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요시다 내각
1. 개요
제3차 요시다 내각은 요시다 시게루를 내각총리대신으로 하여 1949년 2월 16일부터 1952년 10월 30일까지 재임했다. 초기 내각, 1차, 2차, 3차, 4차 개편 내각으로 구성되었으며, 잦은 개편을 통해 각료의 변동이 있었다. 주요 정책으로는 6.25 전쟁과 경제 특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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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각 명칭 | 제3차 요시다 내각 |
|---|---|
| 일본어 명칭 | 第3次吉田内閣 (だいさんじ よしだないかく) |
| 대수 | 49대 |
| 총리 | 요시다 시게루 |
| 전직 | 중의원 의원, 민주자유당 총재 |
| 성립일 | 1949년 2월 16일 |
| 종료일 | 1950년 6월 28일 |
| 여당 | (민주자유당, 민주당 연립파 →) 자유당, (녹풍회) |
| 선거 | 제2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 해산 | 없음 |
| 명단 | 내각 관방 홈페이지 |
| 국가 원수 직함 | 천황 |
|---|---|
| 부총리 | 하야시 조지 (1951년 3월 13일까지) |
| 정부 수반 | 요시다 시게루 |
| 정부 수반 직함 | 내각총리대신 |
| 성립일 | 1949년 2월 16일 |
| 해산일 | 1950년 6월 28일 |
| 국가 원수 | 쇼와 |
| 관할 구역 | 일본 |
| 내각 번호 | 49대 |
| 의회 임기 | 제5대-7대 국회 |
| 선거 | 1949년 총선거 1950년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
| 야당 | 민주당 (야당 파벌) 일본 사회당 국민협동당 노농당 |
| 의회 현황 | 중의원: 다수당 참의원: 연립 다수당 |
| 정당 | (연합군 점령) 민주자유당 (1950년 3월 1일까지) 민주당 (연립 파벌) (1950년 3월 1일까지) 자유당 (1950년 3월 1일부터) 녹풍회 |
| 이전 내각 | 제2차 요시다 내각 |
| 다음 내각 | 제3차 요시다 내각 (제1차 개조) |
-
1950년 일본 -
경찰예비대
경찰예비대는 한국 전쟁으로 인한 주일 미군 철수 후 일본의 방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1950년 창설된 준군사 조직으로,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했으나 사실상 군대 역할을 수행하며 이후 국가안전대를 거쳐 육상자위대의 전신이 되었다. -
1950년 일본 -
제3차 요시다 내각 (제1차 개조)
요시다 시게루가 일본국 헌법 제68조에 따라 국무대신 임면권을 행사하여 단행한 최초의 내각 개조인 제3차 요시다 내각 (제1차 개조)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체결 준비와 한국 전쟁 발발에 따른 국내외 정세 변화에 대응하고 민주자유당 내 파벌 갈등 해소 및 당내 융화를 도모하기 위해 단행되었으며,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체결 추진, 유엔군 군수 기지 역할 수행, 일본 경제 재건 발판 마련 등의 평가를 받는다. -
1949년 일본 -
제2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949년 요시다 시게루 내각 불신임안 가결 후 실시된 제2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는 민주자유당의 압승과 일본사회당의 대패, 그리고 주요 정치 인물들의 첫 당선이 특징인 일본 헌법 제정 이후 첫 총선거였다. -
1949년 일본 -
제2차 요시다 내각
제2차 요시다 내각은 1948년 10월 15일부터 1949년 2월 16일까지 요시다 시게루가 내각총리대신을 맡아 야마자키 수상 공작 사건 이후 민주자유당 단독 정권을 발족했다. -
요시다 시게루 -
바카야로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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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시게루 -
아소 다로
아소 다로는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 아소 시멘트 사장을 역임하고 1979년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되어 여러 요직을 거쳐 제92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으며 현재 자유민주당 부총재 및 최고 고문이다.
3. 내각 구성
### 초기 내각 (1949년 2월 16일 ~ 1949년 6월 1일)
제3차 요시다 내각의 초기 내각(1949년 2월 16일 ~ 1949년 6월 1일)은 요시다 시게루를 내각총리대신으로 하여 1949년 2월 16일에 발족하였다. 요시다 시게루는 외무대신을 겸임하였다. 이케다 하야토는 대장대신으로 임명되었고, 우에다 슌키치는 법무총재로 임명되었다. 다카세 소타로는 문부대신으로, 하야시 조지는 후생대신 겸 부총리로 임명되었다. 모리 고타로는 농림대신으로 임명되었다.
상공대신에는 이나가키 헤이타로가 임명되었으나, 1949년 5월 25일 상공성이 폐지되고 통상산업대신이 신설되면서 이나가키 헤이타로는 통상산업대신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야 신조는 운수대신으로 임명되었다. 체신대신에는 오자와 사에키가 임명되었으나, 1949년 6월 1일 체신성이 폐지되었다. 스즈키 마사후미는 노동대신으로, 마스타니 슈지는 건설대신으로 임명되었다.
경제안정본부 총무장관, 중앙경제조사청 장관, 물가청 장관에는 아오키 다카요시가 임명되었다. 행정관리청 장관에는 혼다 이치로가, 배상청 장관에는 히가이 센조가 임명되었다가 1949년 3월 11일에 야마구치 기쿠이치로로 교체되었다. 지방재정위원회 위원장에는 기무라 고자에몬이 임명되었으나 1949년 6월 1일 지방재정위원회가 폐지되었다. 국무대신에는 야마구치 기쿠이치로가 임명되었다가 1949년 3월 11일에 히가이 센조로 교체되었다. 내각관방장관에는 마스다 가네시치가, 내각관방차장에는 고리 유이치가 임명되었다.
1949년 2월 19일에는 중의원, 2월 23일에는 참의원에서 각 성의 정무차관이 임명되었다.
### 1차 개편 내각 (1949년 6월 1일 ~ 1950년 6월 28일)
1949년 6월 1일에 단행된 제3차 요시다 내각의 1차 개편 내각이다.
* 체신성을 분리하여 우정대신에 오자와 사에키, 전기통신대신에 오자와 사에키(겸임)가 임명되었다.
* 지방자치청 장관에 기무라 고자에몬이 임명되었다.
* 내각관방부장관에 고리 유이치가 임명되었다.
### 2차 개편 내각 (1950년 6월 28일 ~ 1951년 7월 4일)
1950년 6월 28일, 제3차 요시다 내각은 대규모 개각을 단행하여 2차 개편 내각을 출범시켰다. 주요 각료는 다음과 같다.
| 직책 | 이름 |
|---|---|
| 내각총리대신 | 요시다 시게루 |
| 부총리 겸 국무대신 | 하야시 조지 |
| 법무대신 | 오하시 다케오 |
| 외무대신 | 요시다 시게루 |
| 대장대신 | 이케다 하야토 |
| 문부대신 | 아마노 데이유 |
| 후생대신 | 구로카와 다케오 |
| 농림대신 | 히로카와 고젠 |
| 통상산업대신 | 요코오 시게미 |
| 운수대신 | 야마자키 다케시 |
| 우정대신 겸 전기통신대신 | 다무라 분키치 |
| 노동대신 | 호리 시게루 |
| 건설대신 | 마스다 가네시치 |
| 경제안정본부 총재 겸 물가청 장관 겸 중앙경제연구소장 | 스토 히데오 |
| 행정관리청 장관 | 오카노 기요히데 (~ 1950년 7월 12일) |
| 히로카와 고젠 (1950년 7월 12일 ~) | |
| 지방자치청 장관 | 오카노 기요히데 |
| 배상청 장관 | 마스다 가네시치 (~ 1951년 6월 7일) |
| 스토 히데오 (1951년 6월 7일 ~) | |
|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 | 마스다 가네시치 (~ 1951년 6월 7일) |
| 스토 히데오 (1951년 6월 7일 ~) | |
| 내각관방장관 | 오카자키 가쓰오 |
| 내각관방부장관 | 간노 요시마루 |
| 이노우에 세이이치 | |
| 겐노키 도시히로 |
### 3차 개편 내각 (1951년 7월 4일 ~ 1951년 12월 26일)
1951년 7월 4일에 단행된 제3차 요시다 내각의 제2차 개각에서는 일부 각료가 교체되었다.
* 후생대신 겸 행정관리청 장관: 하시모토 료고
* 농림대신: 네모토 리유타로
* 통상산업대신: 다카하시 리유타로
* 체신대신 겸 전기통신대신: 사토 에이사쿠
* 건설대신 겸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 노다 우이치
* 국무대신: 마스타니 슈지
### 4차 개편 내각 (1951년 12월 26일 ~ 1952년 10월 30일)
제3차 요시다 내각의 제4차 개편 내각은 1951년 12월 26일에 발족하여 1952년 10월 30일까지 존속하였다. 이 기간 동안 대규모 각료 교체가 이루어졌으며, 주요 변화는 다음과 같다.
* 외무대신: 오카자키 가쓰오
* 문부대신: 오카노 기요히데
* 후생대신: 요시타케 에이치
* 농림대신: 히로카와 고젠
* 노동대신: 요시타케 에이치 (겸임)
* 내각관방장관: 호리 시게루 (유임)
3.1. 초기 내각 (1949년 2월 16일 ~ 1949년 6월 1일)
제3차 요시다 내각의 초기 내각(1949년 2월 16일 ~ 1949년 6월 1일)은 요시다 시게루를 내각총리대신으로 하여 1949년 2월 16일에 발족하였다. 요시다 시게루는 외무대신을 겸임하였다. 이케다 하야토는 대장대신으로 임명되었고, 우에다 슌키치는 법무총재로 임명되었다. 다카세 소타로는 문부대신으로, 하야시 조지는 후생대신 겸 부총리로 임명되었다. 모리 고타로는 농림대신으로 임명되었다.
상공대신에는 이나가키 헤이타로가 임명되었으나, 1949년 5월 25일 상공성이 폐지되고 통상산업대신이 신설되면서 이나가키 헤이타로는 통상산업대신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야 신조는 운수대신으로 임명되었다. 체신대신에는 오자와 사에키가 임명되었으나, 1949년 6월 1일 체신성이 폐지되었다. 스즈키 마사후미는 노동대신으로, 마스타니 슈지는 건설대신으로 임명되었다.
경제안정본부 총무장관, 중앙경제조사청 장관, 물가청 장관에는 아오키 다카요시가 임명되었다. 행정관리청 장관에는 혼다 이치로가, 배상청 장관에는 히가이 센조가 임명되었다가 1949년 3월 11일에 야마구치 기쿠이치로로 교체되었다. 지방재정위원회 위원장에는 기무라 고자에몬이 임명되었으나 1949년 6월 1일 지방재정위원회가 폐지되었다. 국무대신에는 야마구치 기쿠이치로가 임명되었다가 1949년 3월 11일에 히가이 센조로 교체되었다. 내각관방장관에는 마스다 가네시치가, 내각관방차장에는 고리 유이치가 임명되었다.
1949년 2월 19일에는 중의원, 2월 23일에는 참의원에서 각 성의 정무차관이 임명되었다.
3.2. 1차 개편 내각 (1949년 6월 1일 ~ 1950년 6월 28일)
1949년 6월 1일에 단행된 제3차 요시다 내각의 1차 개편 내각이다. 주요 변경 사항은 다음과 같다.
* 체신성을 분리하여 우정대신에 오자와 사에키, 전기통신대신에 오자와 사에키(겸임)가 임명되었다.
* 통상산업대신은 이나가키 헤이타로에서 이케다 하야토(겸임, 1950년 2월 17일~), 다카세 소타로(겸임, 1950년 4월 11일~) 순으로 교체되었다.
* 지방자치청 장관은 기무라 고자에몬(~1950년 1월 24일)에서 혼다 이치로(겸임)로 교체되었다.
*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이 1950년 6월 1일 신설되어 마스다 가네시치가 임명되었다.
* 내각관방부장관은 고리 유이치(~1950년 2월 16일), 간노 요시마루(1949년 11월 1일~), 이노우에 세이이치(1950년 6월 20일~)가 임명되었다.
| 직명 | 대 | 성명 | 출신 등 | 특명 사항 등 | 비고 | |
|---|---|---|---|---|---|---|
| 우정대신 | (우정성 미설치) | 1949년 6월 1일 설치 | ||||
| 1 | 오자와 사에키 | 중의원 (민주자유당→) 자유당 | 전기통신대신 겸임 | 전임 1949년 6월 1일 임명 | ||
| 전기통신대신 | (전기통신성 미설치) | 1949년 6월 1일 설치 | ||||
| 1 | 오자와 사에키 | 중의원 (민주자유당→) 자유당 | 우정대신 겸임 | 전임 1949년 6월 1일 임명 | ||
| 통상산업대신 | 1 | 이나가키 헤이타로 | 참의원 민주당 연립파 | 유임 1950년 2월 17일 면 | ||
| 2 | 이케다 하야토 | 중의원 (민주자유당→) 자유당 | 대장대신 겸임 | 1950년 2월 17일 겸 1950년 4월 11일 면 | ||
| 3 | 타카세 소타로 | 참의원 녹풍회 | 문부대신 겸임 | 1950년 4월 11일 겸 | ||
| 국무대신 지방자치청 장관 | (지방자치청 미설치) | 1949년 6월 1일 설치 | ||||
| 1 | 키무라 코자에몬 | 중의원 민주당 연립파 | 전임 1949년 6월 1일 임명 1950년 1월 24일 면 | |||
| 2 | 혼다 이치로 | 중의원 (민주자유당→) 자유당 | 국무대신 겸임 | 1950년 1월 24일 겸 | ||
| 국무대신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 | (홋카이도 개발청 미설치) | 1950년 6월 1일 설치 | ||||
| 1 | 마스다 카네시치 | 중의원 (민주자유당→) 자유당 | 건설대신 겸임 | 1950년 6월 1일 임명 | ||
| 내각관방부장관 | (내각관방부장관 미설치) | 1949년 6월 1일 설치 | ||||
| - | 고리 유이치 | (구 내무성) | 1949년 6월 1일 임 1950년 2월 16일 면 | |||
| - | 간노 요시마루 | 운수성 | 1949년 11월 1일 임 | |||
| - | 이노우에 세이이치 | (구 내무성) | 1950년 6월 20일 임 | |||
3.3. 2차 개편 내각 (1950년 6월 28일 ~ 1951년 7월 4일)
1950년 6월 28일, 제3차 요시다 내각은 대규모 개각을 단행하여 2차 개편 내각을 출범시켰다. 주요 각료로는 법무대신에 오하시 다케오, 문부대신에 아마노 데이유, 후생대신에 구로카와 다케오, 농림대신에 히로카와 고젠, 통상산업대신에 요코오 시게미, 운수대신에 야마자키 다케시, 우정대신 겸 전기통신대신에 다무라 분키치, 노동대신에 호리 시게루가 임명되었다.
건설대신에는 마스다 가네시치가 임명되었으나 1951년 6월 7일 스토 히데오로 교체되었다. 경제안정본부 총재 겸 물가청 장관 겸 중앙경제연구소장에는 스토 히데오가, 행정관리청 장관에는 오카노 기요히데가 임명되었으나, 오카노 기요히데는 1950년 7월 12일 히로카와 고젠으로 교체되었다. 오카노 기요히데는 지방자치청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배상청 장관과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은 마스다 가네시치가 겸임하였으나, 1951년 6월 7일 두 자리 모두 스토 히데오에게 넘어갔다. 내각관방장관은 오카자키 가쓰오였다.
| 직책 | 이름 | 임기 |
|---|---|---|
| 내각총리대신 | 요시다 시게루 | 1949년 2월 16일 ~ 1952년 10월 30일 |
| 부총리 겸 국무대신 | 하야시 조지 | 1949년 2월 16일 ~ 1951년 3월 13일 |
| 법무대신 | 오하시 다케오 | 1950년 6월 28일 ~ 1951년 12월 26일 |
| 외무대신 | 요시다 시게루 | 1949년 2월 16일 ~ 1952년 4월 1일 |
| 대장대신 | 이케다 하야토 | 1949년 2월 16일 ~ 1952년 10월 30일 |
| 문부대신 | 아마노 데이유 | 1950년 6월 28일 ~ 1952년 8월 12일 |
| 후생대신 | 구로카와 다케오 | 1950년 6월 28일 ~ 1951년 7월 4일 |
| 농림대신 | 히로카와 고젠 | 1950년 6월 28일 ~ 1951년 7월 4일 |
| 통상산업대신 | 요코오 시게미 | 1950년 6월 28일 ~ 1951년 7월 4일 |
| 운수대신 | 야마자키 다케시 | 1950년 6월 28일 ~ 1951년 12월 26일 |
| 우정대신 겸 전기통신대신 | 다무라 분키치 | 1950년 6월 28일 ~ 1951년 7월 4일 |
| 노동대신 | 호리 시게루 | 1950년 6월 28일 ~ 1951년 12월 26일 |
| 건설대신 | 마스다 가네시치 | 1950년 5월 6일 ~ 1951년 6월 7일 |
| 스토 히데오 | 1951년 6월 7일 ~ 1951년 7월 4일 | |
| 경제안정본부 총재 겸 물가청 장관 겸 중앙경제연구소장 | 스토 히데오 | 1950년 6월 28일 ~ 1952년 8월 1일 |
| 행정관리청 장관 | 오카노 기요히데 | 1950년 6월 28일 ~ 1950년 7월 12일 |
| 히로카와 고젠 | 1950년 7월 12일 ~ 1951년 7월 4일 | |
| 지방자치청 장관 | 오카노 기요히데 | 1950년 6월 28일 ~ 1952년 8월 1일 |
| 배상청 장관 | 마스다 가네시치 | 1950년 6월 28일 ~ 1951년 6월 7일 |
| 스토 히데오 | 1951년 6월 7일 ~ 1951년 12월 26일 | |
|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 | 마스다 가네시치 | 1949년 6월 1일 ~ 1951년 6월 7일 |
| 스토 히데오 | 1951년 6월 7일 ~ 1951년 7월 4일 | |
| 내각관방장관 | 오카자키 가쓰오 | 1950년 5월 6일 ~ 1951년 12월 26일 |
| 내각관방부장관 | 간노 요시마루 | 1949년 11월 1일 ~ 1952년 8월 13일 |
| 이노우에 세이이치 | 1950년 6월 20일 ~ 1951년 5월 25일 | |
| 겐노키 도시히로 | 1951년 5월 25일 ~ 1952년 10월 30일 |
3.4. 3차 개편 내각 (1951년 7월 4일 ~ 1951년 12월 26일)
1951년 7월 4일에 단행된 제3차 요시다 내각의 제2차 개각에서는 일부 각료가 교체되었다. 하시모토 료고가 후생대신 겸 행정관리청 장관에, 네모토 리유타로가 농림대신, 다카하시 리유타로가 통상산업대신, 사토 에이사쿠가 체신대신 겸 전기통신대신, 노다 우이치가 건설대신 겸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에 임명되었다. 또한, 마스타니 슈지가 국무대신으로 입각하였다.
3.5. 4차 개편 내각 (1951년 12월 26일 ~ 1952년 10월 30일)
제3차 요시다 내각의 제4차 개편 내각은 1951년 12월 26일에 발족하여 1952년 10월 30일까지 존속하였다. 이 기간 동안 대규모 각료 교체가 이루어졌으며, 주요 변화는 다음과 같다.
1952년 8월 1일, 법무총재 기무라 도쿠타로가 법무대신으로 변경되었고, 경제심의청이 신설되어 스토 히데오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가 야마자키 다케시로 교체되었다. 또한, 같은 날 요시다 시게루가 겸임하던 국가안전청 장관직이 신설되었다.
행정관리청 장관은 기무라 도쿠타로에서 노다 우이치로 교체되었고, 자치의원 장관에는 오카노 기요히데가 임명되었다. 오하시 다케오, 야마자키 다케시는 국무대신직을 사임하였고, 오카자키 가쓰오는 외무대신으로 임명되기전 잠시 국무대신을 역임후 사임하였다. 야마가타 가쓰미, 오노기 히데지로, 나카야마 도시히코가 새로 국무대신에 임명되었다.
그 외에도, 외무대신은 요시다 시게루에서 오카자키 가쓰오로, 문부대신은 아마노 데이유에서 오카노 기요히데로, 후생대신은 요시타케 에이치로, 농림대신은 히로카와 고젠으로 교체되었다. 노동대신은 요시타케 에이치가 겸임하였다. 내각관방장관은 호리 시게루가 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