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광제
1. 개요
중광제는 1409년 후 쩐 왕조의 황제로 즉위한 인물이다. 그는 쩐 왕조의 종실 출신으로, 간정제가 명나라에 대항하여 봉기하자 시중으로 임명되었다. 간정제가 살해된 후, 쩐꾸이코앙은 찌라현에서 황제로 옹립되었고 연호를 중광으로 정했다. 중광제는 명나라에 저항했으나 결국 패배하여 1413년 포로로 잡혔고, 이듬해 연경으로 압송되던 중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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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쩐 왕조의 황제 -
간정제
쩐 예종의 아들인 간정제는 호 왕조 시기에 일남군왕에 봉해졌으나, 명나라의 침공을 틈타 쩐 왕조 부흥을 내세워 황제에 즉위하여 흥카인 연호를 사용하며 명나라에 저항했지만, 내부 분열로 인해 명나라에 사로잡혀 난징으로 압송되어 처형당했다. -
후 쩐 왕조의 황제 -
티엔카인
티엔카인은 1426년부터 1428년까지 후 쩐 왕조가 부흥하며 사용한 연호로, 이후 후 레 왕조 개창과 함께 투언티엔으로 변경되었으며, 당시 명나라의 선덕 연호와 병행하여 사용되었다. -
1414년 사망 -
이지 (문신)
이지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개국공신으로, 조선 건국에 참여하여 개국공신 3등에 책록되었고 척불론을 내세워 유교 이념 정착에 기여했으며, 태종 대에는 경제 시책을 추진하고 후대 명신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
1414년 사망 -
조영무
조영무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으로, 이성계의 사병으로 시작하여 조선 건국에 기여하고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을 도와 공신이 되었으며, 태종 즉위 후 우정승에 이르렀고 사후 태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쩐 왕조의 종실이자 장정왕(莊定王) 쩐응악(陳𩖃)의 서자이다. 쩐응악은 쩐 예종의 아들이다.
1407년, 간정제가 명나라에 대항하여 병사를 일으켜 후 쩐 왕조를 세웠고, 쩐꾸이코앙은 시중(侍中)으로 봉해졌다.
1409년, 간정제가 응우옌몽짱(阮夢莊)의 참언을 믿고 대장(大將) 당떳(鄧悉)과 응우옌까인쩐(阮景眞)을 죽였다. 이에 당떳의 아들 당중(鄧容)과 응우옌까인쩐의 아들 응우옌까인지(阮景異)는 부친이 무고하게 살해된 것에 분노하여 군사를 이끌고 타인(淸化)으로 가 쩐꾸이코앙을 영접하여 응에안(乂安)으로 갔다. 그해 음력 3월 17일(1409년 4월 2일), 쩐꾸이코앙은 찌라현(支羅縣, 현재의 하띤성)에서 황제로 옹립되었고, 연호를 쭝꽝으로 하였다. 연호를 따서 중광제라고 부른다.
당시 간정제는 응으티엔성(御天城)에서 명나라군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중광제는 응우옌수이(阮帥)를 보내 응으티엔성을 기습하게 하였고, 간정제를 포로로 잡았다. 간정제는 응에안으로 압송되었고, 중광제는 그를 태상황으로 높여 계속 함께 명나라군에 대항하였다.
1410년, 중광제는 여러 지역의 베트남인들이 일으킨 병사들과 호응하였지만 다수가 통솔할 수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니 명나라 군사와 맞설 수 없었다.
1413년 명나라군이 타인호아를 공격해 함락하면서 중광제는 당중(鄧容) 등과 함께 사로잡혔고, 이로써 후 쩐 왕조는 무너졌다. 이듬해인 1414년, 중광제는 명나라군에 의해 연경으로 압송되던 도중 물에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2.2. 황제 즉위와 항명 투쟁
1407년, 간정제가 명나라에 대항하여 병사를 일으켜 후 쩐 왕조를 세웠고, 쩐꾸이코앙은 시중(侍中)으로 봉해졌다.
1409년, 간정제가 응우옌몽짱(阮夢莊)의 참언을 믿고 대장(大將) 당떳(鄧悉)과 응우옌까인쩐(阮景眞)을 죽였다. 당떳의 아들 당중(鄧容)과 응우옌까인쩐의 아들 응우옌까인지(阮景異)는 부친이 무고하게 살해된 것에 분노하여 군사를 이끌고 타인(淸化)으로 가 쩐꾸이코앙을 영접하여 응에안(乂安)으로 갔다. 그해 음력 3월 17일(1409년 4월 2일), 쩐꾸이코앙은 찌라현(支羅縣, 현재의 하띤성)에서 황제로 옹립되었고, 연호를 쭝꽝으로 하였다. 연호를 따서 중광제라고 부른다. 응우옌수이(阮帥)를 태부(太傅), 응우옌까인찌를 태보(太保), 당중을 동평장사(同平章事), 응우옌쯔엉(阮章)을 사마(司馬)로 봉하였다.
당시 간정제는 응으티엔성(御天城)에서 명나라군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중광제는 응우옌수이를 보내 응으티엔성을 기습하게 하였고, 간정제를 포로로 잡았다. 간정제의 태후는 레띠엣(黎截), 레응우옌딘(黎元鼎) 등과 함께 캇강(渴江)에서 중광제를 습격하려 도모했으나 중광제에게 발각되어 레띠엣, 레응우옌딘은 살해되었다. 간정제는 응에안으로 압송되었고, 중광제는 그를 태상황으로 높여 계속 함께 명나라군에 대항하였다. 둘은 병사를 나누어 간정제는 하홍(下洪)으로 진군했고, 중광제는 평탄(平灘)에 이르렀다.
그해 하반기 동안 명나라는 장보를 보내 후 쩐 왕조를 토벌하게 하였다. 장보는 호앙강(黃江), 아강(阿江), 다이안해구(大安海口), 푹타인강(福成江)으로부터 수륙병진하여 턴더우해구(神投海口)로 들어갔고, 일제히 파죽지세로 진군해 타인호아에 도착하였다. 간정제는 연주(演州)로 달아났으나 오래지 않아 사로잡혔다. 중광제는 장보와 평탄에서 교전하였으나 패하였고, 당중에게 함자관(鹹子關)을 지키게 한 뒤 응에안으로 철군하였다.
1410년, 중광제는 여러 지역의 베트남인들이 일으킨 병사들과 호응하였지만 다수가 통솔할 수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니 장보의 군사와 맞설 수 없었다.
2.3. 최후
1413년 명나라군이 타인호아를 공격해 함락하면서 중광제와 당중(鄧容), 응우옌까인지(阮景異), 응우옌수이(阮帥), 응우옌비에우(阮表) 등은 차례로 사로잡혔고, 이로써 후 쩐 왕조는 무너졌다. 이듬해인 1414년, 중광제는 명나라군에 의해 연경으로 압송되던 도중 물에 몸을 던져 자결하였고, 응우옌수이 또한 그를 따라 투신 자결하였다. (일본어 위키백과에는 남경(南京)으로 호송된 후 베이징으로 압송되어 영락제(永楽帝)의 명령으로 처형되었다고도 하며, 호송 도중 물에 빠져 죽었다는 설도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