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가
1. 개요
조가는 상나라 말기의 수도였으며, 은허보다 약간 남쪽에 위치했다.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망시킨 후 '삼감의 난' 이후 위나라에 속하게 되었고, 춘추전국 시대에는 여러 국가의 분쟁 대상이 되었다. 이후 진나라에 의해 함락되었고, 삼국 시대, 원나라, 명나라를 거치며 행정 구역이 변경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이후 치 현의 중심지였으나 2010년 도로 건설로 인해 유적이 사라졌다.
| 위치 | 중국 허난성 북부, 황하 연안 |
|---|---|
| 중요성 | 상나라의 수도 |
| 현재 | 허난성 허비시 치현의 한 지역 |
| 면적 | 약 50km 반경 |
| 건설 시기 | 기원전 1300년경 |
|---|---|
| 건설 이유 | 반경이 은에서 수도를 옮김 |
| 역할 | 상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 |
| 중요 사건 | 주나라의 공격으로 함락 무경의 반란 진압 후 폐허화 |
| 주요 인물 | 반경 주왕 무경 |
| 위치적 특징 | 황하 연안의 비옥한 평야 지대 |
|---|---|
| 주변 환경 | 농경에 유리한 환경 |
| 발굴 | 궁전, 사당, 무덤 등 다양한 유적 발굴 |
|---|---|
| 유물 | 갑골문, 청동기, 도자기 등 다양한 유물 출토 |
| 가치 | 상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 |
| 관련 문화 | 상나라의 문화 |
|---|---|
| 관련 유적 | 은허 |
| 현재 상태 | 허비시 치현의 한 지역으로 남아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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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 (춘추 전국 시대) -
위 (전국)
위나라는 기원전 453년 진나라에서 분열되어 성립된 전국시대 국가로, 위 문후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으나 이후 쇠퇴하여 기원전 225년 진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
위나라 (춘추 전국 시대) -
위 (춘추 전국)
주나라 초기에 건국된 위나라는 강숙을 시조로, 춘추시대 무공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으나 내분과 북적의 침입으로 쇠퇴하여 전국시대에 존속하다 기원전 209년 진나라에 의해 멸망한 제후국이다. -
상나라 -
기자조선
기자조선은 기원전 12세기경 기자가 은나라 유민을 이끌고 세웠다고 전해지는 고조선의 한 갈래로, 역사적 실존 여부에 대한 논쟁이 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민족의 시조로 숭상받았다. -
상나라 -
목야 전투
목야 전투는 기원전 11세기경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격파하고 주나라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전투로, 은나라의 폭정과 내부 혼란을 배경으로 목야에서 주나라가 승리하여 은나라가 멸망하고 주나라가 건국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나 정확한 연도와 규모는 논란이 있다. -
중국의 옛 수도 -
대도
대도는 1267년 쿠빌라이 칸이 건설하여 원나라의 수도로 삼은 도시이며, 몽골어로는 칸발릭,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에는 캄발룩으로 기록되었고, 명나라가 들어서면서 베이징으로 개칭되었다. -
중국의 옛 수도 -
흥경
흥경은 여진족 추장 시오깡가의 거주지였던 헤투알라가 개명된 이름으로,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하며 수도로 삼았으나 요양으로 천도 후 묘소가 이전되었고, 현재는 용릉이 위치한 수자강 남쪽 기슭의 이중 성벽 구조를 갖춘 지역이다.
2. 역사
조가는 상나라의 마지막 수도였으며, 은허보다 약간 아래쪽에 위치했다.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망시킨 후, 이 지역은 위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황허 강과 기수(淇水) 사이에 위치하여 번창하였기 때문에, 춘추 전국 시대에는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북적, 제나라, 진나라, 위나라가 차례로 다스렸으며, 진나라에게 함락되었다. 삼국 시대에는 사례교위부 조가군(朝歌郡)에 속하였으며, 원나라 당시에는 기주(淇州)에 속하였고, 명나라 이후에는 기현(淇縣)에 속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이후에는 치 현의 중심지가 되었으나, 2010년 도로 건설로 인해 유적이 사라졌다.
2.1. 상나라 시기
상나라의 말기 수도였으며, 위치상 은허보다 약간 아래에 있었다.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망시킨 이후 '삼감의 난'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고 이 지역에 강숙을 봉하면서 위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황허 강과 기수(淇水) 중간에 위치하여 번창하였기 때문에, 춘추 전국 시대에는 분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2.2. 주나라 및 춘추전국시대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망시킨 이후 '삼감의 난'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고 이 지역에 강숙을 봉하면서 위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황허 강과 기수(淇水) 중간에 위치하여 번창하였기 때문에, 춘추 전국 시대에는 분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 뒤 북적, 제나라, 진나라, 위나라가 차례로 다스렸다.
2.3. 진나라 이후
진나라에 함락된 이후, 삼국 시대에는 사례교위부 조가군(朝歌郡)에 속하였으며, 원나라 당시에는 기주(淇州)에 속하였고, 명나라 이후에는 기현(淇縣)에 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