍)은 1637년(조선 인조 14년) 별시 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오적(吳勣)은 1681년(조선 숙종 7년)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오상무(吳相武)는 대한민국의 가수 겸 작곡가이다.
4. 인구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장흥 오씨는 4,132명으로 집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