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휘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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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유휘성황후는 원나라의 황후로, 원 명종 쿠살라의 비이자 원 혜종 토곤테무르의 생모이다. 투르크계 카를루크족 출신으로, 1317년 쿠살라와 혼인하여 토곤테무르를 낳았다. 1336년 혜종에 의해 정유휘성황후의 시호를 받았다. 사망 시기에 대해서는 1320년 설과 1329년 설이 존재하며, 아들 토곤테무르는 부다시리 카툰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주장했다.

정유휘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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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정유휘성황후는 투르크계 카를루크족 출신으로, 1211년 칭기즈 칸에게 투항한 군왕 아아시란의 후예였다. 아버지는 첩목질아(帖木迭兒)였다. 일설에는 고려계 혈통 혼혈이라는 전승이 있으나 불확실하다.

명종 쿠살라가 제위 계승에서 밀려나 차가타이 한국으로 망명했을 때, 카를루크족 추장 첩목질아의 딸인 마이라다이와 인연을 맺었다. 1317년 첩목질아는 딸 마이라다이를 쿠살라에게 주었고, 쿠살라는 귀국 후 그녀를 비(妃)로 삼았다. 원사에 의하면 연우 2년(1320년)에 마이라다이는 토곤테무르를 낳다가 사망했다고 하나, 토곤테무르의 주장에 따르면 1329년까지 생존했다고 한다.

1320년 사망설과 1329년 사망설이 대립되는 가운데, 아들 토곤테무르는 부다시리 카툰이 어머니를 불태워 죽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333년 아들 토곤테무르가 원 혜종으로 즉위한 후, 1336년 생모에게 정유휘성황후(貞裕徽聖皇后)라는 시호가 추존되었다.

2.1. 출신과 가계

정유휘성황후는 투르크계 카를루크족 출신이다. 1211년 칭기즈 칸에게 투항한 군왕 아아시란의 후예로, 조부는 아리술올(阿里術兀), 부친은 첩목질아(帖木迭兒)이다. 일설에는 고려계 혈통 혼혈이라는 전승이 있으나 불확실하다.

원 명종 쿠살라가 주왕 시절, 제위 계승에서 밀려나 차가타이 한국으로 망명하여 중앙아시아 카를루크에 머물 때, 카를루크족의 추장이었던 첩목질아의 딸이 바로 정유휘성황후였다. 1317년 첩목질아는 자신의 딸 마이라다이를 쿠살라에게 주었고, 쿠살라는 귀국 후 그녀를 비(妃)로 삼았다.

2.2. 명종과의 만남과 혼인

명종 쿠살라가 주왕(周王) 시절, 제위 계승에서 밀려나 차가타이 한국으로 망명하여 중앙아시아 카를루크에 머물고 있을 때, 카를루크족 추장 첩목질아의 딸 마이라다이와 인연이 있었다. 1317년 첩목질아는 딸 마이라다이를 쿠살라에게 주었고, 쿠살라는 귀국 후 그를 비(妃)로 삼았다. 원사에 의하면 연우 2년(1320년)에 마이라다이는 토곤테무르를 낳다가 사망했다. 그러나 토곤테무르에 의하면 그는 1329년까지 살아있었다 한다. 쿠살라 칸은 1329년 2월 오르콘 강을 건너 귀국, 같은 해 8월 대도 북쪽의 옹구차트에서 열린 연회에서 갑자기 사망한다.

2.3. 토곤테무르 출산과 사망

원 명종 쿠살라가 제위 계승에서 밀려나 차가타이 한국으로 망명하여 중앙아시아 카를루크에 머물고 있을 때, 카를루크족의 추장인 첩목질아의 딸 마이간다이와 인연을 맺었다. 1317년 첩목질아는 딸 마라다이를 쿠살라에게 주었고, 쿠살라는 귀국 후 그를 비(妃)로 삼았다. 원사에 의하면 연우 2년(1320년)에 그녀는 토곤테무르를 낳다가 사망했다. 그러나 토곤테무르에 의하면 그는 1329년까지 살아있었다 한다. 쿠살라 칸은 1329년 2월 오르콘 강을 건너 귀국, 1329년 8월 대도 북쪽의 옹구차트에서 열린 연회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1320년에 사망했다는 설과 1329년에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 그의 아들 토곤테무르는 부다시리 카툰이 그를 불에 태워 죽였다고 주장했다 한다.

2.4. 사후 추존

1333년 토곤테무르가 원 혜종으로 즉위했다. 지원 2년(1336년) 2월 19일, 원 혜종은 생모의 시호를 정유휘성황후(貞裕徽聖皇后)로 추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