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관
1. 개요
좌관은 후한 환제 때 소황문사로 시작하여, 환관 당형의 추천으로 양기 일족 숙청에 가담한 인물이다. 양기 일족 제거 후 중상시로 승진하고 상채후에 봉해졌으며, 선초, 서황, 구원, 당형과 함께 '오후'로 불렸다. 이후 165년에 고현에서 노자를 제사했지만, 수탈 혐의로 인해 형 좌칭과 함께 자살했다. 그의 동생 좌민은 진류 태수를 지냈다.
-
165년 사망 -
차대왕
차대왕은 고구려의 제8대 왕으로, 용맹하고 권력욕이 강했지만 폭정을 일삼아 명림답부에게 살해당했으며, 즉위 전 후한의 침입을 막는 공을 세웠으나 재위 기간 동안 반대파를 숙청하고 왕권 강화를 시도하다 민심을 잃었다. -
165년 사망 -
태조대왕
태조대왕은 고구려의 제6대 왕으로 7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93년간 재위하며 동옥저를 병합하고 요서 지역에 성을 쌓는 등 영토를 확장하여 국력을 신장시켰으며, 동생 수성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
중국의 자살한 정치인 -
리리싼
리리산은 중국 공산당 초기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극좌적 모험주의 노선으로 몰락했고,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노동부장을 역임했으나 문화대혁명 때 숙청당한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정치인이다. -
중국의 자살한 정치인 -
양기
-
뤄양시 출신 -
현장
현장은 당나라의 승려이자 불경 번역가, 여행가로서, 17년간 인도를 여행하며 불경을 가져와 중국어로 번역하여 동아시아 불교 사상 발전에 기여했고, 그의 여행기는 『대당서역기』로 남아 소설 『서유기』의 모티브가 되었다. -
뤄양시 출신 -
이보 (가수)
왕이보는 1997년생 중국 배우이자 가수, 댄서, 모터사이클 경주 선수로, 2014년 한중 합작 그룹 유니크(UNIQ)로 데뷔하여 가수 활동을 시작, 이후 배우로서 입지를 굳히고 댄스 경연 프로그램 캡틴으로도 활약하며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2. 생애
환제 때 소황문사(小黃門史)가 되었다. 이때 권신 양기는 아버지 양상의 뒤를 이어 대장군이 되고, 두 여동생을 환제에게 시집 보내 외척으로서 권세를 휘둘렀다. 또 태위 이고·두교를 죽였고, 양황후 또한 많은 비빈을 독살하였다. 대신들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고, 환제 또한 불만을 품었지만 폐위될 것을 염려하여 본심을 숨겼다.
159년(연희 2년) 7월, 양황후가 죽었다. 환제는 변소에 가서 몰래 환관 당형을 불러 양씨 일족과 갈등이 있는 측근이 없는지 물었고, 당형은 선초·좌관·서황·구원을 추천하였다. 환제는 그들 다섯 명의 환관을 불러 양씨 일족의 숙청을 모의했다.
사례교위 장표(張彪)가 양기의 저택을 포위하여 양기 부부를 자살하게 했으며, 선초가 양씨 일족을 수감하여 모두 처형했다. 좌관은 중상시로 전임되었고, 상채후(上蔡侯)에 봉해졌다. 단초, 서황, 구원, 좌관, 당형 다섯 명은 같은 날 봉해져, "오후"라고 세상에서 불렸다. 비록 양씨 일족을 몰아냈으나 환관들이 정권을 장악하여, 조정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165년 (연희 8년), 환제의 명령에 의해 좌관은 고현으로 파견되어 노자를 제사했다. 사례교위 한연이 좌관과 그의 형 남향후 좌칭의 수탈 죄를 상주하자, 좌관은 좌칭과 함께 자살했다.
동생 좌민(左敏)은 진류군 태수가 되었고, 부패 관료로 알려졌다.
2.1. 초기 생애와 환관으로서의 출세
환제 때 소황문사(小黃門史)가 되었다. 이때 권신 양기는 아버지 양상의 뒤를 이어 대장군이 되고, 두 여동생을 환제에게 시집 보내 외척으로서 권세를 휘둘렀다. 또 태위 이고·두교를 죽였고, 양황후 또한 많은 비빈을 독살하였다. 대신들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고, 환제 또한 불만을 품었지만 폐위될 것을 염려하여 본심을 숨겼다.
연희 2년(159년) 7월, 양황후가 죽었다. 환제는 몰래 당형을 불러 양씨 일족과 척을 진 측근이 있는지 물었고, 당형은 선초·좌관·서황·구원을 추천하였다. 환제는 선초 등 다섯 명을 불러들여 양씨 일족을 주멸할 계획을 모의하였고, 선초의 팔꿈치를 깨물어 흘린 피로 맹약을 맺는 의식을 열었다.
8월, 사례교위 장표(張彪)가 양기의 저택을 포위하였다. 양기 부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선초가 양씨 일족을 잡아들여 모두 주살하였다. 좌관은 중상시로 승진하고 상채후(上蔡侯)에 봉해졌다. 당형·선초·서황·구원 모두 좌관과 같은 날에 열후에 봉해져 '오후'(五侯)라고 일컬어졌다.
2.2. 양기 일족 제거
환제 때 좌관은 소황문사(小黃門史)가 되었다.
당시 권신 양기는 아버지 양상의 뒤를 이어 대장군이 되고, 두 여동생을 환제에게 시집 보내 외척으로서 권세를 휘둘렀다. 양기는 태위 이고·두교를 죽였고, 양황후 또한 많은 비빈을 독살하였다. 대신들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고, 환제 또한 불만을 품었지만 폐위될 것을 염려하여 본심을 숨겼다.
159년(연희 2년) 7월, 양황후가 죽었다. 환제는 변소에 가서 몰래 환관 당형을 불러 양씨 일족과 갈등이 있는 측근이 없는지 물었고, 당형은 선초·좌관·서황·구원을 추천하였다. 환제는 그들 다섯 명의 환관을 불러 양씨 일족의 숙청을 모의했다.
사례교위 장표(張彪)가 양기의 저택을 포위하여 양기 부부를 자살하게 했으며, 선초가 양씨 일족을 수감하여 모두 처형했다. 좌관은 중상시로 전임되었고, 상채후(上蔡侯)에 봉해졌다. 단초, 서황, 구원, 좌관, 당형 다섯 명은 같은 날 봉해져, "오후"라고 세상에서 불렸다. 비록 양씨 일족을 몰아냈으나 환관들이 정권을 장악하여, 조정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2.3. 오후(五侯)의 전횡과 몰락
환제 때 좌관은 소황문사(小黃門史)가 되었다.
당시 권신 양기는 아버지 양상의 뒤를 이어 대장군이 되고, 두 여동생을 환제에게 시집 보내 외척으로서 권세를 휘둘렀다. 또 태위 이고·두교를 죽였고, 양황후 또한 많은 비빈을 독살하였다. 대신들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고, 환제 또한 불만을 품었지만 폐위될 것을 염려하여 본심을 숨겼다.
연희 2년(159년) 7월, 양황후가 죽었다. 환제는 몰래 당형을 불러 양씨 일족과 척을 진 측근이 있는지 물었고, 당형은 선초·좌관·서황·구원을 추천하였다. 환제는 선초 등 다섯 명을 불러들여 양씨 일족을 주멸할 계획을 모의하였고, 선초의 팔꿈치를 깨물어 흘린 피로 맹약을 맺는 의식을 열었다.
연희 2년 8월, 사례교위 장표(張彪)가 양기의 저택을 포위하였다. 양기 부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선초가 양씨 일족을 잡아들여 모두 주살하였다. 좌관은 중상시로 승진하고 상채후(上蔡侯)에 봉해졌고, 당형·선초·서황·구원 모두 좌관과 같은 날에 열후에 봉해져 '오후'(五侯)라고 일컬어졌다. 비록 양씨 일족을 몰아냈으나 환관들이 정권을 장악하여, 조정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165년(연희 8년), 환제의 명을 받들어 고현(苦縣)에서 노자의 제사를 지냈다. 같은 해에 사례교위 한연의 탄핵을 받았고, 형 좌칭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생 좌민(左敏)은 진류태수를 지냈는데, 부정부패로 악명을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