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연
1. 개요
한연은 후한 시대의 관료로, 효렴으로 천거되어 하내 태수, 단양 태수, 패 상 등을 역임하며 유능함을 인정받았다. 영수 연간에 사공과 사도를 차례로 지냈으나, 양황후 사후 양기의 권력 남용을 묵인한 죄로 투옥되어 서인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사례교위로 복귀하여 환관 등을 탄핵했으며,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관리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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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한씨 -
한복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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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한씨 -
한강백
한강백은 동진 시대에 뛰어난 재능으로 이름을 알리고 간문제 사마욱의 담객으로 발탁되어 시중에 이르렀으며, 왕탄지와 원굉의 논쟁을 중재하기 위한 《변겸》과 역학에 대한 이해를 담은 《역계사전주》를 남긴 인물이다. -
후한의 사공 -
조조
후한 말기의 정치가이자 군사가, 시인이었던 조조는 뛰어난 능력으로 위나라의 기반을 다졌으나, 잔혹한 행위와 권력욕으로 인해 후대 평가에서 논쟁적인 인물이다. -
후한의 사공 -
동탁
동탁은 후한 말 군벌로, 폭정과 권력 찬탈을 시도했으며,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를 옹립하여 상국에 올랐으나 여포에게 암살당했으며, 독재와 폭정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
중국에 관한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중국에 관한 -
카자흐인
카자흐인은 15세기 카자흐 칸국 건국 이후 명칭이 사용된 튀르크계 중앙아시아 북부 유목민족으로, "자유로운 자"를 뜻하는 카자흐라는 명칭은 권위에 저항하는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에서 유래했으며, 카자흐 초원을 중심으로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 번성했고, 유목 생활과 튀르크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현재 여러 국가에 디아스포라가 거주하고 있다.
2. 생애
한연은 순제 시대에 단양군 태수를 지냈으며, 정사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태상으로 전임되었다. 155년 (영수 원년) 6월 사공이 되었고, 157년 (영수 3년) 11월 사도로 전임되었다.
159년 (연희 2년) 8월, 대장군 양기가 자살하자, 한연은 양기의 당여로 몰려 사형당할 뻔했으나 감형되어 영천군으로 귀향했다. 후에 다시 소환되어 사례교위에 임명되었다.
165년 (연희 8년), 한연은 환관 좌관과 그의 형 좌칭을 탄핵하고, 구공의 형 구원의 부정한 축재를 상주했다.
2.1. 초기 관직 생활
효렴으로 천거되고, 하내 태수, 단양 태수, 패 상을 지냈으며, 유능한 관리로 명성이 있었다.
영수 원년(155년) 6월, 사공 방식이 면직되자, 당시 태상이었던 한연이 뒤를 이어 사공에 임명되었다.
영수 3년(157년) 11월, 사도 윤송이 죽자 사도로 전임되었다.
양황후(梁皇后)가 죽은 후, 당시 조정에서 전횡을 일삼은 대장군 양기는 등맹(鄧猛)이 환제의 총애를 받도록 하기 위하여 등맹을 양씨 집안의 여자로 속이고 들여보냈다. 한연은 이를 묵인해 주었다.
연희 2년(159년) 8월, 양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양기와 연루된 수많은 중신들이 벌을 받았는데, 이때 한연은 전에 양기를 도왔던 것이 적발되어 호광, 손랑과 함께 하옥되었다. 이후 처형될 것을 한 등급 낮추어, 봉토를 빼앗기고 서인이 되어 고향으로 쫓겨났다.
연희 8년(165년),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아 사례교위에 임명되었다. 이때 환관 좌관, 태복 좌칭, 패 상 구공 등을 탄핵하였다.
2.2. 중앙 정계 진출과 양기와의 관계
효렴으로 천거되고, 하내 태수, 단양 태수, 패 상을 지냈으며, 유능한 관리로 명성이 있었다.
영수 원년(155년) 6월, 사공 방식이 면직되자, 당시 태상이었던 한연이 뒤를 이어 사공에 임명되었다.
영수 3년(157년) 11월, 사도 윤송이 죽자 사도로 전임되었다.
양황후(梁皇后)가 죽은 후, 당시 조정에서 전횡을 일삼던 대장군 양기는 등맹(鄧猛)이 환제의 총애를 받도록 하기 위하여 등맹을 양씨 집안의 여자로 속이고 들여보냈다. 한연은 이를 묵인하였다.
연희 2년(159년) 8월, 양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양기와 연루된 수많은 중신들이 벌을 받았는데, 이때 한연은 전에 양기를 도왔던 것이 적발되어 호광, 손랑과 함께 하옥되었다. 이후 처형될 것을 한 등급 낮추어, 봉토를 빼앗기고 서인이 되어 고향으로 쫓겨났다.
2.3. 양기 몰락과 처벌
영수 3년(157년) 11월, 사도 윤송이 죽자 한연이 그 뒤를 이어 사도가 되었다.
양황후가 죽은 후, 조정에서 권력을 휘두르던 대장군 양기는 등맹이 환제의 총애를 받도록 하기 위해 등맹을 양씨 집안의 여자로 속여 입궁시켰다. 한연은 이를 묵인했다.
연희 2년(159년) 8월, 양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양기와 연루된 많은 중신들이 벌을 받았는데, 이때 한연은 전에 양기를 도운 사실이 드러나 호광, 손랑과 함께 하옥되었다. 이후 사형에서 한 등급 감형되어 봉토를 빼앗기고 서인이 되어 고향으로 쫓겨났다.
2.4. 조정 복귀와 환관 탄핵
효렴으로 천거되고, 하내 태수, 단양 태수, 패 상을 지냈으며, 유능한 관리로 명성이 있었다.
영수 원년(155년) 6월, 사공 방식이 면직되자, 당시 태상이었던 한연이 뒤를 이어 사공에 임명되었다. 영수 3년(157년) 11월, 사도 윤송이 죽자 사도로 전임되었다.
환제의 황후 양씨(梁皇后)가 죽은 후, 대장군 양기는 등맹(鄧猛)이 환제의 총애를 받도록 하기 위하여 등맹을 양씨 집안의 여자로 속이고 궁에 들여보냈다. 한연은 이를 묵인하였다.
연희 2년(159년) 8월, 양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양기와 연루된 수많은 중신들이 벌을 받았는데, 이때 한연은 전에 양기를 도왔던 것이 적발되어 호광, 손랑과 함께 하옥되었다. 이후 처형될 위기에서 한 등급 감형받아, 봉토를 빼앗기고 서인이 되어 고향으로 쫓겨났다.
연희 8년(165년),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아 사례교위에 임명되었다. 이때 환관 좌관, 태복 좌칭, 패 상 구공 등을 탄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