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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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종도는 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의병장으로, 1558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안기도찰방을 거쳐 양지 현감, 안음 현감, 함양 군수를 역임했다.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투옥되었으나 풀려났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에 의병으로 활약했다. 특히 정유재란 때 곽준과 함께 황석산성 전투에서 가토 기요마사 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저서로 《대소헌집》이 있다.

조종도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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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도 선생 영정
남악(南岳)
본관풍양 조씨(豊壤 趙氏)
생몰년1593년 ~ 1654년
명중(明仲)
관력
주요 관직병조판서(兵曹判書)
대사헌(大司憲)
강화부 유수(江華府留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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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조종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이다. 경사(經史)에 밝았으며, 해학을 즐겼다. 사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함안 덕암서원, 안의 황암사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대소헌집》이 있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생활

1558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안기도찰방이 되었고 1585년 양지 현감으로 선정되었다. 1589년 정여립의 모반 사건 때 투옥되었으나 풀려났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안음 현감이 되고 함양 군수를 지내다가 병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곽준과 함께 의병장 김면의 휘하로 들어가 우척현 전투 등에서 활약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곽준과 함께 직접 의병을 일으켜 황석산성 전투에서 왜장 가토 기요마사와 싸우다가 전사했다.

아버지 조언(趙堰)은 참봉이었고, 어머니는 대사성 강로(姜老)의 딸이었다. 어려서 정두(鄭斗)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조식의 문하생이기도 했다. 1558년 생원시에 합격했으며, 천거로 안기도 찰방이 되었다. 이때 이황의 문하생 유성룡, 김성일 등과 교류했다. 이후 사섬시 직장, 상서원 직장, 통례원 인의, 장례원 사평 등을 역임했다. 1585년 양지현감이 되어 선정을 베풀어 표리를 하사받았다. 1587년 김구현령이 되었다. 1589년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투옥되었으나 석방되었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남으로 돌아와 초유사 김성일과 의병 모집에 힘썼으며, 그해 가을 단성현감이 되었다. 1596년에는 함양 군수였으며, 도중에 병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안음현감 곽준과 함께 의병장 김면의 휘하에서 우척현 전투 등에서 활약했다. 저서로는 《대소헌집(大笑軒集)》이 있다.

2.2. 정여립 사건과 임진왜란

1589년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투옥되었으나 석방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남으로 돌아와 초유사 김성일과 의병 모집에 힘썼으며, 그해 가을 단성현감이 되었다. 1596년 함양 군수를 지내다가 병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안음현감 곽준과 함께 의병장 김면의 휘하에서 우척현 전투 등에서 활약했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곽준과 함께 직접 의병을 일으켜 황석산성 전투에서 가토 기요마사와 싸우다 전사했다.

2.3. 정유재란과 황석산성 전투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안음 현감으로 곽준과 함께 의병장 김면(金沔)의 휘하로 들어가 우척현 전투 등에서 활약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곽준과 함께 직접 의병을 일으켜 황석산성에서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싸우다 전사했다.

3. 저서

저서로 《대소헌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