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카사리
1. 개요
주세페 카사리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로, 골키퍼로 활약했다. 그는 아탈란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44년 지역 리그에 출전했고, 이듬해 세리에 A에 데뷔했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하여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고, 1950년 FIFA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이후 나폴리로 이적하여 1956년 파도바에서 선수 경력을 마무리했다. 카사리는 위압적인 체격과 민첩성을 바탕으로 골키퍼로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으며, "선한 거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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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B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아메데오 카르보니
아메데오 카르보니는 이탈리아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왼쪽 측면 수비수로 활약하며, AS 로마, 발렌시아 CF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은퇴 후에는 스포츠 디렉터 및 기술 고문으로 활동했다. -
이탈리아 B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루제로 리치텔리
루제로 리치텔리는 체세나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해 AS 로마, 토리노 FC 등에서 공격수로 활약했으며,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던 최초의 이탈리아 선수이자, AS 로마 소속으로 코파 이탈리아 우승,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분데스리가와 DFB-포칼 우승을 경험하고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UEFA 유로 1988과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참가한 은퇴한 축구 선수이다. -
2013년 사망 -
남덕우
남덕우는 대한민국의 경제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박정희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과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하고 제14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
2013년 사망 -
오탁근
오탁근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검찰총장 및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검사로 활동하다 10·26 사건 처리 후 강제 퇴임, 이후 법무부 장관, 한국가스공사 이사장, 변호사 등으로 활동했다. -
아탈란타 BC의 축구 선수 -
주세페 메아차
주세페 메아차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로, 공격수와 중앙 공격수 포지션에서 활약하며 드리블과 득점 방식으로 유명했고,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 세리에 A 우승을,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으로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세리에 A 득점왕과 월드컵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
아탈란타 BC의 축구 선수 -
루카 치가리니
루카 치가리니는 이탈리아의 전직 축구 선수로, 파르마 유스 출신으로 세리에 A에서 데뷔하여 다수의 클럽에서 중앙 미드필더, 특히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 활동하며 뛰어난 패싱 능력과 전술적 지능을 선보였고, 이탈리아 U-21 대표팀에도 출전했다.
2.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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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클럽 경력
베르가모 현 마르티넨고에서 태어나고 자란 카사리는 인근 클럽인 아탈란타 소속으로 1944년 지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 1945-46 시즌에는 세리에 A 무대에 데뷔했다.
1948년 런던 올림픽과 1950년 FIFA 월드컵에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참가한 후, 1950년 월드컵이 끝나고 나폴리로 이적했다. 나폴리에서 활동하며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으나 주전 자리를 확고히 하지는 못했다. 이후 파도바에서 3시즌을 보낸 뒤 1956년에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1948년, 그는 주전 수문장으로 런던 올림픽에 이탈리아 선수단 일원으로 참가했다. 미국과의 경기에서는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덴마크를 상대로는 5골을 실점했다. 그는 1950년 FIFA 월드컵에도 센티멘티 4호의 후보 선수로 참가했으나,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는 주세페 모로가 대신 출전하여 카사리는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1950년 월드컵 이후 나폴리로 이적한 그는 국가대표팀 경기에 4번 더 출전했지만, 주전 자리를 확고히 하지는 못했다. 당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은 약 15년 동안 12명의 골키퍼를 기용할 정도로 주전 경쟁이 치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