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신
1. 개요
정언신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66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을 시작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1571년 춘추관 기사관으로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했으며,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1583년 이탕개의 난을 이순신, 신립 등과 함께 진압했다. 이후 함경도관찰사,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1589년 우의정에 올랐으나 정여립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고, 갑산에서 사망했다. 사후 문경의 소양사에 제향되었으며, 드라마 《징비록》과 《불멸의 이순신》에서 관련 인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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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정씨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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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정씨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1527년 출생 -
펠리페 2세
펠리페 2세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아들로 태어나 스페인, 이탈리아, 아메리카 등 광대한 영토를 물려받아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고 가톨릭 신앙을 옹호하며 종교 개혁 세력을 탄압하다가 1598년에 사망했다. -
1527년 출생 -
야규 무네요시
야규 무네요시는 신카게류 검술의 대가이자 야규 가문의 중흥조로, 무투도리라는 독자적인 무술을 개발하고 야규가헌 등의 저술을 남겼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와의 인연으로 야규 가문이 재건되는 데 기여하며 일본 검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6세기 한국 사람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16세기 한국 사람 -
정여립
2. 생애
1566년(명종 2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이 되고 1571년(선조 4) 호조좌랑으로 춘추관기사관(記事官)이 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후 경기도관찰사를 역임, 1583년 이탕개가 쳐들어오자 우찬성으로서 도순찰사를 겸하여 이순신, 신립, 김시민, 이억기 등 쟁쟁한 무관들을 막하(幕下)로 거느리고 적을 격퇴하였다.
이어 함경도관찰사로 나가 북변을 방비하고 병조판서에 승진, 1589년 우의정이 되어 정여립의 모반 후 그 잔당에 대한 옥사를 다스리는 위관(委官)에 임명되었으나 서인 정철의 사주를 받은 대간(臺諫)으로부터 정여립과 3종(從)간이므로 공정한 처리를 기대할 수 없다는 탄핵을 받아 사직하였다.
그 후 계속 정여립의 일파로 모함을 받아 남해에 유배되었고, 사사(賜死)의 왕명까지 내렸으나 감형되었다. 갑산에 이배되어 그 곳에서 죽었고, 문경의 소양사(瀟陽祠)에 제향되었다.
2.1. 관직 생활과 이탕개의 난 진압 (1566년 ~ 1583년)
1566년(명종 2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이 되고 1571년(선조 4) 호조좌랑으로 춘추관기사관(記事官)이 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후 경기도관찰사를 역임, 1583년 이탕개가 쳐들어오자 우찬성으로서 도순찰사를 겸하여 이순신, 신립, 김시민, 이억기 등 쟁쟁한 무관들을 막하(幕下)로 거느리고 적을 격퇴하였다.
2.2. 함경도 관찰사와 병조판서 (1583년 ~ 1589년)
1566년(명종 2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이 되고 1571년(선조 4) 호조좌랑으로 춘추관기사관(記事官)이 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후 경기도관찰사를 역임, 1583년 이탕개(尼湯介)가 쳐들어오자 우찬성으로서 도순찰사를 겸하여 이순신(李舜臣)·신립·김시민·이억기 등 쟁쟁한 무관들을 막하(幕下)로 거느리고 적을 격퇴하였다.
이어 함경도관찰사로 나가 북변을 방비했다. 1589년 병조판서에 승진했다.
2.3. 정여립 모반 사건과 유배 (1589년 ~ 사망)
1589년 우의정이 되어 정여립의 모반 후 그 잔당에 대한 옥사를 다스리는 위관(委官)에 임명되었으나 서인 정철의 사주를 받은 대간(臺諫)으로부터 정여립과 3종(從)간이므로 공정한 처리를 기대할 수 없다는 탄핵을 받아 사직하였다. 그 후 계속 정여립의 일파로 모함을 받아 남해에 유배되었고, 사사(賜死)의 왕명까지 내렸으나 감형되었다. 갑산에 이배되어 그 곳에서 죽었고, 문경의 소양사(瀟陽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