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현 (법조인)
1. 개요
조대현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부여 출신으로 용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로 임용되었다. 판사 재직 중 판결문 간결하게 쓰기 운동을 주도했으며, 호적제도 개선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2004년 변호사로 개업한 후, 2005년 열린우리당 추천으로 헌법재판관에 임명되어 2011년까지 재직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퇴임 후에는 법무법인 화우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 이름 | 조대현 |
|---|---|
| 본명 | (알 수 없음) |
| 출생일 | 1951년 2월 11일 |
| 출생지 | 충청남도 부여 |
| 사망일 | (알 수 없음) |
| 국가 | (알 수 없음) |
| 근무 기간 | (알 수 없음) |
| 현직 | (알 수 없음) |
| 전직 | 헌법재판소 재판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 거주 | (알 수 없음) |
| 거주 기간 | (알 수 없음) |
| 입사일 | (알 수 없음) |
| 입사명 | (알 수 없음) |
| 퇴사일 | (알 수 없음) |
| 퇴사명 | (알 수 없음) |
| 소속 | (알 수 없음) |
| 별명 | (알 수 없음) |
| 펜클럽 | (알 수 없음) |
| 수상 | (알 수 없음) |
| 학력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 |
|---|
| 경력 | (알 수 없음) |
|---|---|
| 배우자 | (알 수 없음) |
| 종교 | (알 수 없음) |
| 가족 | (알 수 없음) |
| 등단 | (알 수 없음) |
| 사이트 | (알 수 없음) |
-
창녕 조씨 -
조대환
조대환은 강력 및 특수 분야 수사를 담당한 검사 출신 법조인으로, 변호사 개업 후 삼성 비자금 의혹 특별검사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하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및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 추천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었다. -
창녕 조씨 -
조만식
조만식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 한국의 민족주의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로, 간디의 비폭력 저항 사상에 영향을 받아 실력 양성 운동에 참여하고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주도했으나, 한국 전쟁 중 처형되었다. -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
김희옥
김희옥은 검사 출신 법조인으로서 법무부 차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역임하고 동국대학교 총장,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 KBL 프로농구연맹 총재, 한국프로스포츠협회 회장 등을 지낸 대한민국의 교육자, 스포츠인, 정치인이다. -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
조한창
조한창은 현재 정보 부족으로 인해 상세한 이력, 활동, 업적 등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
살아있는 사람 -
릴 테르셀리우스
릴 테르셀리우스는 위키백과 문서에서 관련 문서와 추가 자료를 제시하는 데 사용되는 구성 요소이다. -
살아있는 사람 -
마그달레나 툴
폴란드의 가수 마그달레나 툴은 2007년 데뷔 앨범 발매 후 2011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폴란드 대표로 참가했으며, 이후에도 앨범 발매와 유로비전 관련 활동, 방송 출연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2. 생애
서울대학교 졸업 후 단국대학교 대학원 재학 중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가 되었다. 배우자는 언주중학교 교장 서외순이며, 슬하에 쌍둥이 아들을 두고 있다. 두 아들 모두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판사 재직 당시 '판결문 간결하게 쓰기' 운동을 주도하였다. 2002년 10월, '21세기 가족의 전망과 호적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토론회'에서 "호적제의 목적은 국민의 신분기록을 장부에 공시하는 것인데, 호주와 가족 간의 관계를 나타낼 필요가 없다면 가족 단위보다는 개인별로 편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개인별 신분등록제도를 제안했다.
2004년 변호사로 개업하였고, 2005년 열린우리당 추천으로 헌법재판관에 임명되었다.
2.1. 출생과 성장
1951년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태어났다. 용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였고, 단국대학교 대학원 재학 중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가 되었다.
2.3. 법조인 생활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1980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1988년 서울고등법원 판사, 1991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장, 1994년 사법연수원 교수를 역임했다. 1999년에는 대법원장 비서실장과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를, 2000년에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했다. 2004년 법무법인 화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5년 열린우리당 추천으로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임명되어 2011년까지 재직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퇴임 후에는 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판사로 재직할 당시 '판결문 간결하게 쓰기' 운동을 주도하였다. 2002년 10월, '21세기 가족의 전망과 호적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토론회'에서 "호적제의 목적은 국민의 신분기록을 장부에 공시하는 것인데, 호주와 가족 간의 관계를 나타낼 필요가 없다면 가족 단위보다는 개인별로 편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개인별 신분등록제도를 제안했다.
2.4. 가족 관계
배우자는 서울 언주중학교 교장 서외순이며, 슬하에 쌍둥이 아들을 두고 있다. 두 아들 모두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