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 체임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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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바 체임벌린은 1985년 9월 23일 저스틴 루이스 히스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전 야구 선수이다. 그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에서 투수로 활동했으며, 뉴욕 양키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에서 뛰었다. 2006년 MLB 드래프트에서 뉴욕 양키스에 지명되었고, 2009년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17년 은퇴를 발표했으며, 음주 운전으로 체포된 적이 있고, 레스토랑 사업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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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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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뉴욕 양키스 시절의 조바 체임벌린
포지션투수
투구/타석우투/우타
출생일1985년 9월 23일
출생지미국, 네브래스카주, 링컨
데뷔MLB / 2007년 8월 7일
마지막 출장MLB / 2016년 7월 3일
드래프트2006년 MLB 드래프트 1라운드 추가 지명 (전체 41위), 뉴욕 양키스
선수 경력
소속팀뉴욕 양키스 (2007–2013)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2014–2015)
캔자스시티 로열스 (2015)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2016)
수상 경력
수상월드 시리즈 우승 (2009)
통계 (MLB)
승-패25–21
평균 자책점3.81
탈삼진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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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년 시절

조바 체임벌린은 1985년 9월 23일 저스틴 루이스 히스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네브래스카주 링컨에서 자랐다. 체임벌린의 부모는 결혼하지 않았고, 그가 18개월 되었을 때 헤어졌다. 그의 아버지는 위네바고족 인디언으로, 위네바고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태어났지만 소아마비 치료를 위해 떠나야 했다. 체임벌린은 여전히 아메리카 원주민 보호구역에 가족이 있다.

'조바'라는 별명은 체임벌린(당시 저스틴)의 두 살 된 사촌이 그녀의 오빠(체임벌린의 다른 사촌) 조슈아의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하고 대신 '조바'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2.1. 출생 및 가정 환경

체임벌린은 1985년 9월 23일 저스틴 루이스 히스로 태어났다. 그는 네브래스카주 링컨에서 자랐다. 체임벌린의 부모인 할란 체임벌린과 재키 스탠리는 결혼한 적이 없었고, 조바가 18개월 되었을 때 헤어졌다. 일부 자료에 따르면 할란 체임벌린은 조바가 세 살 때 친권을 완전히 얻었지만, 스탠리는 조바가 10살이 될 때까지 대부분 그녀와 함께 살았고, 이때 그의 성을 그녀의 처녀 성인 히스에서 체임벌린으로 법적으로 변경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아버지는 미국 원주민인 위네바고족 인디언으로, 위네바고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태어났지만 소아마비 치료를 받기 위해 떠나야 했다. 체임벌린은 여전히 아메리카 원주민 보호구역에 가족이 살고 있다.

체임벌린(당시 저스틴)이 어렸을 때, 그의 두 살 된 사촌이 그녀의 오빠(체임벌린의 다른 사촌) 조슈아의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하고 대신 조바라고 발음했는데,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체임벌린의 별명이 되었다.

2.2. '조바'라는 별명의 유래

어렸을 때, 체임벌린(당시 저스틴)의 두 살 된 사촌이 그녀의 오빠(체임벌린의 다른 사촌) 조슈아의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하고 대신 '조바'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체임벌린의 별명이 되었다.

2.3. 학창 시절

조바 체임벌린은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생활고 때문에 고등학교 시절에는 시청에서 육체노동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포츠 활동 및 대학 진학 비용을 마련했다.

3. 아마추어 야구 경력

조바 체임벌린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모두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주목받는 투수 유망주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링컨 노스이스트 고등학교 소속으로 31.1이닝 동안 29개의 탈삼진, 3승 2패, 평균자책점 3.35를 기록하며 링컨 저널 스타 선정 슈퍼 스테이트 2팀에 이름을 올렸다. 아메리칸 레지언 야구에서는 4승 4패, 평균자책점 1.36, 137탈삼진, 21볼넷으로 올스테이트에 선정되었고, 타자로서도 타율 0.505, 11홈런, 11개의 2루타, 37타점을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대학교 시절에는 네브래스카 대학교 카니에서 시작하여 네브래스카 대학교 링컨으로 전학, 2005년 칼리지 월드 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 올-빅 12 퍼스트 팀 및 리그 신인 선수로도 선정되었다. 2006년에는 삼두근 건염으로 제한적인 출전을 했지만, 14경기에 출전하여 6승 5패, 3.93 평균자책점, 89.1이닝 동안 102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3.1. 고등학교 시절

링컨 노스이스트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링컨 저널 스타(Lincoln Journal Star)로부터 슈퍼 스테이트 2팀에 선정되었으며, 31.1이닝 동안 29개의 탈삼진, 3승 2패, 평균자책점 3.35를 기록했다.

2004년 여름에는 아메리칸 레지언 야구(American Legion Baseball)에서 4승 4패, 평균자책점(ERA) 1.36, 137개의 탈삼진, 21개의 볼넷으로 올스테이트에 선정되었다. 조니 돈(Johnny Dorn)의 팀과의 경기에서는 12이닝 동안 21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는데, 이 경기는 그랜드 아일랜드가 1-0으로 승리한 15이닝 경기였다. 체임벌린은 타자로서도 타율 0.505, 11개의 홈런, 11개의 2루타, 37타점을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3.2. 대학교 시절

체임벌린은 데이먼 데이 코치 아래에서 네브래스카 대학교 카니에서 대학 경력을 시작했다. 신입생으로서 8번의 선발 등판에서 팀 내 평균자책점(5.23), 상대 타율(.250), 탈삼진 (49개), 완투 (4회)에서 1위를 기록했다. 2004년 올-로키 마운틴 애슬레틱 컨퍼런스 명예 선수로 선정되었다.

2학년 시즌을 위해 네브래스카 대학교 링컨으로 전학하여 무릎 수술을 받고 25파운드를 감량했다. 콘허커스가 2005년 칼리지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고 첫 칼리지 월드 시리즈 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했으며, 그 해 10승 2패, 2.81 평균자책점, 130개의 탈삼진을 기록했고, 118.2이닝 동안 5번의 두 자릿수 탈삼진 경기를 했다. 2005년 올-빅 12 퍼스트 팀에 선정되었으며 리그 신인 선수로도 선정되었다.

2004-2005년 대학 비시즌 동안 내셔널 베이스볼 콩그레스의 네브래스카 브루인스에서 투구했다. 2005년에 6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5승 0패, 1.59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06년 시즌에는 삼두근 건염으로 인해 제한적인 출전을 했지만, 14경기에 출전하여 6승 5패, 3.93 평균자책점, 89.1이닝 동안 102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두 차례 빅 12 주간 투수였던 체임벌린은 102개의 탈삼진으로 3위를 기록했고, 9이닝당 평균 10.28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4. 프로 야구 경력

조바 체임벌린은 2006년 MLB 드래프트에서 뉴욕 양키스에 지명된 후, 여러 팀을 거치며 프로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뉴욕 양키스 (2006-2013)

2006년 MLB 드래프트에서 전체 41순위로 뉴욕 양키스에 지명된 체임벌린은, 하와이 윈터 리그에서 뛰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2007년에는 싱글 A, 더블 A, 트리플 A를 거쳐 메이저 리그에 데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에서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양키스는 그의 등판 간격을 조절하기 위해 '조바 규칙'을 적용하기도 했다. 2007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깔따구 떼의 방해로 부진한 투구를 보였다.

2008년에는 선발 투수로 전환을 시도,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상대로 첫 선발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8월에 어깨 부상을 당하며 15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2009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여 양키 스타디움에서 첫 승리를 거두는 등 활약했지만, 시즌 후반에는 부진했다. 2009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불펜 투수로 활약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2010년에는 다시 불펜으로 돌아갔고, 2011년에는 토미 존 수술을 받으며 시즌을 마감했다. 2012년에는 트램펄린을 타다가 발목 부상을 당하기도 했지만, 8월에 복귀하여 활약했다. 2013년에는 복부 부상과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로 퇴장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2013-2015)

2013년 12월, 체임벌린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 2014년 시즌 초반에는 불안했지만, 곧 팀의 셋업맨으로 자리 잡았다. 2014 시즌에는 3.5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15년에는 시즌 중반까지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이후 부진하며 7월에 지명 할당되었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마이너) (2015)

2015년 7월, 토론토 블루 제이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었지만, 한 달 만에 계약을 해지하고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 (2015)

2015년 8월,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고, 9월에 메이저 리그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2015년 월드 시리즈 로스터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2015-2016)

2015년 12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고, 2016년 개막전 로스터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7월에 지명 할당되며 팀을 떠났다.

밀워키 브루어스 (마이너) (2017)

2017년 1월, 밀워키 브루어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었지만, 3월에 방출되었고, 10월에 은퇴를 발표했다.

4.1. 뉴욕 양키스 시절 (2006-2013)

2006년 MLB 드래프트에서 전체 41순위로 뉴욕 양키스에 지명되었다. 그 해 하와이 윈터 리그에 참가하여 웨스트 오아후 케인파이어스 소속으로 9경기에 등판, 평균자책점 2.63을 기록했다.

2007년 싱글 A 어드밴스드 탬파 양키스에서 시즌을 시작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이후 더블 A 트렌턴 썬더를 거쳐 트리플 A 스크랜턴/윌크스-배리 양키스까지 승격되었다. 올스타 퓨처스 게임에 미국 팀 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8월 7일 메이저 리그로 승격,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데뷔전에서 2이닝 무실점 2탈삼진을 기록했다. 양키스는 체임벌린의 등판 간격을 조절하기 위해 '조바 규칙'을 적용했다. 2007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ALDS) 2차전에서는 깔따구 떼의 방해로 부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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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양키스에서 투구하는 체임벌린
2008년 양키스에서 투구하는 체임벌린

2008년 시즌 전, Baseball America는 체임벌린을 야구에서 3번째로 좋은 유망주로 평가했고, Baseball Prospectus는 그를 전체 4위로 평가했다. 5월 6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데이비드 델루치에게 3점 홈런을 허용하며 양키 스타디움에서 첫 실점을 기록했다. 6월 3일, 로이 할라데이와 토론토 블루 제이스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첫 선발 등판을 하였다. 6월 25일,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상대로 6⅔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선발 투수로서 첫 승리를 거두었다. 7월 25일, 레드삭스를 상대로 7이닝 무실점 3피안타 9탈삼진을 기록했다. 8월 4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어깨 부상을 입고 15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2009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6월 1일, 인디언스를 상대로 개인 통산 최다인 8이닝을 던졌다. 7월 19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양키 스타디움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다. 8월 12일까지 3.85의 평균자책점을 유지했으나, 이후 8번의 선발 등판에서 8.1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부진했다. 2009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불펜 투수로 활약하며 우승에 기여했다.

2009년 ALCS 중의 체임벌린
2009년 ALCS 중의 체임벌린

월드 시리즈 3, 4, 6차전에 등판하여 4차전에서는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11년 양키스에서 투구하는 챔벌린
2011년 양키스에서 투구하는 챔벌린

2010년 시즌 초반에는 부진했지만, 8월과 9월에 좋은 활약을 보였다. 포스트시즌에는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3경기에 출전했다.

2011년, 라파엘 소리아노 영입으로 입지가 불확실해졌지만 주로 7회에 등판했다. 6월 팔꿈치 부상으로 토미 존 수술을 받고 시즌을 마감했다.

2012년 8월 투구하는 챔벌린
2012년 8월 투구하는 챔벌린

2012년 1월, 양키스와 1년 비보장 계약을 맺었다. 3월에는 트램펄린을 타다가 오른쪽 다리 발목에 개방 골절 부상을 입었다. 8월 1일 복귀하여 주로 7회에 등판했다. 2012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 4차전에서 부상을 당했다.

2013년에는 4월 말 오른쪽 복부 외복사근 염좌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가 5월 28일에 복귀했다. 9월 5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당했다.

4.1.1. 2006년

2006년 MLB 드래프트에서 전체 41순위(톰 고든의 FA 보상으로 얻은 1라운드 지명권)로 뉴욕 양키스에 지명되었다. 그 해 하와이 윈터 리그에 참가하여 웨스트 오아후 케인파이어스 소속으로 9경기에 등판, 평균자책점 2.63을 기록했다.

4.1.2. 2007년: 메이저 리그 데뷔

2007년, 조바 체임벌린은 싱글 A 어드밴스드 탬파 양키스에서 시즌을 시작하여 7경기 동안 4승 0패, 2.0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51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이후 더블 A 트렌턴 썬더로 승격되어 7경기에서 4승 2패, 3.43의 평균자책점, 64탈삼진을 기록했다. 그해 올스타 퓨처스 게임에 미국 팀 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7월 24일에는 트리플 A 스크랜턴/윌크스-배리 양키스로 승격되었다.

2007년 8월 7일, 체임벌린은 뉴욕 양키스에 의해 메이저 리그로 승격되었다. 같은 날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데뷔전에서 2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2개의 삼진을 잡았다. 양키스는 체임벌린의 등판 간격을 조절하기 위해 '조바 규칙'을 적용하여 그의 등판을 관리했다.

2007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ALDS) 2차전에서 체임벌린은 깔따구 떼의 방해로 인해 평소와 다른 투구를 보이며 부진했다. 이 경기에서 체임벌린은 두 개의 폭투를 기록하며 동점을 허용했고, 결국 양키스는 연장전 끝에 패했다.

4.1.3. 2008년: 선발 전환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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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양키스에서 투구하는 체임벌린
2008년 양키스에서 투구하는 체임벌린

2008 시즌 전, Baseball America는 체임벌린을 야구에서 3번째로 좋은 유망주로 평가했고, Baseball Prospectus는 그를 전체 4위로 평가했다. 체임벌린은 스프링 트레이닝을 선발 투수로 시작했지만, 2008년 3월 20일 양키스는 그가 시즌을 불펜에서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조 지라디 감독은 체임벌린을 '제한 없이' 기용하겠지만, 팀의 체임벌린 기용은 상식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5월 6일, 체임벌린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데이비드 델루치에게 3점 홈런을 허용하며 양키 스타디움에서 첫 실점을 기록했다. 그 달 말, 양키스는 체임벌린을 선발 로테이션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인정했다. 6월 3일, 체임벌린은 로이 할라데이와 토론토 블루 제이스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첫 선발 등판을 하여 2⅓이닝 동안 2실점, 1안타, 4볼넷을 기록했다. 6월 25일,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상대로 6⅔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선발 투수로서 첫 승리를 거두었고, 양키스는 10-0으로 승리했다.

7월 25일, 체임벌린은 레드삭스를 상대로 7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치며 레드삭스의 에이스 조쉬 베켓과의 맞대결에서 승리, 3안타만을 허용하고 9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양키스는 1-0으로 승리했다.

8월 4일, 체임벌린은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어깨 부상을 입었고, 회전근개 건염으로 15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양키스의 단장 브라이언 캐시먼은 나중에 이 부상이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했다. 체임벌린은 시즌을 3승 1패, 8번의 노 디시전으로 마쳤다.

4.1.4. 2009년: 월드 시리즈 우승

2008년 시즌 이후, 행크 스타인브레너는 언론에 체임벌린이 2009 시즌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팀의 계획을 알고 있는 것이 시즌 준비에 대한 그의 정신적 접근 방식을 바꾸었고, 그에게 더 쉬운 길을 만들어준다고 언급했다. 2009년 6월 1일, 체임벌린은 인디언스를 상대로 5-2로 승리하며 개인 통산 최다인 8이닝을 던졌다.

올스타 브레이크 동안, 체임벌린은 아들과 함께 놀면서 마음을 편하게 하고 마운드에서 "자신감을 얻기 위해" 네브래스카주 링컨의 집으로 돌아갔다. 2009년 7월 19일, 그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6.2이닝 동안 3안타와 3볼넷을 허용하고 8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양키 스타디움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다.

2009년 8월 12일까지, 체임벌린은 3.85의 평균자책점을 유지했고, 양키스는 그 해 그의 이닝을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팀은 그를 7일마다 선발로 내보냈고, 채드 고딘을 로테이션에 사용했다. 체임벌린은 그 시즌 마지막 8번의 선발 등판에서 8.1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양키스는 그를 마이너 리그로 강등하는 것을 고려했고, 심지어 포스트시즌 로스터에서 제외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양키스가 3명의 선발 로테이션을 사용하면서 셋업맨 역할을 맡아 로스터에 남았다. 그는 양키스가 2009년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과정에서 불펜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2009년 ALCS 중의 체임벌린
2009년 ALCS 중의 체임벌린


멘탈 문제가 지적되어 포스트 시즌 로스터에서 제외될 예정이었지만,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월드 시리즈에 출전하여 3차전 7회부터 등판하여 삼자범퇴로 막았다. 4차전에서는 8회부터 구원 투수로 등판했다. 페드로 펠리스에게 홈런을 맞아 동점을 허용했지만, 곧바로 이어진 9회에 양키스가 3점을 추가하여 승리하면서 체임벌린이 승리 투수가 되었다. 6차전에서는 6회 2사부터 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4.1.5. 2010-2013년: 부상과 부진

2010년 시즌을 앞두고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조 지라디 감독은 뉴욕 양키스 선발 로테이션의 5번째 자리를 놓고 필 휴즈와 경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스프링 트레이닝 결과, 휴즈가 선발 자리를 차지했고, 챔벌린은 다시 불펜으로 돌아갔다. 시즌 초반 부진했지만, 8월과 9월에 활약하며 정규 시즌 마지막 28경기에서 2.3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포스트시즌 로스터에는 포함되었으나,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단 3경기에만 출전했다.

2011년 양키스에서 투구하는 챔벌린
2011년 양키스에서 투구하는 챔벌린

2011년, 양키스는 챔벌린을 선발 투수로 기용하지 않고, 구원 투수로 기용했을 때 더 빠른 구속을 낸다고 밝혔다. 라파엘 소리아노의 영입으로 챔벌린의 팀 내 입지가 불확실해졌지만, 주로 7회에 등판했다. 소리아노가 부상으로 이탈하자 잠시 8회에 등판하기도 했다. 6월 8일 팔꿈치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6월 16일 오른쪽 팔꿈치 인대 파열로 토미 존 수술을 받고 시즌을 마감했다.

2012년 8월 투구하는 챔벌린
2012년 8월 투구하는 챔벌린

2012년 1월, 양키스와 1년 비보장 계약에 합의했다. 3월 22일, 탬파의 점프 센터에서 트램펄린을 타다가 오른쪽 다리 발목에 개방 골절 부상을 입었다. 초기에는 과다 출혈로 생명이 위험하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챔벌린은 기자 회견에서 이를 부인했다. 발목 부상으로 60일 부상자 명단에서 시즌을 시작했고, 토미 존 수술 후 재활을 이어갔다. 8월 1일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복귀했고, 시즌 마지막 두 달 동안 주로 7회에 등판했다. 포스트시즌 로스터에 포함되었지만, 2012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 4차전에서 맷 위터스의 부러진 배트에 팔꿈치를 맞고 교체되었다. 양키스는 볼티모어를 꺾고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게 패했다.

2013년, 4월 말 오른쪽 복부 외복사근 염좌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가 5월 28일에 복귀했다. 9월 5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조 웨스트 심판의 체크 스윙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당했다.

4.2.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시절 (2013-2015)

2014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시절의 체임벌린
2014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시절의 체임벌린


2013년 12월 13일, 타이거스는 체임벌린과 2500000USD에 인센티브를 더한 1년 계약을 맺었다. 그는 식단에 생선을 도입하여 약 6.80kg를 감량한 채로 2014 시즌을 시작했다. 시즌 첫 경기에서 4안타로 2실점을 허용하며 불안하게 시작했지만, 이후 타이거스의 셋업맨으로 자리 잡았다. 4월 22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8–6 승리에서 세이브를 올렸는데, 이는 그의 통산 여섯 번째 세이브였다. 시즌 동안 체임벌린은 특히 큰 수염을 길렀다. 2014 시즌에 2–5의 기록과 3.57의 평균자책점으로 마쳤으며, 63이닝 동안 57개의 안타, 24개의 볼넷, 59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ALDS) 플레이오프 로스터에 포함되었으나, 6명의 타자를 상대하여 2경기에서 3안타로 4실점하며 겨우 1개의 아웃만을 잡았다.

2015년 2월 24일, 타이거스는 체임벌린과 1000000USD에 인센티브를 더한 1년 계약을 다시 맺었다. 5월까지 1.2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지만, 이후 10번의 등판에서 평균자책점이 4.09로 증가했다. 7월 1일, 피츠버그 파이리츠닐 워커, 스타링 마르테, 페드로 알바레즈에게 한 이닝에서 3개의 홈런을 허용했다. 6월 초부터 9.3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그는 7월 3일 타이거스에 의해 지명 할당되었고, 2015년 7월 10일, 무조건 방출되었다.

4.3. 토론토 블루제이스 (마이너) 시절 (2015)

2015년 7월 21일, 체임벌린은 토론토 블루 제이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었다. 그는 인터내셔널 리그의 버팔로 바이슨스에 배정되었다. 8월 14일, 계약 조항에 따라 계약을 해지하고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4.4. 캔자스시티 로열스 시절 (2015)

2015년 8월 16일, 체임벌린은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었다. 퍼시픽 코스트 리그의 트리플 A팀인 오마하 스톰 체이서스에서 8경기에 출전한 후, 로열스는 9월 7일 체임벌린을 메이저 리그로 승격시켰다. 로열스에서 6번 출전하여 7.9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로열스를 합쳐 2015년 시즌 전체 36경기에서 4.8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시즌 말, 체임벌린은 로열스의 플레이오프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았다. 2015년 10월 27일, 로열스는 2015년 월드 시리즈 로스터에 아달베르토 몬데시를 포함시키기 위해 체임벌린을 지명 할당했다.

4.5.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절 (2015-2016)

2015년 12월 1일, 체임벌린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맺었다. 2016년 4월 4일, 인디언스는 그의 계약을 구매하여 개막전 로스터에 포함시켰다. 그해 5월 23일, 체임벌린은 갈비뼈 부상으로 장애자 명단에 올랐는데, 당시 14경기에서 1.9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6월 8일에 복귀한 그는 7월 3일까지 6이닝 동안 2자책점을 허용했다. 7월 4일, 체임벌린은 지명 할당되었고, 7월 10일, 무조건적인 할당을 거부한 후 방출되었다.

4.6. 밀워키 브루어스 (마이너) 시절 (2017)

2017년 1월 20일, 체임벌린은 스프링 트레이닝 초청과 함께 밀워키 브루어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했다. 그해 3월 22일, 체임벌린은 방출되었고, 10월 4일 은퇴를 발표했다.

5. 투구 레퍼토리

체임벌린은 선수 초창기에는 꾸준히 90mph 중후반대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으며, 최고 구속은 101mph에 달했다. 팔 수술 후, 그의 패스트볼은 93mph~94mph 범위였으며, 최고 구속은 97mph~98mph 정도였다. 그는 또한 82mph~88mph의 슬라이더, 78mph~81mph의 커브, 그리고 드물게 83mph~85mph의 체인지업을 던졌다.

6. 개인 생활

체임벌린은 카터라는 아들을 두고 있다. 여행 채널의 프로그램 맨 vs. 푸드 시즌 2, 에피소드 15에 출연하여, 브루클린에서 진행자 애덤 리치먼에게 먹기 대결을 코칭했다.

6.1. 음주 운전 (DUI)

2008년 10월 18일 오전 1시, 조바 체임벌린은 네브래스카주 링컨 인근에서 음주 운전, 과속, 차량 내 음주로 체포되었다. 네브래스카 주 경찰 대변인은 체임벌린이 링컨 인근 77번 국도에서 과속으로 정지되었다고 밝혔다. 그의 체포는 경찰 비디오에 담겼으며, 나중에 truTV Presents: World's Dumbest...의 "Drivers 13" 에피소드에서 방영되었다. 그의 기소는 체임벌린의 요청에 따라 2008년 12월, 2009년 1월, 2009년 3월 두 차례, 총 4번 연기되었다. 그는 음주 운전을 인정했고, 2009년 4월 1일 보호 관찰 처분을 받았다.

체임벌린은 2018년 5월 3일 두 번째 음주 운전 사고를 냈으며,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법적 허용치의 3배가 넘는 0.28이었다. 그는 이전 유죄 판결이 있어 가중 음주 운전 혐의로 기소되었다.

6.2. 레스토랑 사업

2013년, 체임벌린은 맨해튼에 아메리칸 위스키 바 겸 레스토랑을 개업한 소유 그룹에 참여했다.

2018년 9월, 체임벌린과 사업 파트너는 네브래스카주 링컨에 '체임벌린스(Chamberlain's)'라는 을 열었다. 네브래스카 주류 통제 위원회는 체임벌린이 향후 1년 동안 개인적인 음주 관련 위반 사항이 없다는 조건으로 면허를 승인했다.

6.3. 재정 문제

체임벌린은 2014년 네브래스카주 링컨에 1150000USD 규모의 약 371.61m2 크기 주택을 구입했다. 피너클 은행은 2019년 10월 모기지에 대한 채무 불이행 통지를 했다. 2020년 8월에는 야구 카드, 피규어, 라커룸 명찰, 수백 점의 가정용품 및 스포츠 용품을 포함한 다량의 유기물이 경매에 부쳐졌다. 경매에 참석한 한 사람에 따르면, 체임벌린은 2009년 월드 시리즈 링을 포함한 특정 "고가품"은 보관했다.

7. 수상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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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수상 내역
20053rd 팀 올 아메리칸
20051st 팀 올 빅 12
2005빅 12 올해의 신인 투수
20052nd 팀 올 미드웨스트 지역
2005빅 12 이주의 투수 (2005년 3월 1일)
2005전국 이주의 투수 (2005년 1월 3일)
2005빅 12 이주의 투수 (2005년 4월 25일)
20061st 팀 프리시즌 올 아메리칸
2006하와이 윈터 포스트시즌 올스타
2007FSL 이주의 투수 (2007년 5월 14일)
2007FSL 이주의 투수 (2007년 5월 28일)
2007EL 이주의 투수 (2007년 6월 18일)
20092009년 월드 시리즈 우승

8. 연도별 투수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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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소속등판선발완투완봉무4구승리패전세이브홀드승률타자이닝피안타피홈런볼넷고의4구몸맞는탈삼진폭투보크실점자책점평균자책WHIP
2007년NYY19000020181.0009124.01216013410210.380.75
2008년421200043019.571417100.187539321184232292.601.26
2009년32310009600.600709157.116721762121335294834.751.54
2010년73000034326.42930571.27162221775137354.401.30
2011년270000200121.00011028.223370124101092.831.05
2012년22000010041.0009520.2263622220011104.351.55
2013년4500002115.66719842.04782611383023234.931.74
2014년DET69000025229.28626363.05732433593026253.571.29
2015년KC3600000208.00012827.2386901232020154.881.70
2016년CLE2000000000----8220.012111311810652.251.15
MLB: 10년3854300025217110.5432398555.15405722616255462552612353.811.38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9. 등번호

* 62 (2007년 - 2013년, 2015년 중도 - 2016년)
* 44 (2014년 - 2015년 중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