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찬 (덕사)
1. 개요
조찬은 위나라의 인물로, 조휴의 차남이자 조조의 동복동생이다. 힘이 장사였으며 조예의 총애를 받아 잠자리를 함께 했다. 228년 조휴가 사망하자 봉토 일부를 받아 열후에 봉해졌고, 이후 진오장군을 거쳐 전장군에 추증되었다. 238년 조예가 병에 걸려 조방을 보좌할 인물을 두고 조상과 조우 사이에 암투가 벌어졌을 때 조우 측근이었던 조조를 조예 곁으로 돌려보내려 했으나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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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의 황족 -
조진
조진은 조조의 족자이자 양자로, 위나라 장군으로서 호표기를 지휘하고 옹양주 도독을 맡아 서부 전선을 안정시켰으며, 대장군으로서 제갈량의 북벌을 막아내는 데 공을 세웠으나 자오곡 진격 작전 실패 후 병사하여 원후라는 시호를 받았다. -
조위의 황족 -
조홍 (삼국지)
조홍은 삼국 시대 위나라의 장군으로, 조조를 섬기며 형양 전투에서 조조를 구출하고 관도 전투, 형주 정벌 등에서 공을 세웠으며, 조비 사후 조예 시대에 후장군에 임명되었다. -
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
조위의 장군 -
하후돈
하후돈은 후한 말기부터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군으로, 조조의 사촌이자 그의 거병 때부터 종군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며, 연주 전투에서 왼쪽 눈을 잃어 "애꾸눈 하후"라는 별명을 얻었고, 군사적 능력과 청렴한 성품으로 조조의 신임을 받아 사후 조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
조위의 장군 -
두예
두예는 서진 시대의 장군이자 학자로, 촉한 정벌에 참여하고 오나라 정벌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춘추좌씨전》 연구에 깊이 있는 학자였다.
2. 생애
조휴(曹休)의 차남이며, 조조(曹肇)의 동복동생이다.
1000균을 들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장사였으며, 명제(明帝)의 총애를 받아 늘 잠자리를 함께 하였다.
태화 2년(228년), 부친 조휴가 숨을 거두자 명제는 조휴의 봉토에 속한 300호를 조찬에게 주고 열후(列侯)에 봉하였다.
몇 년 후 진오장군(珍吳將軍)에 임명되었고, 사후 전장군(前將軍)에 추증되었다.
경초 2년(238년), 황제 조예가 병에 걸려 다음 황제 조방을 누가 보좌할 것인가를 두고 조상과 조우 사이에서 암투가 벌어졌다. 조우와 그 측근에 있던 조조 등은 조예를 가까이 모셨지만, 일시적으로 그 곁을 떠난 적이 있었다. 대장군 사마의 관직에 있던 조찬은 이를 간하고, 다음 날 조조를 조예의 곁으로 돌려보냈지만 이미 늦어, 조상에 협력하는 유방·손자에 의해 조우·조조 등을 배척하는 칙명이 내려졌다.
2.1. 초기 생애 및 총애
조찬은 조휴(曹休)의 차남이며, 조조(曹肇)의 동복동생이다.
1000균을 들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장사였으며, 명제(明帝)의 총애를 받아 늘 잠자리를 함께 하였다.
태화 2년(228년), 부친 조휴가 숨을 거두자 명제는 조휴의 봉토에 속한 300호를 조찬에게 주고 열후(列侯)에 봉하였다. 몇 년 후 진오장군(珍吳將軍)에 임명되었고, 사후 전장군(前將軍)에 추증되었다.
2.2. 아버지의 죽음과 후계
조휴의 차남이자 조조의 동복동생이다. 1000균을 들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장사였으며, 명제의 총애를 받아 늘 잠자리를 함께 하였다.
태화 2년(228년), 부친 조휴가 사망하자 명제는 조휴의 봉토에 속한 300호를 조찬에게 주고 열후(列侯)에 봉하였다.
몇 년 후 진오장군(珍吳將軍)에 임명되었고, 사후 전장군(前將軍)에 추증되었다.
2.3. 조상과 조우의 암투
태화 2년(228년), 아버지 조휴가 사망하고 형 조조가 뒤를 이었다. 조찬은 조휴의 영읍에서 300호를 분여받아 열후에 봉해졌다.
경초 2년(238년), 조예가 병에 걸려 다음 황제 조방을 누가 보좌할 것인가를 두고 조상과 조우 사이에서 암투가 벌어졌다. 조우와 그 측근에 있던 조조 등은 조예를 가까이 모셨지만, 일시적으로 그 곁을 떠난 적이 있었다. 대장군 사마의 관직에 있던 조찬은 이를 간하고, 다음 날 조조를 조예의 곁으로 돌려보냈지만 이미 늦어, 조상에 협력하는 유방·손자에 의해 조우·조조 등을 배척하는 칙명이 내려졌다.
조찬은 진오장군이 된 후 사망하여 전장군의 관직이 추증되었다.
2.4. 죽음과 추증
태화 2년(228년), 아버지 조휴가 사망하고 형 조조가 뒤를 이었다. 조찬은 조휴의 영읍에서 300호를 분여받아 열후에 봉해졌다.
경초 2년(238년), 황제 조예가 병에 걸려 다음 황제 조방을 누가 보좌할 것인가를 두고 조상과 조우 사이에서 암투가 벌어졌다. 조우와 그 측근에 있던 조조 등은 조예를 가까이 모셨지만, 일시적으로 그 곁을 떠난 적이 있었다. 대장군 사마의 관직에 있던 조찬은 이를 간하고, 다음 날 조조를 조예의 곁으로 돌려보냈지만 이미 늦어, 조상에 협력하는 유방·손자에 의해 조우·조조 등을 배척하는 칙명이 내려졌다.
조찬은 진오장군이 된 후 사망하여 전장군의 관직이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