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옹주 (선조)
1. 개요
정정옹주는 조선 선조의 딸로, 생모는 정빈 홍씨이다. 1595년 임진왜란 중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으며, 1604년 옹주에 책봉되었다. 1606년 유시행의 아들 유적과 혼인할 예정이었으나, 유시행의 사망과 선조의 승하로 혼례가 연기되어 1610년에 유적과 혼인하였다. 유적은 인목왕후 폐위에 반대하다가 25세에 사망했으며, 정정옹주는 인조 즉위 후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1666년 72세로 사망하였으며, 남편 유적의 묘에 합장되었다. 현재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에 있으며, 안산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
1666년 사망 -
프란스 할스
프란스 할스는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초상화가로서, 생동감 넘치는 인물 표현과 자유로운 붓놀림, 그리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개성적으로 묘사한 집단 초상화로 유명하며, 후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
1666년 사망 -
안 도트리슈
안 도트리슈는 스페인 펠리페 3세의 딸로, 프랑스 왕 루이 13세와 결혼하여 프랑스 궁정 생활을 시작했으며, 루이 14세를 낳고 남편 사망 후 섭정으로 프랑스를 통치하다가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안산시 출신 -
김연경
김연경은 2005년 프로 데뷔 후 V리그와 해외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다수의 우승을 차지하고, 2005년부터 2021년까지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의 주축으로 활동하며 한국 여자 배구의 국제적인 경쟁력 향상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방송, 광고, 에세이 출판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대한민국 여자 배구 선수이다. -
안산시 출신 -
김민우 (1979년)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이자 현 야구 코치인 김민우는 한양대학교 시절 국가대표 내야수로 활약 후 2002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 넥센 히어로즈 시절 주전으로 활동했으나 음주운전 사고 후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여 은퇴, 이후 KIA 타이거즈에서 코치를 역임했다.
2. 생애
정정옹주는 임진왜란 중이던 1595년(선조 28년) 황해도 해주 행궁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자질이 뛰어났고, 자라면서 단정하고 의젓하였다고 한다. 1604년(선조 37년) 10살 때 정식으로 옹주에 책봉되었다.
1606년(선조 39년), 진주 유씨 유시행의 아들 유적과 혼인이 결정되어 유적은 진안위에 책봉되었으나, 혼례 직전 유시행이 사망하여 혼례가 일시적으로 연기되었다. 1608년(선조 41년)에는 아버지 선조마저 승하하여 두 사람의 혼인은 1610년(광해군 2년)에야 이루어졌다. 정정옹주 부부는 유시행이 죽었을 때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 일대에 터를 잡아 장사를 지냈고, 이후 그 지역에서 대를 이어 살았다.
인목왕후 폐위에 반대한 유적은 1619년(광해군 11년) 2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당시 사람들은 폐모론에 동참하지 않은 유적을 훌륭하게 생각하였다. 유적이 죽자 정정옹주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였는데, 어머니 정빈이 곁에 머물며 극진히 보호하였다. 이후 인조가 즉위하여 유적과 정정옹주의 공을 치하하고 옹주를 극진히 대접하였다.
1666년(현종 7년) 정정옹주는 72세로 사망하였다. 현종은 정사를 중지하고 장례 비용을 지원하였으며, 남편 진안위 유적의 묘에 합장하도록 하였다. 정정옹주묘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으며, 진주 유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1991년 11월 2일 안산시의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유적과 정정옹주 사이에는 자식이 없어, 유적의 동생인 유영의 아들 유명전을 양자로 들였으나, 유명전 마저도 요절하여 후사가 끊어졌다.
2.1. 가계 및 초기 생애
정정옹주의 생모 정빈 홍씨는 남양 홍씨 홍여겸의 딸이다. 정빈 홍씨는 1580년(선조 13년) 종2품 숙의에 책봉되어 입궁하였고, 이후 정1품 빈에 올랐으며, 인조 연간에 사망하였다.
정정옹주는 경창군의 친누나이며, 광해군과 정원군(인조의 아버지) 등의 이복 동생이자 영창대군에게는 이복 누나가 된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5년(선조 28년) 황해도 해주의 행궁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자질이 뛰어났고, 자라면서 단정하고 의젓하였다고 한다. 1604년(선조 37년) 10살 때 정식으로 옹주에 책봉되어 정정옹주(貞正翁主)가 되었다. 1606년(선조 39년) 교리를 지낸 진주 유씨 유시행의 아들 유적과 혼인이 결정되어 유적은 진안위(晋安尉)에 책봉되었으나, 혼례 직전 유시행이 사망하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혼례가 연기되었다. 1608년(선조 41년)에는 부왕 선조마저 승하하여 두 사람의 혼인은 탈상 후인 1610년(광해군 2년)에야 이루어졌다. 정정옹주 부부는 유시행이 죽었을 때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 일대에 터를 잡아 장사를 지냈고, 이후 그 지역에서 대를 이어 살았다.
2.2. 혼인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5년(선조 28년) 황해도 해주의 행궁에서 태어났다. 정정옹주는 어릴 때부터 자질이 뛰어났으며, 자라면서 단정하고 의젓하였다고 한다. 1604년(선조 37년) 10살 때 정식으로 옹주에 책봉되어 정정옹주(貞正翁主)가 되었다. 2년 후인 1606년(선조 39년) 교리를 지낸 진주 유씨 유시행의 아들 유적과 혼인이 결정되어 유적은 진안위(晋安尉)에 책봉되었으나, 혼례 직전 유시행이 사망하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혼례가 연기되었다. 1608년(선조 41년) 부왕 선조마저 승하하는 바람에 두 사람의 혼인은 탈상 후인 1610년(광해군 2년)에야 이루어졌다. 두 사람은 유시행이 죽었을 때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 일대에 터를 잡아 장사를 지냈고, 이후 그 지역에서 대를 이어 살았다.
2.3. 남편의 죽음과 인조반정
정정옹주와 남편 유적은 인목왕후 폐위에 반대하여 유배될 뻔하기도 하였다. 이후 남편 유적은 1619년(광해군 11년) 음력 8월 17일 25세의 젊은 나이로 자식 없이 세상을 떠났다. 당시 사람들은 폐모론에 동참하지 않은 유적을 훌륭하게 생각하였다. 유적이 죽자 정정옹주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였는데, 어머니 정빈이 곁에 머물며 극진히 보호하였다. 이후 인조가 즉위하여 유적과 정정옹주의 공을 치하하고 옹주를 극진히 대접하였다.
2.4. 사망
정정옹주는 1666년(현종 7년) 향년 72세로 사망하였다. 옹주가 죽자 현종은 정사를 중지하고 장례 비용을 지원하였으며, 남편 진안위 유적의 묘에 합장하도록 하였다. 현재 옹주의 묘소인 정정옹주묘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으며, 진주 유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1991년 11월 2일 안산시의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한편 유적과 정정옹주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이에 유적의 동생인 유영의 아들 유명전을 양자로 들여 후사를 이었으나, 유명전 마저도 요절하여 후사가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