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 앤더슨
1. 개요
제시 앤더슨은 일리노이주 앨튼에서 성장했으며, 1992년 아내 바바라 앤더슨을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앤더슨은 아내를 살해한 후 흑인 남성 두 명을 범인으로 지목했으나, 증거 조작 혐의가 드러났다. 그는 이후 위스콘신주 컬럼비아 교도소에 수감 중 1994년 연쇄 살인범 제프리 다머와 함께 동료 수감자 크리스토퍼 스카버에게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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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제시 마이클 앤더슨 |
|---|---|
| 직업 | 조경 공사 |
| 출생 | 1957년 5월 3일 |
| 출생지 | 미국 일리노이주 앨튼 |
| 사망 | 1994년 11월 30일 (향년 37세) |
| 사망지 | 미국 위스콘신주 매디슨 |
| 사인 | 살인 (심각한 두부 손상) |
| 유죄 판결 | 아내 살해 |
|---|---|
| 피해자 | 바버라 앤더슨 |
| 범행 날짜 | 1992년 4월 21일 |
| 체포 날짜 | 1992년 4월 29일 |
| 장소 | 밀워키, 위스콘신주 |
| 흉기 | 칼 |
| 형량 | 가석방 가능성이 있는 종신형 (60년 후) |
| 범죄 상태 | 사망 |
| 배우자 | 데브라 앤 아이커트 (1981년 결혼, 1985년 이혼) 바버라 E. 린치 (1985년 결혼, 1992년 사망) |
|---|---|
| 자녀 | 3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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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콘신주의 범죄 -
제프리 다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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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살해자 -
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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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살해자 -
크리스 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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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죽은 사람 -
블라도 체르노젬스키
블라도 체르노젬스키는 불가리아 출신으로, IMRO에서 활동하며 우스타샤와 협력하여 유고슬라비아 국왕 알렉산다르 1세를 암살하고 체포 과정 중 사망했다. -
맞아 죽은 사람 -
스티브 비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반 아파르트헤이트 운동가이자 흑인 의식 운동의 중심 인물인 스티브 비코는 흑인 중심의 반 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이끌며 흑인의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 자각을 촉구했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정부에 의해 체포되어 고문으로 사망하여 국제적인 공분을 일으키고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2. 생애
앤더슨은 일리노이주 앨튼에서 자랐다. 그가 10대였을 때, 그의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그의 어머니는 재혼했다. 그는 알톤 고등학교를 다녔고 1975년에 졸업했다.
1980년, 앤더슨은 데브라 앤 아이커트와 결혼했으나 1984년에 이혼했다. 같은 해, 앤더슨은 엘름허스트 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위를 받았다. 1985년 3월 30일, 그는 일리노이 시카고에서 바바라 E. 린치와 결혼했다.
앤더슨 부부는 나중에 세 명의 어린 자녀들과 함께 위스콘신 시더버그에 살았다. 앤더슨은 라이온스 클럽의 재무 담당자였으며 디바인 워드 가톨릭 교회에서 자원 봉사 활동을 했다.
3. 아내 살해
1992년 4월 21일, 앤더슨 부부는 밀워키 북서쪽 노스리지 몰 외곽의 TGI Fridays에서 영화를 보고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제시는 아내 바바라의 얼굴과 머리를 다섯 차례 찔렀고, 자신의 가슴도 네 차례 찔렀다. 바바라는 이 공격으로 혼수상태에 빠졌고 이틀 뒤 사망했으며, 제시의 상처는 대부분 표면적인 것에 그쳤다.
앤더슨은 두 명의 흑인 남성이 자신과 아내를 공격했다고 주장하며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농구 모자를 증거로 제출했으나, 수사 결과 이는 거짓으로 밝혀졌다. 범행에 사용된 빨간 손잡이 낚시 칼과 그가 제출한 모자 모두 앤더슨이 사전에 구매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1992년 4월 29일 앤더슨은 아내 살해 혐의로 기소되었고, 같은 해 8월 13일 배심원단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60년 후 가석방 심사를 받을 수 있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3.1. 범행 동기
1992년 4월 21일, 제시 앤더슨과 그의 아내 바바라는 밀워키 북서부에 위치한 노스리지 몰 외곽의 TGI Fridays에서 영화를 보고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 후, 제시는 바바라의 얼굴과 머리를 다섯 차례 찔렀고, 자신의 가슴도 네 차례 찔렀다. 제시의 상처는 대부분 표면적인 것에 그쳤으나, 바바라는 혼수상태에 빠졌고 이틀 뒤 사망했다.
앤더슨은 두 명의 흑인 남성이 자신과 아내를 공격했다고 주장했으며, 범인 중 한 명의 머리에서 빼앗은 것이라며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농구 모자를 경찰에 제출했다. 그러나 사건 내용이 알려진 후, 한 대학생이 며칠 전 앤더슨에게 그 모자를 팔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또한, 군용 물품 판매점 직원은 바바라를 살해하는 데 사용된 것과 동일한 종류의 빨간 손잡이 낚시 칼을 몇 주 전 앤더슨에게 판매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해당 상점이 밀워키에서 그 종류의 칼을 판매하는 유일한 곳이었다고 밝혔다.
4월 29일 앤더슨은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고, 8월 13일 배심원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60년 후 가석방의 가능성이 있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3.2. 인종 갈등 조장 시도
1992년 4월 21일, 앤더슨 부부는 금요일 밀워키 북서부의 노스리지 몰 외곽에 있는 T.G.I. 프라이데이스에서 영화를 보고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 후, 제시는 아내 바바라의 얼굴과 머리를 다섯 번 찌르고 자신의 가슴도 네 번 찔렀다. 하지만 제시 자신의 상처는 대부분 표면적이었다. 바바라는 혼수 상태에 빠졌고, 이틀 뒤 상처로 인해 사망했다.
앤더슨은 두 명의 흑인 남성이 자신과 아내를 공격했다고 주장하며, 범행을 은폐하고 인종 갈등을 조장하려 시도했다. 그는 범인 중 한 명의 머리에서 빼앗았다고 주장하는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농구 모자를 경찰에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사건 내용이 알려지자, 한 대학생은 앤더슨이 며칠 전 자신에게서 그 모자를 구입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또한, 범행에 사용된 빨간 손잡이 낚시 칼 역시 몇 주 전 앤더슨이 군용 물품 판매점에서 구매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해당 상점이 밀워키에서 그 종류의 칼을 판매하는 유일한 곳이었다고 확인했다. 이는 앤더슨이 자신의 범죄를 흑인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결국 앤더슨의 인종 갈등 조장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4월 29일 그는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고, 8월 13일 배심원단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60년 후에야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4. 죽음
1994년 11월 28일 오전, 컬럼비아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앤더슨은 연쇄살인범 제프리 다머, 동료 수감자 크리스토퍼 스카버와 함께 교도소 체육관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당시 세 사람은 감시 없이 방치된 상태였다. 청소 작업 중 다머 및 앤더슨과 대립한 스카버는 웨이트 룸에서 쇠막대기를 가져와 다머를 따라 라커룸으로 가서 그의 머리를 가격했다. 스카버는 곧이어 앤더슨을 찾아 그 역시 쇠막대기로 심하게 폭행했다. 다머는 공격받은 지 약 한 시간 만에 사망 선고를 받았고, 앤더슨은 메디슨에 있는 위스콘신 대학교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사건 발생 이틀 후 의사들이 생명 유지 장치를 제거하면서 결국 사망했다.
4.1. 크리스토퍼 스카버의 범행 동기
스카버는 제프리 다머가 흑인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를 상세히 다룬 신문 기사에 "혐오감을 느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또한 그는 1992년 자신의 재판에서 정신 이상을 주장하며, 자신의 형량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정신과 의사의 질문에 "백인이 하는 일은 정당한 것이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보도는 스카버가 1994년 11월 28일 컬럼비아 교정기관에서 다머와 앤더슨을 쇠막대기로 공격하여 살해한 잠재적 동기로 해석되기도 했다. 다머는 공격 약 1시간 후, 앤더슨은 이틀 후 위스콘신 대학교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러나 스카버 본인은 2015년 한 블로그 게시물을 통해 이러한 보도된 진술 중 일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다른 설명을 제시하기도 했다.
5. 사건의 영향
* Davis, Donald A. https://books.google.com/books?id=hSXCEA7LpjsC Jeffrey Dahmer 이야기 : 미국의 악몽
* Mayo, Mike. https://books.google.com/books?id=L1uj6s-d44UC&pg=PA96 미국 살인 : 범죄자, 범죄 및 언론. 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