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음악건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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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음악건설본부는 1945년 광복 직후 결성된 좌파 성향의 음악 단체로, 김순남, 신막, 이범준 등이 중심이 되어 출범했다.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 단체로, 임화와 김남천이 주도한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 미군 환영 음악회를 개최한 후 해산되었으며, 이념 대립 심화로 좌우 분열을 겪으며 단명했다.

조선음악건설본부
기본 정보
국문 명칭조선음악건설본부
영문 명칭Korean Music Construction Headquarters
설립일1945년 8월 17일
해체일1946년 2월
설립 목적민족음악 건설
주요 활동음악 단체 통합, 신음악 건설 운동 전개
조직
본부장김순남
상임위원이건우
이흥렬
김세형
박경호
김대현
조직 구성서양악부
국악부
성악부
작곡부
이론부
사업부
역사
배경8.15 해방 직후
결성1945년 8월 17일, 음악가들의 자발적 조직 결성
활동해방 경축 음악회 개최
음악가 양성
음악 이론 연구
신음악 건설 운동 전개
해체1946년 2월, 좌우 대립 심화로 인한 내부 분열 및 해산
평가
의의해방 직후 민족음악 건설 운동의 구심점 역할 수행
한계좌우 이념 대립 심화로 인한 내부 분열 및 단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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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결성 배경 및 과정

1945년 8월 15일, 태평양 전쟁 종결과 함께 한반도는 광복을 맞이했다. 서울에서는 광복 직후부터 8월 18일까지 음악, 미술, 영화, 연극, 문학 등 예술 각 분야에서 여러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조직되었다.
이러한 단체들은 8월 18일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가 결성되면서 그 산하 조직으로 통합되었다. 조선음악건설본부는 이 협의회 산하의 음악 부문 단체였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출신 문인인 임화와 김남천이 각각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의 의장과 서기장을 맡아 조직을 이끌었다. 이는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 행적이 없었던 임화 계열이 8월 16일 가장 먼저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조직하며 주도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한반도의 정치 상황은 태평양 전쟁의 갑작스러운 종결로 인해 유동적이었고, 아직 분단이나 이념 대립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임화가 주도한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였지만, 그 산하 단체에는 다양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인물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조선음악건설본부는 작곡가 김순남과 성악가 출신 음악평론가인 신막, 이범준 등을 중심으로 출범했으며, 이들은 좌파적 성향이 강한 인물들이었다. 세 사람은 이후 모두 북한으로 월북했다.

3. 주요 활동 및 구성원

조선음악건설본부는 작곡가 김순남과 성악가 출신 음악평론가인 신막, 이범준 등을 중심으로 출범했으며, 좌파 성향이 강했다. 이들 세 사람은 후에 모두 북한으로 월북했다.

이 단체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KAPF) 출신 문인인 임화와 김남천이 각각 의장과 서기장을 맡은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의 음악 단체였다. 초기에는 일제강점기 직후 정치적 상황이 유동적이었고 이념 대립이 아직 표면화되지 않아 다양한 성향의 인물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해방 정국의 혼란 속에서 점차 이념 대립이 심화되면서 좌우익 음악인 간의 갈등이 불거졌다. 특히 일제강점기부터 존재했던 우파 성향의 조선음악가협회와 대립하던 좌파 계열이 탈퇴하여 별도로 조선프롤레타리아음악동맹을 결성하면서 조선음악건설본부는 큰 타격을 입었다.

주요 활동으로는 1945년 10월 18일에 개최한 미군 환영 음악회가 있다. 이 음악회 개최 직후, 조선음악건설본부는 "연합군 환영 준비를 위한 잠정적 기관이었던 조선음악건설본부는 그 취지를 달성함으로써 해소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공식적으로 해산했다.

4. 해산 및 좌우 분열

연합군 군정의 도래와 함께 이념 대립이 심화됨에 따라, 좌우익 음악인이 함께 있던 조선음악건설본부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부터 존재했던 우파 성향의 조선음악가협회와 대립하던 좌파 계열 음악인들이 탈퇴하여 별도로 조선프롤레타리아음악동맹을 결성하면서 조선음악건설본부는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1945년 10월 18일, 미군 환영 음악회를 개최한 뒤 "연합군 환영 준비를 위한 잠정적 기관이었던 조선음악건설본부는 그 취지를 달성함으로써 해소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해산했다. 이는 표면상의 이유였고, 사실상 좌우 분열로 인한 해산으로 평가된다.

5. 역사적 의의 및 한계

광복 직후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조선음악건설본부는 음악계 재건을 목표로 결성되었다. 1945년 8월 18일 조직된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 단체로 출범했으며, 초기에는 다양한 성향의 음악인들이 참여했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족 음악을 건설하려는 시대적 요구 속에서 조직된 것이었으나, 당시 정치 상황은 매우 유동적이었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출신 임화와 김남천이 주도한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 단체로서, 조선음악건설본부는 작곡가 김순남, 음악평론가 신막, 이범준 등 좌파 성향의 음악가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은 이후 모두 북한으로 월북했다.

그러나 미군정이 시작되고 이념 대립이 본격화되면서 조선음악건설본부는 내부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해 온 우파 성향의 조선음악가협회와의 갈등이 표면화되었고, 결국 좌파 계열 음악인들이 탈퇴하여 별도로 조선프롤레타리아음악동맹을 결성하면서 조직은 약화되었다.

결국 조선음악건설본부는 1945년 10월 18일 미군 환영 음악회를 개최한 뒤, "연합군 환영 준비를 위한 잠정적 기관으로서의 임무를 완수했다"는 명분으로 해산을 발표했다. 이는 표면적인 해산 이유였으나, 실제로는 해방 공간의 극심한 좌우 대립으로 인해 활동 지속이 어려웠던 상황을 반영한다.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조선음악건설본부는 광복 직후 음악계 재편 과정에서 역할을 했지만, 결국 이념 갈등이라는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해체되어 해방 정국의 혼란상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