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본 네덜란드 대사관
1. 개요
주일본 네덜란드 대사관은 일본에 주재하는 네덜란드 외교 공관으로, 17세기 초부터 시작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1609년 히라도에 네덜란드 상관이 개설된 이후, 쇄국 시대에는 데지마로 이전하여 200년 이상 존속했다. 1859년 에도에 공사관이 설치되었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시나가와로 이전했다. 1942년 란인 작전으로 일란 전쟁이 발발하며 단절되었다가,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발효로 일본이 독립한 후 재개관되었다. 현재는 도쿄도 미나토구 시바코엔에 위치하며, 2024년 7월 18일부터 힐스 베스호 푸르흐가 특명전권대사로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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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명칭 | 주일본 네덜란드 대사관 |
|---|---|
| 현지 명칭 (네덜란드어) | Nederlandse Ambassade in Japan |
| 현지 명칭 (일본어) | 駐日オランダ大使館 (주일 네덜란드 대사관) |
| 영어 명칭 | Embassy of the Netherlands in Japan / Dutch Embassy in Japan |
| 기타 영어 명칭 | Embassy of the Netherlands in Tokyo / Dutch Embassy in Tokyo |
| 개설 | 1609년 - 1641년 (히라도 네덜란드 상관) 1641년 - 1859년 (데지마 네덜란드 상관) 1859년 - 1942년 (공사관) 1953년 - 현재 (대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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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사 | 히르스 베스호-플루흐 |
| 위치 |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시바고엔 3-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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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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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재외 공관 -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은 1968년 6월 대한민국과 네덜란드 수교 이후 서울에 설립된 네덜란드 외교 공관으로, 외교, 투자 유치, 문화 교류, 네덜란드 국민 보호, 영사 업무 등을 수행한다. -
1953년 설립된 단체 -
제26기계화보병사단
제26기계화보병사단은 3개의 기계화보병여단과 사단포병여단을 주축으로 다양한 지원부대가 배속된 대한민국 육군의 기계화보병사단으로, 대한민국 국방력의 핵심 전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
1953년 설립된 단체 -
한국정치학회
한국정치학회는 한국 정치와 대의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학술단체로서, 학술 연구, 학술지 발간, 연구 발표회 개최, 국내외 교류 등의 사업을 수행하며, 대의민주주의 제도 개선과 시민 참여 확대 방안 연구, 진보 정당 정책 연구, 정치 현안 분석 및 정책 결정 근거 제시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
네덜란드-일본 관계 -
데지마
데지마는 에도 막부가 포르투갈인을 수용하기 위해 나가사키에 건설한 인공 섬으로, 쇄국 정책 하에 서양과의 유일한 교류 창구로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상관이 위치하여 무역과 학문 교류의 중심지였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 매립되었고, 현재 나가사키시에서 복원 사업을 추진 중이다. -
네덜란드-일본 관계 -
난학
난학은 17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일본에서 네덜란드어를 통해 서양 학문을 수용하는 용어이며, 에도 시대 쇄국 정책 속에서 서양 문물을 접하는 유일한 통로가 되어 일본 근대화에 기여했다.
2. 역사
일본에 상주하는 네덜란드 외교 대표의 역사는 유럽 국가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17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도쿠가와 이에미쓰 치세에 스페인, 포르투갈, 잉글랜드 왕국(후의 영국)과의 외교 관계가 단절된 후, 네덜란드는 일본과 외교 관계를 유지한 가장 오래된 유럽 국가였다.
1859년 (안세이 6년), 에도의 사이오지 경내(현 미나토 유치원 부지 내)에 최초의 주일본 네덜란드 공사관(Nederlandse Legatie in Japan네덜란드어)이 설치되었다. 1867년 (게이오 3년) 말 에도 사쓰마 번 저택 방화 사건으로 사이오지가 소실되자, 네덜란드 공사관은 시나가와의 초오지로 이전했다. 네덜란드의 디르크 데 흐라프 판 폴스브루크 대리 공사는 초오지에서 메이지 유신을 맞이했다.
2.1. 에도 시대 (1603년 - 1868년)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미쓰 치세에 스페인, 포르투갈, 잉글랜드 왕국(후의 영국)과의 외교 관계가 단절된 후, 네덜란드는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일본과 외교 관계를 유지했다. 이는 쇄국 체제의 시작이었다.
1609년 (게이초 14년), 네덜란드 상인 야쿠스 스펙스는 히젠국히라도 (현 나가사키현히라도시)에 네덜란드 상관을 설치하고 초대 상관장이 되었다. '카피탄'은 포르투갈어 'Capitão'에서 유래한 말로, 당시 유럽 국가의 상관장을 일컫는 말이었다.
1639년 (간에이 16년)부터 1641년 (간에이 18년)까지 상관장으로 재직한 프랑스계 네덜란드인 프랑수아 카론은 막부와 협력하여 상관을 유지했다. 이 시기 막부는 포르투갈과 단교하고, 포르투갈 상관이 있던 데지마는 비어있게 되었다. 1641년 (간에이 18년), 카론은 막부의 요청으로 네덜란드 상관을 히라도에서 데지마로 이전했다.
히라도에 상주한 마지막 네덜란드 상관장은 막시밀리안 르 메르로, 그는 처음으로 『네덜란드 풍설서』를 구술 필기하여 막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지마의 네덜란드 상관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유럽 정복으로 네덜란드가 본토를 상실한 시기에도 유지되었으며, 안세이 연간까지 200년 이상 존속했다. 마지막 상관장 얀 동켈 쿠르티우스는 일란 화친 조약과 일란 추가 조약 체결, 군함 2척 발주, 나가사키 해군 전습소 설립 등을 추진했다.
2.2. 메이지 시대 (1868년 - 1945년)
1868년(메이지 원년), 판 폴스브루크는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계속해서 대리 공사로 유임하는 것을 메이지 정부로부터 인정받았으며, 같은 해 안으로 변리공사로 승진했다.
마지막 주일 네덜란드 공사는 J・C・파브스트(J. C. Pabst)이다. 파브스트 공사는, 일본-네덜란드 관계가 역사상 최악으로 험악했던 1942년(쇼와 17년) 란인 작전 발동까지 공사의 임무를 수행했지만, 외교적 노력으로 일본-네덜란드 개전을 막는 데는 실패했고 양국은 전쟁에 돌입했다.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네덜란드령 동인도(현재의 인도네시아)에 침공한 일본 측에게도 역사 인식 문제를 안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1942년 (쇼와 17년)부터 1945년 (쇼와 20년)에 걸친 일본-네덜란드 전쟁 시기를 가리켜, 주일 네덜란드 대사관의 공식 웹사이트 일본어판은 "역사의 어둠"이라고 칭하고 있다.
2.3.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이후 (1945년 - 현재)
1946년(쇼와 21년) 9월 4일, 제88회 제국 의회 개원식에서 쇼와 천황은 "평화 국가를 확립하여 인류의 문화에 기여하고자 한다"라는 칙어를 내려 평화 국가로서 재출발할 것을 선언했다. 이는 같은 해 11월 3일 일본국 헌법 공포, 1947년(쇼와 22년) 5월 3일 헌법 시행으로 이어져 법적으로 명문화되었다.
1952년(쇼와 27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발효되어 일본이 독립했다. 네덜란드는 이 조약의 체결국 중 하나였으며, 같은 해 8월 26일 네덜란드에서 비준을 거쳐 양국 간 외교 관계가 회복되었다.
이후 주일본 네덜란드 대사관으로 재개관되었으며, 1953년(쇼와 28년)부터 1959년(쇼와 34년)까지 O・로이힐린(O. Reuchlin)이 초대 주일 대사를 역임했다.
4. 대사
2023년 8월 10일, Theodorus Peters네덜란드어가 임시대리대사로 임명되었다. 2024년 7월 18일부터는 힐스 베스호 푸르흐가 특명전권대사를 맡고 있다.
4.1. 임시대리대사
테오도뤼스 페터르스가 2023년 8월 10일자로 임시대리대사로 임명되었다.
5. 특이 사항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이 개설되기 직전부터 정식 주한 네덜란드 대사가 임명되기 전까지 이 대사관 소속 대사가 주한 대사를 겸임한 이력이 과거에 있었다.
6.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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