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기만타스 1세 켕스투타이티스
1. 개요
지기만타스 1세 켕스투타이티스는 리투아니아 대공 케스투티스의 아들로, 1382년 아버지의 사망 후 야가일라의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하여 형 비타우타스와 함께 독일 기사단과 동맹을 맺었다. 1389년부터 1398년까지 독일 기사단의 인질로 억류되었으며, 석방 후 나바흐루다크 공작과 스타로두브 공작을 역임했다. 1432년 리투아니아 대공위에 올라 폴란드에 볼히니아와 포돌리아를 양도하고 정교회 귀족에게도 가톨릭 귀족과 동등한 특권을 부여하여 봉건제 형성에 기여했다. 1435년 파바이스카스 전투에서 스비드리게일라를 격파하며 권력을 강화했지만, 1440년 트라카이 섬 성에서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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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지기스문트 1세 케스투타이티스 |
|---|---|
| 출생 | 1365년경 |
| 출생지 | 트라카이, 리투아니아 대공국 |
| 사망 | 1440년 3월 20일 |
| 사망지 | 트라카이, 리투아니아 대공국 |
| 매장지 | 빌뉴스 대성당 |
| 왕조 | 게디미나스 왕조 |
| 아버지 | 케스투티스 |
| 어머니 | 비루테 |
| 배우자 | N Andreyevna Odintsewicz |
| 자녀 | 미코라스 지기만타이티스 |
| 작위 | 리투아니아 대공 |
|---|---|
| 재위 기간 | 1432년 ~ 1440년 |
| 이전 통치자 | 슈비트리가일라 |
| 다음 통치자 | 카지미르 4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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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디미나스가 -
비타우타스
비타우타스는 1377년부터 1430년까지 살았던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지배자로서, 권력 투쟁과 동맹을 거쳐 섭정이 되었고, 동방 정책과 개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국가 발전을 이끌었으며, 사망 후 리투아니아는 폴란드에 통합되었다. -
게디미나스가 -
알기르다스 (리투아니아)
알기르다스는 게디미나스 대공의 아들로, 켕스투티스의 도움을 받아 대공이 되어 32년간 리투아니아 대공국을 발전시키고 세력을 확장했으며, 이교 신앙을 유지하며 외교적 도구로 활용하다가 죽을 때까지 이교도였고, 그의 아들 요가일라는 폴란드 왕위에 올라 야기에우워 왕조를 세웠다. -
타넨베르크 전투 (1410년) 관련자 -
울리히 폰 융깅겐
울리히 폰 융깅겐은 튜턴 기사단의 제26대 대장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튜턴 전쟁을 일으켰으나 그룬발트 전투에서 패배하여 전사했다. -
타넨베르크 전투 (1410년) 관련자 -
비타우타스
비타우타스는 1377년부터 1430년까지 살았던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지배자로서, 권력 투쟁과 동맹을 거쳐 섭정이 되었고, 동방 정책과 개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국가 발전을 이끌었으며, 사망 후 리투아니아는 폴란드에 통합되었다. -
1440년 사망 -
혜령군
혜령군은 조선 태종의 서자이자 홍녕군에 봉해졌다가 혜령군으로 개봉된 인물로, 광패한 행동으로 세종의 근심을 샀으나 계품사로 북경에 다녀오는 공을 세워 사후 양회라는 시호를 받았다. -
1440년 사망 -
이숙번
이숙번은 조선 초기의 공신이자 문신으로, 두 차례의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을 도와 태종 즉위 후 좌명공신 1등에 책록되었고 병조판서 등의 요직을 거쳤으나 오만한 성격으로 유배 후 세종 때 용비어천가 편찬에 참여했으며 사후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2. 생애
케스투티스 사후, 지기만타스는 1382년부터 1384년까지 야가일라의 포로였다. 1383년 가톨릭 교회 세례를 받았으며, 1384년 탈출하여 형 비타우타스와 함께 독일 기사단과 동맹을 맺었다. 스키르가일라와의 경쟁에서 비타우타스가 독일 기사단과 다시 손을 잡으면서, 지기만타스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1389년부터 1398년까지 독일 기사단의 인질로 억류되었다. 이후 1390년부터 1440년까지 나바흐루다크 공작, 1406년 이후에는 스타로두브 공작을 역임했으며, 보르스클라 강 전투와 그룬발트 전투에 참전했다. 비타우타스 사후 사촌 스비드리게일라의 대 폴란드 전쟁에 참여했지만, 나중에 귀족들에게 설득되어 스비드리게일라에 대한 음모에 가담했다.
1432년 9월 1일, 지기만타스는 스비드리게일라를 몰아내고 리투아니아 대공위에 올랐다. 그는 야가일라의 그로드노 연합 조약에 서명하여 볼히니아, 포돌리아를 폴란드에 양도했다. 그러나 스비드리게일라는 여전히 건재했으며, 정교회 귀족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1434년, 지기만타스는 귀족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정교회 귀족에게도 로마 가톨릭 귀족과 동일한 특권을 부여했다. 그는 리투아니아 대공이 귀족들을 함부로 투옥하거나 재판에 넘기지 않겠다고 보장했는데, 이 특권은 리투아니아의 봉건제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435년 9월 1일, 지기만타스는 파바이스카스 전투에서 스비드리게일라를 격파했고, 스비드리게일라의 동맹이었던 리보니아 기사단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이로 인해 리투아니아에서 지기만타스의 입지는 크게 강화되었다. 그는 자국과 폴란드의 관계를 약화시키려 했고, 로마 왕 알브레히트 2세와 반 폴란드 군사 동맹 체결을 협상했지만, 1440년 3월 20일, 트라카이 섬 성에서 스비드리게일라 파 귀족(아마도 알렉산데르 차르토리시키를 중심으로)에 의해 암살당했다. 지기만타스의 아들 미콜라스 지기만타이티스가 1452년에 사망하면서 케스투티스의 직계 후손은 단절되었다.
2.1. 초기 생애와 권력 투쟁
리투아니아 대공 케스투티스의 아들로 태어난 지기만타스는 1382년 아버지 케스투티스가 사망한 후, 사촌인 야가일라에게 포로로 잡혔다. 1383년 가톨릭 교회 세례를 받았다. 1384년 탈출하여 형 비타우타스와 함께 독일 기사단과 동맹을 맺었다.
스키르가일라와의 경쟁에서 비타우타스가 독일 기사단과 다시 손을 잡으면서, 지기만타스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1389년부터 1398년까지 독일 기사단의 인질로 억류되었다. 이후 1390년부터 1440년까지 나바흐루다크 공작, 1406년 이후에는 스타로두브 공작을 역임했으며, 보르스클라 강 전투와 그룬발트 전투에 참전했다.
2.2. 리투아니아 대공 즉위와 통치
1432년 9월 1일, 지기만타스는 스비드리게일라를 몰아내고 리투아니아 대공위에 올랐다. 그는 야가일라의 그로드노 연합 조약에 서명하여 볼히니아, 포돌리아를 폴란드에 양도했다. 그러나 스비드리게일라는 여전히 건재했으며, 정교회 귀족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1434년, 지기만타스는 귀족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정교회 귀족에게도 로마 가톨릭 귀족과 동일한 특권을 부여했다. 그는 리투아니아 대공이 귀족들을 함부로 투옥하거나 재판에 넘기지 않겠다고 보장했는데, 이 특권은 리투아니아의 봉건제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435년 9월 1일, 지기만타스는 파바이스카스 전투에서 스비드리게일라를 격파했고, 스비드리게일라의 동맹이었던 리보니아 기사단은 큰 타격을 입었다. 이로 인해 리투아니아에서 지기만타스의 입지는 크게 강화되었다. 그는 자국과 폴란드의 관계를 약화시키려 했고, 로마 왕 알브레히트 2세와 반 폴란드 군사 동맹 체결을 협상했지만, 1440년 3월 20일, 트라카이 섬 성에서 스비드리게일라 파 귀족(아마도 알렉산데르 차르토리시키를 중심으로)에 의해 암살당했다.