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조위)
1. 개요
손자(孫資)는 조위의 관료로, 중서령을 역임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형수 부부에게 길러졌으며, 조조의 초빙을 거절하고 관직에 나아가 상서랑을 지냈다. 조비 시대에 비서랑을 시작으로 중서령까지 올랐으며, 조예를 보좌하고 사마의를 기용하도록 권했다. 조방 시대에는 위장군을 역임하고 시중과 중서령을 다시 맡았으며, 정후의 시호를 받았다. 그의 손자는 손초이고, 현손은 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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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국 시대의 정치인 -
왕기 (공석)
왕기는 위나라의 무장으로 현토태수, 대방태수, 천수태수, 여남태수를 역임하며 관구검의 고구려 침공, 야마타이국 분쟁 중재, 등애 휘하의 촉한 정벌전에 참여했고 그의 손자 왕미 또한 위나라의 장수로 활동했다. -
중국 삼국 시대의 정치인 -
유방 (조위)
유방은 조위 시대의 관료로 조조, 조비, 조예 삼대를 섬기며 공손연 토벌 기여, 촉한-오나라 동맹 이간 계책 등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고 조예 사후 조방의 후견인 선정에 역할을 했으며 문장가로 명성을 얻었으나 사치스러운 생활로 비판받기도 했다. -
251년 사망 -
사마의
후한 말기부터 삼국 시대 위나라의 정치가이자 군사가였던 사마의는 조조, 조비, 조예 3대에 걸쳐 중용되며 위나라의 권력을 장악했으나, 고평릉의 변을 일으켜 정권을 찬탈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
251년 사망 -
등지
등지는 삼국 시대 촉한의 외교 및 군사 인물로, 유비의 신임을 받아 요직을 두루 거치며 오나라와의 동맹을 재건하여 촉한의 외교적 입지를 강화했으며, 검소하고 청렴한 삶을 살다가 251년에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2. 가계
손자의 손자는 손초이며, 현손은 손성이다.
3. 생애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형수 부부에게 길러졌으며, 태학에서 공부했다. 왕윤은 그를 한눈에 보고 범상치 않다고 느꼈다. 조조가 사공이 되자 초빙했지만, 손자는 살해된 형의 원수를 갚은 직후였으므로, 가족을 데리고 하동군으로 도망갔다. 그 후에도 군에서 초빙되었지만 응하지 않았으나, 친구 가규의 권유로 관직에 나섰다. 거기서 상계리가 되어, 순욱으로부터 높이 평가받아 상서랑에 임명되었지만, 거절하고 하동으로 돌아갔다. (『삼국지』유방전 주 인용 『손자별전』)
손자는 현령을 역임하고, 참승상군사가 되었다. 위나라가 건국되자 유방과 함께 비서랑을 맡았다. 조비(문제)가 즉위하자 유방과 함께 각각 좌승·우승이 되었고, 황초 연간 초기에 비서가 중서로 개칭되자, 유방이 중서감, 손자가 중서령이 되어 각각 급사중을 겸임했다. 또한 손자는 관중후, 유방도 관내후를 받았으며, 기밀을 취급했다.
황초 3년(222년)에 손자는 관내후가 되었다. 조예(명제)가 즉위하자 유방과 함께 산기상시를 더해 낙양정후가 되었다. 태화 연간 말, 오가 요동의 공손연을 유인하기 위해 장수를 파견했을 때, 손자는 다른 신하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요격을 주장하여 성공했기 때문에, 그 공적으로 좌향후가 되었다. 청룡 연간 초, 시중·광록대부가 더해졌고, 경초 2년(238년)에 요동이 평정되자, 참모로서의 공적으로 작위를 받아 중도후가 되었다.
조예는 임종 시, 조우를 대장군으로 삼고, 하후헌·조상·조조·진랑과 함께 조방을 보좌하도록 하려 했다. 그러나 하후헌·조조 등은 유방·손자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방·손자는 조예에게 사마의를 기용하도록 권했고, 방침을 변경시켰다. 이 때문에 조우·하후헌·조조·진랑 등이 파면되고, 사마의와 조상이 조방을 보좌하게 되었다.
조방(제왕)이 즉위하자 유방·손자 모두 가증되었고, 자식에게도 작위나 관위가 주어졌다. 정시 원년(240년)에는 우광록대부·의동삼사가 되었고, 같은 해 6년(245년)에는 중서령인 채로 위장군이 되었다. 다음 해, 지위를 물러났지만, 조상 등이 살해되자 복귀하여, 시중·중서령이 되었다. 가평 2년(250년), 표기장군에 임명되었지만, 다음 해 사망했다. 정후로 시호되었고, 작위는 아들 손홍이 이었다.
손홍의 아들이 "침류수석"으로 유명한 손초이며, 손초의 손자가 『삼국지』의 주에 인용된 『위씨춘추』 등의 저술로 유명한 손성이다.
3.1. 후한 말, 조조 시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형수 부부에게 길러졌으며, 태학에서 공부했다. 왕윤은 그를 한눈에 보고 범상치 않다고 느꼈다. 조조가 사공이 되자 초빙했지만, 손자는 살해된 형의 원수를 갚은 직후였으므로, 가족을 데리고 하동군으로 도망갔다. 그 후에도 군에서 초빙되었지만 응하지 않았으나, 친구 가규의 권유로 관직에 나섰다. 거기서 상계리가 되어, 순욱으로부터 높이 평가받아 상서랑에 임명되었지만, 거절하고 하동으로 돌아갔다.
3.2. 조비 시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형수 부부에게 길러졌으며, 태학에서 공부했다. 왕윤은 그를 한눈에 보고 범상치 않다고 느꼈다. 조조가 사공이 되자 그를 초빙했지만, 손자는 살해된 형의 원수를 갚은 직후였으므로, 가족을 데리고 하동군으로 도망갔다. 그 후에도 군에서 초빙되었지만 응하지 않았으나, 친구 가규의 권유로 관직에 나섰다. 거기서 상계리가 되어, 순욱으로부터 높이 평가받아 상서랑에 임명되었지만, 거절하고 하동으로 돌아갔다.
손자는 현령을 역임하고, 참승상군사가 되었다. 위나라가 건국되자 유방과 함께 비서랑을 맡았다. 조비(문제)가 즉위하자 유방과 함께 각각 좌승·우승이 되었고, 황초 연간 초기에 비서가 중서로 개칭되자, 유방이 중서감, 손자가 중서령이 되어 각각 급사중을 겸임했다. 또한 손자는 관중후, 유방도 관내후를 받았으며, 기밀을 취급했다.
황초 3년(222년)에 손자는 관내후가 되었다.
3.3. 조예 시대
조예가 즉위하자 유방과 함께 산기상시를 더해 낙양정후가 되었다. 태화 연간 말, 오가 요동의 공손연을 유인하기 위해 장수를 파견했을 때, 손자는 다른 신하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요격을 주장하여 성공했기 때문에, 그 공적으로 좌향후가 되었다. 청룡 연간 초, 시중·광록대부가 더해졌고, 경초 2년(238년)에 요동이 평정되자, 참모로서의 공적으로 작위를 받아 중도후가 되었다.
조예는 임종 시, 조우를 대장군으로 삼고, 하후헌·조상·조조·진랑과 함께 조방을 보좌하도록 하려 했다. 그러나 하후헌·조조 등은 유방·손자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방·손자는 조예에게 사마의를 기용하도록 권했고, 방침을 변경시켰다. 이 때문에 조우·하후헌·조조·진랑 등이 파면되고, 사마의와 조상이 조방을 보좌하게 되었다.
3.4. 조방 시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형수 부부에게 길러졌으며, 태학에서 공부했다. 왕윤은 그를 한눈에 보고 범상치 않다고 느꼈다. 조조가 사공이 되자 그를 초빙했지만, 손자는 살해된 형의 원수를 갚은 직후였으므로, 가족을 데리고 하동군으로 도망갔다. 그 후에도 군에서 초빙되었지만 응하지 않았으나, 친구 가규의 권유로 관직에 나섰다. 거기서 상계리가 되어, 순욱으로부터 높이 평가받아 상서랑에 임명되었지만, 거절하고 하동으로 돌아갔다.
조예는 임종 시, 조우를 대장군으로 삼고, 하후헌, 조상, 조조, 진랑과 함께 조방을 보좌하도록 하려 했다. 그러나 하후헌·조조 등은 유방·손자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방·손자는 조예에게 사마의를 기용하도록 권했고, 방침을 변경시켰다. 이 때문에 조우·하후헌·조조·진랑 등이 파면되고, 사마의와 조상이 조방을 보좌하게 되었다.
조방(제왕)이 즉위하자 유방·손자 모두 가증되었고, 자식에게도 작위나 관위가 주어졌다. 정시 원년(240년)에는 우광록대부·의동삼사가 되었고, 같은 해 6년(245년)에는 중서령인 채로 위장군이 되었다. 다음 해, 지위를 물러났지만, 조상 등이 살해되자 복귀하여, 시중·중서령이 되었다. 가평 2년(250년), 표기장군에 임명되었지만, 다음 해 사망했다. 정후로 시호되었고, 작위는 아들 손홍이 이었다.
4. 친족 관계
* 손초 - 손자의 손자
* 손성 - 손자의 현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